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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피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관료의 '대기업·수출·건설' 중심의 문화는 아직도 예산구조를 어둡게 덮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3년 3월 15일 오후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경제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지고 있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취임식.
ⓒ 연합뉴스 성연재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마련 방안으로 증세를 이야기할 때면 '예산 절감부터 먼저 하라'는 주장이 항상 뒤따른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라는 반문에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감사원 조직을 10배쯤 늘려서 수시로 감사해야 하나? 이건 또 다른 낭비일 수 있다. 그렇다고 공무원의 양심에 호소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한꺼번에 원하는 만큼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이 없듯이, 한 번에 예산 낭비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방법은 없다. 황제다이어트, 포도다이어트, 사과다이어트 등 별의별 다이어트 방법이 다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꾸준히 운동하고 적당히 먹는' 방법이 정답이라고 한다. 비록 싱거운 대답이지만 이게 진실인 걸 어쩌랴!

예산 낭비를 줄이는 방법은? '시민참여예산제를 통하여 예산편성과정에 시민이 참여하고 꾸준히 예산감시운동을 펼쳐야 한다'가 정답이다. 그렇다고 이게 정답의 전부라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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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뜯어고쳐야 하는 경우

비효율적인 행정조직으로 인하여 예산낭비가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직업훈련에 관련된 법령은 32개 법령이며 17개 부처가 관련되어 있다. 교육부, 노동부는 물론이고 여성부, 국방부, 통일부까지 다양한 부처가 이에 관련되어 있다. 또한 같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상의 직업교육인데도 대상자가 근로자인 경우는 노동부가 관할하고, 대상자가 일반인인 경우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관할하고 있다.

대상자만 다를 뿐이지 비슷한 내용의 직업훈련에 대한 예산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비효율성과 중복집행에 의한 예산낭비가 우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누차 지적하고 있으나, 워낙 여러 부처가 얽히고설킨 문제라 마땅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만 더 지적하자. 지금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관심사이다. 최근 노동부 관할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이 관심을 받고 있으나, 이전부터 보건복지부가 저소득층을 상대로 수행해온 자활지원사업 역시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이로 인해 현재 일자리 창출 사업이 보건복지부와 노동부로 이원화되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자활지원사업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이 이렇게 구분되어서 진행되어야 할 만큼 차별성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 역시 비효율성·중복집행에 의한 예산낭비가 또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잘못된 구조에 의해 야기되는 예산낭비는 그 구조를 고쳐야 해결된다.

위에서 지적된 두가지 문제는 예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여기저기 얼마든지 숨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두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구조적인 예산낭비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자본과 건설 중심의 예산구조를 극복해야

이번에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겠다. 이는 예산낭비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예산구조의 패러다임에 관련된 문제이다.

지난 2월 8일에 필자가 올린 기사('감세를 반대하면 무조건 개혁적일까?')를 본 독자는 기억하겠지만, '사람 중심의 예산구조'를 한국적 '사람 중심의 성장 모형'의 핵심적 부분으로 설명한 바 있다. 왜 '사람 중심'이란 수식어를 달았을까? 현재의 예산구조가 지나치게 '자본과 건설 중심의 예산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2004년도 중앙정부의 통합재정분야별 지출구조를 보면, 경제사업(SOC건설, 산업투자 등)과 '복지 및 삶의 질'(사회복지, 문화관광, 환경 등) 부분의 비중이 각각 23.1%와 23.4%로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OECD 15개국 평균을 보면, 경제사업이 8.8%, 복지 및 삶의질이 55.4%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후자가 너무나 무시되고 있다.

GDP 대비 사회보장지출 규모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98년도 6.1%, 2001년 6.3%에 불과한 반면, OECD 평균은 23.7%에 이른다. 선진국 중에서도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하다는 미국(15.0%)과 일본(15.1%)의 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7월에 경제기획원이 신설되었고 국가의 예산기능은 경제기획원 예산실에 집중되었다.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수립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키워드는 '재벌·수출·건설'이었고, 자연스럽게 예산은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배정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끝난 후에도 이러한 예산배정의 전통은 계속 이어져 경제관료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모피아(MOFIA : 재정경제부의 영문 Ministry of Finance and Economy와 마피아의 영문 MAFIA의 합성어)! 예산, 세수, 금융 등 모든 경제권력을 한손에 쥔 경제관료의 막강한 힘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1999년 기획예산처가 국무총리 직속의 중앙행정기관으로 독립되면서 정부조직상 예산권이 재경부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러나 경제관료의 문화적 동질성은 조직을 초월한다. 그들의 '대기업·수출·건설' 중심의 문화는 아직도 예산구조를 어둡게 덮고 있다.

