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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생리도 세금내고 하란 말인가'란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생리대 세금 문제는 단순히 세금문제가 아니라 여성복지와 연관되는 것이기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사실, 남성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안은 외면하는게 현명한 처신이다. 잘해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생리대 세금으로 인한 세수증대 효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라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런데 세금에 대하여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댓글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세금 전체에 대한 불신과 납세거부운동으로까지 번지는 것 아닌가?

이 사안이 그렇게 흥분할 일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1. 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로 소비자에게 어느 정도 혜택이 될까?

ⓒ 오마이뉴스 한은희

위 표를 보면, 생리대가 부가가치세 과세품목인 경우 제조회사의 이익이 100인 반면, 면세품목인 경우에는 90으로 줄어든다. 제조회사가 원재료 매입시에 부담한 부가가치세가 제조원가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양심적인 기업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가격을 올릴 것이다. 매출액을 210으로 올리면 이익이 다시 100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그래도 양심적이다.

비양심적이면서 머리 회전이 빠른 경영자는 215 정도로 올릴 것이다. 그러면 이익은 105로 전보다 더 많아지지만, 소비자가격은 220 - 215 = 5 만큼 내려가기 때문에 소비자로부터 불만을 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고로 들어올 세금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제조회사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 '죽 쒀서 개준다'는 말이 있다. 여성단체의 여성복지를 위한 생리대 세금 없애기 운동이 의도와는 다르게 일부 비양심적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현상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래도 5만큼은 소비자에게 돌아오지 않느냐고?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사실 할말이 없다.

2. 부가가치세 영세율로 하면 소비자의 혜택이 늘어난다, 이게 옳은 방향일까?

ⓒ 오마이뉴스 한은희

영세율의 경우는 제조회사가 원재료 매입시에 부담한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준다는 점에서 면세와 다르다. 따라서 제조회사의 이익은 과세의 경우와 변함이 없기에 가격을 올릴 유인이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에도 비양심적인 기업은 220에서 200으로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만 내려서 자기 뱃속을 채우겠지만, 어쨌든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면세의 경우보다 커질 것이다. 그러면 생리대를 영세율 품목으로 돌리자고 해야 옳을까?

여기서부터는 논리적인 부분 보다 가치관의 문제가 개입된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극빈층 여성은 빨아서 쓰는 면생리대를 사용한다고 가정하여 생리대 구입액을 0으로 하였다. 부유층 여성은 아무래도 비싼 생리대를 쓸 것이다(실제 '한방생리대'니 뭐니 하여 꽤 고급생리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리대를 영세율로 하여 세금 300을 위와 같이 나누는게 좋은지, 아니면 300을 다 거두어 극빈층 여성을 위한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는게 좋은지?

3. 부가가치세는 간접세라 역진적이어서 세부담을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전체 세수 중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게 더 좋다는 뜻이다.

간접세 부담액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간접세 비중이 높은 경우도 있지만, 직접세를 제대로 못 거두어 전체적으로 세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간접세 비중이 높은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간접세 비중이 높다, 따라서 간접세 부담을 낮추어야 한다'가 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직접세를 더 거두어 세수 문제를 해결하라'가 우선적인 주장이 되어야 한다.

'세수가 부족한가?'에 대한 대답 역시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올 것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정부가 할 역할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세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고, 정부가 양극화 해소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면 세수가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후자이다.

한편, 부가가치세 부담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면세범위를 확대하면서 부담률을 낮추는 정책이 바람직한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위의 두 결과 모두 부가가치세 세수가 같다. 이는 국민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부가가치세 부담률이 같음을 뜻한다.

<정책 1>은 일부 품목에 대하여 면세를 하고 부가가치세율 10%를 유지하는 정책이고, <정책2>는 예외 없이 과세하되 부가가치세율을 낮게 하는 정책이다. 형평성의 관점에서는 <정책2>가 우월하다.

생리대 외에도 여성필수품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들 품목에 대한 면세확대가 '여성복지 + 역진적인 간접세 부담 감소'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주장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구분기준이 '여성 : 남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 문제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만 볼 경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2년간 여성이 세금 안내고 생리했지만, 모든 여성과 남성은 여전히 세금내고 밥 사먹고 있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

최근 세금이 여성과 서민 등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사태로 진짜 이익 보는 자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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