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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최대 화두는 사회 양극화 문제다. 이에 따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세금'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불 지핀 '증세'와 한나라당이 맞불을 놓은 '감세'가 충돌해 '세금 논쟁'이 정치·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정치권의 세금 논쟁을 세 차례 연재한 데 이어, 세금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와 세금을 어떻게 거둬야 하는지에 대해 기획기사를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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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논쟁①] '여우' 같은 박근혜, '곰' 같은 노무현

ⓒ 오마이뉴스 한은희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3fare 복지구조'는 사회안전망(Welfare)을 기본으로 하고 노동복지(Workfare)와 학습복지(Learnfare)를 그 위에 세우는 구조를 지닌다.

노동복지는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하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학습복지는 '보육과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개념으로 0세부터 정규교육과정이 마칠 때까지의 무상교육과 평생학습체계의 구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은 '낭떠러지 없는 사회'를 목표로 실업자나 자활무능력자 등을 대상으로 한 복지서비스이다.

신자유주의자조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주장하는 이유

지난 1월 9일, 필자의 눈을 의심케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나왔다. '일본의 소득양극화 현황과 시사점'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일본에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기존의 '평등국가적' 소득분배에서 영미식 소득격차 양상으로 전환되는 현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영미식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다니?

이 보고서는 소득양극화의 배경으로 장기불황, 비정규직의 증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고령화 급진전 등을 들고 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 점이다. 특히, 소득세율 인하, 상속세 감면, 소비세율 인상 등으로 특징짓는 신자유주의적 조세개혁이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들으면 뜨끔할 부분이다.

그리고, 양극화를 해결할 방안의 하나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도대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무엇이기에 진보진영뿐 아니라 삼성경제연구소에서조차 거론하는 것일까?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실업자가 된 후에 실업급여 등을 통하여 소득지원을 해주는 '뒷북치는' 정책인 반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교육훈련과 직업중개 등을 통하여 실업자가 되지 않도록 하거나 실업자가 되더라고 곧바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국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탐탁치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지식기반경제로 급격히 이행하는 산업 환경은 신자유주의자들조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는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므로 기업으로 하여금 내부노동자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한 노동이동성 증대는 기업의 내부노동자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를 꺼리게 하고 있다. '가르쳐서 써먹을 만하면 다른 기업에서 빼가니, 이거 원!' 기업 인사담당자의 이러한 푸념이 이러한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본이 요구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칼이 되어 자본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양날의 칼이다.

개별기업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감소는 산업 전반에 있어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자들조차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공공부문이 상당 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진보와 보수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여기서, 공공부문이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감세를 주장하는 그들의 이중성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바닷물을 퍼다가 하란 말인가?

ⓒ 오마이뉴스 한은희

노동시장정책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위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시장정책의 범위는 매우 넓다. 노동시장정책의 각 분야를 설명하게 되면 기사가 아니라 논문이 될 테니, 각 분야의 내용은 제목으로 짐작하고 상황을 통해 노동시장정책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느껴보도록 하자.

[상황1] 홍길동은 컴퓨터 도·소매 및 수리를 하는 조그만 회사에서 수리담당 기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가 부도나서 졸지에 실직자가 되고 말았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두 달간 밀린 월급조차 못 받았다. 올해 유치원에 들어간 6살짜리 아들과 뱃속에 있는 아기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신세 한탄할 여유조차 없다. 어디서 직장을 찾을까?

벼룩시장을 뒤져 컴퓨터의 '컴'자만 보여도 전화를 했으나, 자격조건이 안 맞거나 이미 사람을 구했다고 한다. 인터넷의 취업알선 사이트를 방문해서 돈을 주고 등록을 했다. 그런데,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은 컴퓨터를 고치지 않고 그냥 교환하는데 추세인데다, 몇 년 전부터 컴퓨터 관련 업종에 인력이 과잉인 상태라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벌써 한 달이 흘렀다.

당장 들어갈 생활비 때문에 더 이상 직장을 찾아다닐 여유가 없다. 홍길동은 비정규직이라 고용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아 실업보험에 의지할 수도 없는 처지다(실제로 비정규직의 35%만이 고용보험에 가입된 상태다). 지난 세 달간의 생활비는 카드빚으로 겨우 메꾸었다. 지금 당장 홍길동이 써먹을 수 있는 자격증은 운전면허증뿐이다. 그래서, 일단 대리기사로 취업을 하기로 했다. 대리기사도 워낙 경쟁이 치열해 밤새워 뛰어야 겨우 생활할 정도다. 너무도 피곤해 다른 건 생각할 여유가 없다.

5년 후, 홍길동은 노점상을 하고 있다. 나이는 먹고, 기술은 없으니 어쩌랴!

[상황2] 회사가 부도났다. 홍길동은 가까운 고용안정센터를 찾아가 컴퓨터 수리 업종의 구직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며칠 후, 고용안정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상담을 하자는 것이다. 고용안정센터를 다시 찾아 직업상담사를 만났다. 자신을 전자업종 전문 직업상담사라고 소개한 그는 다른 업종을 찾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현재 개인컴퓨터 수리 업종은 인력이 과잉이고, 컴퓨터를 고치기보다 그냥 교환하는 추세에 비추어 그다지 전망이 밝은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가 제안한 업종은 가전제품 수리업종이다. 가전제품은 계속 고급화, 대형화하기 때문에 수리업종 역시 앞으로도 유망할 것이며, 나중에 실력을 인정받으면 제품개발에도 참여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 8시간씩 6개월간의 교육훈련기간이 필요하다. 홍길동은 고용보험에도 가입이 안 되어 당장 돈 나올 데가 없는데 6개월 동안 뭘 먹고 사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실업부조 제도가 있다고 한다. 비록 실업보험을 수령할 자격은 없지만, 직업훈련기관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직업훈련을 받고 추후 소개해준 곳에 취업을 하는 조건으로 훈련기간 동안의 생계비를 보조해주는 제도라고 한다.

홍길동은 흔쾌히 응했다. 직업훈련기관의 강사는 대부분 가전제품 제조업체에서 제품개발 또는 수리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한 분들이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근무하여 전문성을 쌓아왔던 분들이라 수강생 입장에서는 알찬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강사들의 입장에서도 정년퇴직한 후에도 새로운 일거리가 주어져 풍요롭고 활력 있는 노년 생활을 보낼 수가 있었다.

6개월 후 홍길동은 직업훈련기관에서 자격증을 수여받고 가전제품 제조회사에 취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 실력과 창의성을 인정받은 홍길동은 제품개발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노동시장정책 예산

이전 기사에서 덴마크의 모형을 본 바 있다. 덴마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받아들이되 사회안전망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실업에 대처하는 소위 '유연안전성' 모형을 가지고 있다. 덴마크의 노동시장정책 예산은 GDP의 4.6%(이중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예산은 약 1.6%임)이다.

▲ 윤종훈 회계사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매우 높은 수준이면서도 노동시장정책의 예산은 GDP의 0.42%(이중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예산은 0.28%임)로서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이건 실업자가 되면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것과 같다.

선진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말하려면 동시에 노동시장정책 예산에 대하여도 말해야 한다. 덴마크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노동시장정책에 배정된 예산은 덴마크의 1/10도 안된다. 노동시장정책 예산을 덴마크의 1/3 수준으로만 끌어올리려 해도 약 10조원의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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