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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은 너무도 취약하여 투자할 곳이 많은데다 문제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단기간에 투자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진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어린이집.
ⓒ 김진이
"어, 등록금 고지서가 없네?"

올해 중학생이 되는 딸이 임시소집에 다녀와서 내민 입학안내문을 보고 아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중학교가 무상교육이니까 당연히 등록금 고지서가 없지." "아 참, 그렇지!"

딸애 위로 고3이 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애 다음 학년부터 중학교 무상교육이 실시된 탓에 중학교 등록금을 계속 납부해온 터라 깜빡한 모양이다.

"이게 바로 세금의 힘이야." 내말에 아내가 슬며시 웃는다. 동의한다는 뜻이다.

보육에서 시작하자

며칠 전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머리 속에 뭔가 맴돌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건데….' 시민의 복지를 위해 지었다는 시립체육관, 여성 및 노인복지 회관, 청소년 수련관 등을 보고도 세금을 깨닫지 못했던 아내이다. 오히려, 텅 비어있어 관리비용만 낭비하는 공공시설을 볼 때면 세금 낭비한다고 분통을 터뜨리곤 했다. 세금이란 단어에 얼굴을 찌푸리던 아내가 처음으로 이 단어에 미소를 지었다.

세금논쟁에서 증세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이 우위를 점하려면 국민들로 하여금 세금이 자신을 위해 쓰여질 것임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납세자들은 대부분 부모들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감동받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하는 것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잘해줄 때 가장 감명을 받는다. 그렇다면, 세금이 아이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쓰여질 때 납세자의 입장에서 세금의 힘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보육에서 시작하자.

교육은 대학 입시제도와 복잡하게 맞물려 있고 너무도 큰 문제라 단기간에 투자 효과를 보여주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은 너무도 취약하여 투자할 곳이 많은데다 문제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 단기간에 투자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최근 가장 큰 화두가 된 저출산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도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따뜻한 곳에서 잠자며, 제대로 된 취학전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한나라당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선후보 중 지지율 1위를 지속한 지 상당기간이 되었다. 3년 전의 히딩크 사진 촬영 사건(공식석상에서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의 이명박 시장 아들과 히딩크 감독이 같이 사진 찍은 사건으로 당시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을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다.

다 알다시피, 이명박 시장의 지지율 1위는 청계천 사업 때문이다. '돈 쏟아 부어 조경사업 하나 잘한 것 갖고 대통령감이라니?'라고 한탄하기 전에 그 이면에 있는 국민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국민들은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말만 많은 개혁보다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것 하나'를 만들어 낸 보수를 선택한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홍준표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아파트 반값' 공약 때문이다. 이 공약이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여부는 일단 차치해두고, '헌법과 같은 부동산 투기 대책' '하늘이 두 쪽 나도…' 등등 말만 많았지 부동산 투기를 제대로 못 잡은 현 정권과 대비되어 '확실한 것 하나'를 챙긴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향후 몇 년간 어느 분야에 얼마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고 어쩌고, 그래서 기대되는 효과는 이렇고 저렇고…." 현재 정부여당에서 주로 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야기에 가슴이 다가가는가?

'희망한국 21' 추상의 극치인 이 단어에서 뭘 느낄 수 있는가?

여기서, 키워드는 '확실한 것 하나'이다.

비교적 빨리 돈을 마련하는 방법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확실한 것 하나 … 보육정책'을 주장하려고 한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돈은 어디서 마련하나?

어설픈 증세논쟁으로 보수언론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은 정부여당은 지금 바짝 꼬리를 내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방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뭔가 보여줄지 모른다고 기대하는데, 정부여당의 지적 수준과 내부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중장기적으로 공평과세를 통하여 재원을 늘리고…" 이처럼 하나마나한 일반론을 이야기하거나, 손쉽게 세수확보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가 또 다시 융단폭격을 받거나 할 것이다.

지금, '중장기적' 운운하는 한가한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보수 진영은 2~3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대안을 갖고 이야기하는데, 추상적인 단어에 '중장기적' 형용사를 붙여 뭘 어쩌겠다는 건가?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2005년에 비과세감면으로 새어나가는 돈은 20조에 달한다. 이 중 정당성과 실효성이 의심되는 것만 정리해도 상당한 세수확보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세수확보 효과는 당장 나타난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정리하면 내년부터 당장 세수확보가 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불합리한 비과세감면을 정리하자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므로 명분도 충분하다. 이틀 전, 필자가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과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사이에 진행된 세금문제를 둘러싼 '1:1 토론'에서 사회를 보았다. 두 분 다 불합리한 비과세감면의 정리가 조세개혁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라는데 동의했다.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각론에 있다. 필자가 '지금 학원비에 대하여 부가가치세를 면세하고 있다. 사교육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사설학원에게 면세혜택을 주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실제로 강남주민이 이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다). '학원비에 대하여 부가가치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생각은?'이라는 질문에 두 분 다 확실한 대답을 피했다.

상황은 이해가 간다. 각 지역구의 학원연합회에서 반대 집회라도 하면 어쩌나? 이해는 가지만, 당장 세수확보가 가능하며 정당성도 충분한 조세개혁 방안조차 실현되기 어려움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착잡하다.

'확실한 것 하나'를 위해 모이자

ⓒ 오마이뉴스 고정미
보육정책과 비과세감면은 '단기적'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훌륭한 정책조합이 될 수 있다. 비과세감면의 정리로 당장 늘어나는 세수를 가칭 '저출산대책 특별회계'에 편입시키고, 이로써 실효성 있는 보육정책을 폄으로써 납세자에게 단기간에 세금의 힘을 느끼게 하자는 게 골자다.

그런데, 문제는 해결과제 ①, ②에 있다.

①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여성단체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영리목적의 민간보육시설에 현금 지원하는 보육정책은 변변한 보육시설이 없는 소외 지역의 어머니와 아이들을 또 한 번 소외시키고 있다. 보육시설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70%를 위한 보육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20~30명 규모의 소규모 공공보육시설을 동네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더 좋게,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 험한 세상에서 평생 고생할 텐데 아기 때 만이라도 호강해야 되지 않겠나?

여기서 '중장기적'이란 단어가 나오면 안된다. 올해 안에 정책을 만들어 내년부터 예산 배정하여 실행하자.

해결과제 ②에 대하여는 진보적 시민사회단체가 다 붙어야 한다. 수십, 수백 개의 이해단체와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감세공약에 점잖게 비판논평 내고, 정부여당에 냉소를 퍼붓는 것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욕먹고 돌 맞더라도 올해 안에 5조원의 '저출산대책 특별회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내년부터는 칭찬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누가 나서서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솔직히 이에 대하여는 필자도 답이 없다. 다만, <오마이뉴스>에 바란다. 당신들이 가진 네트워크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없겠는가? 기사로 여론을 만들고, 기자 개인이 가진 인맥을 통하여 적임자들에게 그 뜻을 전달하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을 연결시키고 하면, 안 되겠니?

그럴 뜻이 있다면, 적어도 나는 몸과 마음과 머리를 모두 빌려줄 것이다. 이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도 지겹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보고서를 읽는 것도 지겹다. '확실한 하나'에 올인하여 '확실한 하나'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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