예산과 관련하여 우리는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하나는 같은 성질의 예산이 각 부서에 분산 집행됨으로써 발생되는 예산낭비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과 건설 중심의 예산'의 전통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고질적인 문제라서 적당한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두가지 난제, 사회부총리 신설이 대안

여기서 필자는 사회부총리를 제안한다. 그러나 특정 장관 앞에 딱지만 붙이는 사회부총리는 거절한다.

2001년, 교육부장관이 인적자원개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으며 교육부총리로 승격했다. 그리고 주요 관계 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인적자원개발회의'를 의장으로서 주재하고 있지만, 별 영양가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의에서 조정·결정된 정책이 실행되려면 예산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뒤따라주지 않는 부총리 딱지는 기분만 좋을 뿐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사회부총리는 예산구조의 개혁을 포함하는 것이다.

사회부총리의 기능은 ①기존의 보건복지부 기능 ②교육인적자원부 중 인적자원정책국과 평생학습국의 기능(이 경우 교육인적자원부는 정규 학교교육만 주로 담당하게 되므로 교육부총리는 폐지하고 교육부로 개명함) ③노동부 중 노동시장정책 관련 기능 등을 포괄한다.

'3fare 복지모형'에서 ①은 주로 사회적 안전망(Welfare)을, ②는 학습복지(Learnfare)를, ③은 일자리복지(Jobfare)를 담당하게 된다.(앞의 기사에서 필자가 일자리복지를 노동복지(Workfare)로 표현했으나 용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어 일자리복지로 바꾼다)

ⓒ 오마이뉴스 한은희

현재의 예산결정과정을 보면, 기획예산처에서 중앙행정기관의 각 부서로부터 예산안을 받아 조정을 거친 다음,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하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각 부서별로 전년도 대비 몇% 증가(또는 삭감)의 방식으로 예산이 결정되게 되므로, 국가의 미래 전략이 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우선 각 예산항목을 성질에 따라 ①경제정책(건설, 산업투자, 금융지원 등) ②사회정책(복지, 교육, 일자리창출 등) ③기술개발정책으로 나누어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 관련 예산을 맡고, 사회부총리는 사회정책 관련 예산을 맡으며, 기술개발정책 관련 예산은 과학부총리가 맡도록 한다. 예를 들어 농림부 예산의 경우 ①농지조성 및 농산물유통개선 등과 같은 농업정책 ②농민복지 및 농업인력개발 등의 사회정책 ③농업기술개발정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예산편성 및 성과 평가를 각각 ①경제부총리 ②사회부총리 ③과학부총리에 귀속시키자는 것이다.

예산편성은 1차적으로 국무총리와 3부총리 간에 거시예산방식(국가의 미래전략에 따라 위에서 예산이 결정되어 아래로 내려오는 top-down 방식)으로 편성된다(위 그림에서 박스1). 예를 들면 몇 년 후 달성할 국정목표를 위해 경제정책, 사회정책, 기술개발정책에 각각 어느 정도 예산을 배정할 것인가의 방식으로 예산이 결정되는 것이다.

1차적으로 예산이 편성되면 각 부총리가 할당된 예산의 범위 내에서 각 부서와 미시예산방식(각 부서가 요구한 예산안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bottom-up 방식)으로 예산을 결정한다(위 그림에서 박스2).

이러한 예산구조가 도입된다면, 사회부처의 위상이 경제부처와 동등하게 격상되고 각 부서에 흩어진 예산을 성질별로 취합할 수 있어 '진짜' 복지예산이 얼마나 편성되고 지출되었는지 정확히 평가됨으로써, 예산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바꾸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현재, 복지인프라를 구축한다며 동일지역에 여성회관, 노인회관, 청소년수련관, 문화회관 등을 비롯한 각종 복지관련 회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만약 여성부, 보건복지부, 문화관광부 등에 흩어진 건설 관련 예산을 한곳에서 집중 심사한다면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5개의 회관을 2~3개로 줄이면서 집약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예산낭비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가 있으며, 건설회사의 주머니에 들어갈 '가짜' 복지예산을 진짜 복지예산으로 돌릴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람 중심의 예산구조'와 예산의 효율적 운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큰 그림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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