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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준 게 잘못된 것이니 다시 내놔!"

▲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각종 공제제도를 통해 근로자 세부담을 경감해주는 방향으로 여론을 잠재워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나 황당할 것이다. 소수공제자 추가공제제도 폐지에 대한 재경부 입장이 이렇다. 그러니 언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을 수밖에.

재경부의 지적대로 소수공제자 추가공제제도로 인하여 3인 이상의 가구가 1인 가구나 2인 가구보다 1인당 인적공제액이 적다는 문제점이 있는 게 사실이고, 이 문제에 대하여는 이전부터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되어온 사실도 맞다.

이 제도는 부양가족수가 적은 가정의 기본경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는 이유로 도입되었으나, 실제로는 맞벌이 부부에게 집중적인 혜택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맞벌이 부부가 실제로 가사비용을 더 지출한다는 점과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한다"는 정당성이 주장되기도 하지만, 맞벌이 부부 내에서도 가구원수가 많을수록 1인당 인적공제액이 적어진다는 문제점이 여전히 남는다.

① 문제가 있는 건 맞다.
②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왜 놔두나?

①과 ② 모두 맞다. 그러나, 이들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서로 충돌된다.

①로부터는 "당연히 법은 개정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②로부터는 대부분 "더 큰 문제는 놔두고 작은 문제부터 건드리는 건 옳지 않다, 그러니 더 큰 문제를 해결한 후 작은 문제를 해결하라"는 결론을 도출할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곤욕 치르는 재경부, 고소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필자는 ①에 대하여는 재경부에 동의한다. 그러나 ②에 대하여는 재경부에 분노한다. ②가 감세론자에게 '세금폭탄' 운운할 수 있는 훌륭한 미끼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5일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여론 조사한 결과가 보도되었다. "더 많은 복지를 위해 세금 더 낼 용의가 있다"는 응답이 52.6%로 나타나 "없다"의 45.1% 보다 7.5%P 많았다. 이를 접한 감세론자 및 감세를 지지하는 보수언론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재경부가 훌륭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울까?

"근로자만 봉이냐?"는 것이 가장 많은 비판의 논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진실이다. 유리지갑인 근로자는 탈세할 수 없는 반면, 자영업자는 탈세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근로자와 자영업자 간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탈세를 막는 방향이 아니라 각종 공제제도의 확대를 통하여 근로자 세부담을 경감해주는 방향으로 여론을 잠재워왔다.

그 결과, 96년에 40%에 불과하던 근로자의 면세자 비율이 현재 50%에 달해 자영업자와 거의 같아졌다. 자영업자와 근로소득자의 면세자 비율이 같아졌으니 형평성 측면에서 나아졌다는 건가?

최근 세원 확보에 비상이 걸리자 재경부가 손쉽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결과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솔직한 필자의 심정으로는 재경부가 곤욕을 치르는게 당연하고 고소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이게 보수언론에 의해 '세금폭탄' 운운하며 증세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증폭되는 것에 대하여 심히 우려스럽다. 마치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하려는 사람에 대해 "힘없는 동네 아이들을 갈취할 목적으로 운동한다"고 매도하는 분위기와 같다.

유리지갑들이여, 봉 노릇 조금만 더 하자, 그리고...

세금을 통하여 양극화 해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고소득자와 자영업자들의 탈세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조세제도의 체질 개선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누차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야 다른 증세 조치가 정당성을 얻는다고.

지금의 조세제도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와 같다. 얽힌 실타래는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지 않으면 더 엉킨다. 나중에 풀어야 할 걸 먼저 푼 결과 일이 더 꼬인 것이다.

그렇다고 실타래를 푸는 일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위의 ②와 같은 비난은 논리적으로 맞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심정적으로 동조되는 논리다. 그러니 각종 언론에서 그러한 논조로 떠들겠지만. 여기서 필자는 돌맞을 각오로 ①의 입장에 서자고 제안을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거래당사자간 협상을 할 때 누군가 먼저 내주어야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거래는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재원마련방안이다("지금이 좋으니 그대로 가자"거나 "오히려 감세를 해야 한다"는 측은 거래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논외로 하자).

거래당사자인 근로자가 먼저 내놓자. 그러나 조건이 있다. "작은 문제의 해결에 동의했으니 올해 내에 큰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라. 이를 지켜보겠다. 그리고 이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큰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추후 논의하자)."

지난 수십년 동안 봉 노릇을 했는데 몇 달 더 못하랴! 먼저 내놓는 자가 속이 편한 법이다.

2. 작은 문제도 문제는 문제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작은 문제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털어버리자. 그래야 작은 허점을 핑계로 판을 뒤집으려는 동네 깡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 윤종훈 회계사
일부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출산장려정책에 위배된다고까지 비화시킨다. 정말로 별 것 다 갖다 붙인다. 파리는 조금만 냄새를 피워도 금방 꾀는 법! 파리를 탓하지 말고 냄새를 없애자는 것이다.

힘든 세상에서 먼저 양보하는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어쩌랴! 못난 놈들을 상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니 각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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