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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세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즉 걷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 걷는 것이다.

세금을 어떻게 써야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없이 단순히 '증세 대 감세'의 논쟁으로 계속 가다가는 '증세=개혁 : 감세=보수'라는 구도가 도식화되어 세금논쟁이 또다른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감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개혁적일까?

▲ 유효수요이론의 창시자 케인즈(왼쪽)와 공급측 경제학 즉 레이거노믹스로 유명한 아서 래퍼 교수.
필자가 알기로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에 영향을 준 현대경제학의 경향은 크게 '케인지안경제학'과 '공급중시경제학'으로 나뉜다.

케인지안경제학의 출발점은 '유효수요(소비+투자)'이다. 즉, 실업 및 불경기의 원인을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보는 것이다.

소득은 다 소비되지 않고 일부는 저축된다. 그런데 저축이 전부 투자 지출로 흡수되지 못하면 갭이 생기고, 이 갭으로 인해 실업이 발생하고 불경기가 도래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따라서 재정지출을 통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여 그 갭을 메꾸는 게 바로 정부의 역할이 된다.

케인지안경제학은 큰 정부를 원하므로 감세에 반대한다. 정부는 조세를 통하여 일정한 재정규모를 확보해야 하며 민간투자의 부족을 재정을 통한 공공투자로 메꾸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테네시 계곡 개발과 같은 공공개발사업이다.

반면, 완전경쟁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신뢰하는 공급중시경제학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조세는 기본적으로 사중손실(死重損失. Dead Weight Loss)로 인해 경제의 효율성을 해치므로 적을수록 좋다. 그리고 감세하는 경우 가처분소득의 증가로 민간부문의 저축과 설비투자지출이 증가하여 생산성이 향상된다(저축과 투자는 이자율의 함수로서 항상 균형을 이룬다고 가정하고 있다).

케인지안경제학과 공급중시경제학 모두 투자지출을 유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같지만, 전자는 거시적 차원의 수요 측면에서 접근하는 반면, 후자는 미시적 차원의 공급 측면에서 접근한 차이가 있다. 그 결과로 조세정책에 있어서는 '증세 : 감세'로, 정부에 대하여는 '큰 정부 : 작은 정부'로 구별된 것이다.

여기서 증세를 주장하는 진보(또는 개혁)세력이 독자적인 모델을 갖지 못한다면, '증세 : 감세' 논쟁이 자본주의 경제학 간의 학문 논쟁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케인지안의 길인가? 그렇다면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정부 여당 내에도 케인지안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많을테니까. 그들을 모두 개혁세력으로 보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케인지안과 구별되는 지향점은 무엇인가?

차이는 '사람'에 있다

지금 경제의 화두는 '생산성 향상'이다. 이 점에서는 공급중시경제학이 케인지안경제학보다 우월하다. '유효수요'에서 출발한 케인지안경제학은 공급 측의 생산성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급중시경제학은 감세가 '민간설비투자확대 및 세후 임금 증가로 인한 노동공급증가'를 가져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고 보고 있다.

케인지안경제학과 공급중시경제학은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케인지안은 유효수요 창출의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공공개발사업을 선호한다. SOC를 비롯한 건설투자를 통하여 경제성장을 꾀하려는 경제 관료들의 생각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사람은 소비수요의 주체에 불과하다.

공급중시경제학은 생산성을 걱정한다. 그러나 설비투자와 계량적 개념으로서 노동공급량에 초점이 맞추어야 있다. 사람은 노동투입량으로 대체된다.

지식기반경제 하에서는 고숙련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증대하는 반면, 단순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감소한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의 지식과 숙련도를 갖지 못한 노동자를 방출한다.

방출된 노동자는 사회안정망으로 생계를 보장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직업훈련 등을 통하여 시장이 요구하는 숙련도를 갖추게 한 후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시키는 것이 덴마크 모형이다. 이 모형의 중심은 노동자의 지식과 숙련도 향상,
즉 질적인 개념의 인적자원 개발에 있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연대임금정책이다. 기업의 수익성에 관계없이 동일노동에 대하여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수익성이 높은 고성장 부문(A)은 초과이윤을 얻게 되지만 수익성이 낮은 부문(B)은 손실이 발생하여 시장에서 퇴출된다.

저성장 부문의 퇴출로 인하여 발생한 실업자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하여 교육훈련 후 고성장 부분으로 이동시킨다. 스웨덴 모델의 중심 역시 질적인 개념의 인적자원 개발이다.

덴마크 모델은 '유연한 노동시장'을 매개로 하고 스웨덴 모델은 '연대임금정책'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질적인 개념의 인적자원을 토대로 한 경제성장 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필자는 이를 '사람 중심의 성장 모형'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 중심의 성장 모형'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자본과 건설 중심의 성장 모형'에 비하여 양극화를 해소하면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형 '사람 중심 성장 모형'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자원은 사람 뿐이다. 그런데도 케인지안의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좁은 땅덩어리를 이리저리 파헤쳐서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한다. 감세론자들은 세금만 깎아주면 기업들이 알아서 성장하고 실업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속편한 기계론에 빠져 있다.

'증세'는 케인지안과 발맞추고, 공급 측면의 '생산성' 문제는 공급중시경제학과 발맞추되 우리만의 '사람 중심의 성장 모형'을 고민해야 한다.


소득 양극화의 주범인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하여는 스웨덴식 연대임금정책이 바람직하나,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와 낮은 노조조직률(약11%)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도입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 월 64만원의 최저임금을 업종별 평균임금의 50~60%로 조정하는 방향이 더 현실적이다. 이 경우 기존의 최저임금선①은 ②로 상향조정되고, 저성장 부문인 B는 시장에서 방출된다.

B 부문에서 방출된 노동력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직업훈련 등을 통하여 고성장 부문인 A로 재진입시킨다. 학습복지는 "보육과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개념으로서, 0세부터 정규교육과정이 마칠때까지의 무상교육과 평생학습체계의 구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학습복지는 높은 수준의 인적자원을 개발하여 고성장 부문에 신규 진입시킨다. 그리고 노동복지와 학습복지는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사회안전망(Welfare)-노동복지(Workfare)-학습복지(Learnfare)'의 체계를 '3fare 복지구조'라 부르자.

'3fare 복지구조'는 높은 수준의 인적자원을 노동시장에 계속 공급함으로써 지식기반경제 하의 고성장을 이루게 하여 기존의 기업 수익선③을 ④로 이동시킨다. 고성장은 세수를 증대시켜 '3fare 복지구조'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재원의 조달을 가능케 한다.

각 분야별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사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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