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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들에게 있어 풍만한 여인네 젖가슴은 훔쳐서라도 보고 싶은 유혹입니다. 석가모니 부처에게도 여인네의 젖가슴은 유혹의 손길로 뻗쳤었습니다.
ⓒ 임윤수

@BRI@아가들에게 있어 엄마의 젖가슴은 생명줄과도 같지만 성인 남성들에게 있어 풍만한 여인네 젖가슴은 훔쳐서라도 보고 싶은 유혹입니다. 터질듯 부풀어 있는 뽀얀 젖가슴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결을 거칠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여인네 몸치고 부드럽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젖가슴 살은 더더욱 부드럽습니다. 비단결보다 보드랍고 물먹은 꽃잎만큼이나 촉촉하면서도 매끈합니다. 동그스름한 젖가슴은 풍부하면 풍부한 대로 탱탱한 탄력감으로 유혹하고, 조금 빈약해 보이면 몰캉거리는 편안함으로 남정네들을 유혹합니다.

온전하게 다 드러내지 않고 슬쩍슬쩍 옷깃사이로 비춰지는 봉긋함만으로도 남자들의 원초적 본능과 호기심을 갈대처럼 흔들어 대는 게 여인네들 젖가슴입니다.

성숙한 여인네의 젖가슴은 남성들로 하여금 훔쳐보고 싶은 유혹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음흉한 마구니가 되어 자신의 인생에 화살이 되기도 합니다. 여인네 젖가슴은 참말 아름답지만 이렇듯 타락이나 유혹의 흑심으로도 작용을 하니 물리치거나 극복해야 할 극기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여덟 폭의 그림을 팔상도라고 하며 부처가 인간 세상으로 태어나기 전을 묘사한 ‘도솔래의상’(사진 위)과, 룸비니동산(비람)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하는 장면을 나타낸 ‘비람강생상’(사진 아래)입니다.
ⓒ 임윤수

2550여 전 부처가 된 석가모니 일생에도 여인네의 유혹은 있었고, 그 유혹은 다름 아닌 풍만한 젖가슴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여성의 가슴에서 느끼는 이런 유혹은 비단 오늘, 필자, 범부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남성들이 필연적이지만 극복하여야 할 보편적 사실임이 분명합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담고 있는 여덟 폭 그림, 팔상도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압축하여 나타낸 그림을 팔상도라고 합니다. 범부의 일생도 담기가 어렵거늘 수천 년 동안 경배의 대상인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 그림에 담았다는 것은 매우 함축적이며, 그 여덟 폭 그림에 등장하는 요소나 배경은 그만큼 상징적이 거나 심오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여덟 폭 그림 중 첫 번째 그림은 부처님이 인간 세상으로 태어나기 전을 묘사한 ‘도솔래의상’라고 하는 그림입니다.

하늘나라 도솔천에는 내원궁이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 내원궁에는 다음 생에 부처를 이룰 보살님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내원궁에서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흰 코끼리의 모습으로서 가비라국 마야왕비의 몸에 잉태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비로 ‘도솔래의상’입니다.

▲ 두 번째 그림에서 아기부처를 외호하고 있는 아홉 마리의 용은 구풍중생 모두를 구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임윤수

그림에서 부처님의 전생 모습을 흰 코끼리로 비유한 것은 온전한 깨우침을 의미한답니다. 법화경에는 3마리의 동물이 강물을 건너는 이야기가 있는 데 이들 동물들 중 토끼는 헤엄만 쳐서 강을 건넜고, 말은 성큼성큼 한 발걸음으로 강바닥에 발이 닿았다 떨어졌다하며 건넜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끼리는 강바닥을 온전히 골고루 디디며 차분히 건넌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물을 건너는 세 동물의 행보는 이들이 나타내는 깨우침의 정도로 설명이 됩니다. 토끼는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서 목적지(깨우침)에 도달하는 성문(聲聞)을, 말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깨달음을 얻지만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남을 깨닫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연각(緣覺)으로, 코끼리는 부처가 전생에서 수행하던 시절을 의미하는 보살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그러니 석가모니가 코끼리로 잉태를 하였다는 것은 생사의 강을 건너며 인생팔고의 의미를 다 파악하고, 진리를 확연하게 깨우친 석가모니가 보살의 삶을 살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여덟 폭 중 세 번째 그림(위)으로 태자신분인 석가모니가 동서남북 사문(四門) 밖으로 나가 인생을 관찰하는 모습을 그린 ‘사문유관상’과 석가가 말을 타고 성벽을 뛰어 넘어 출가하는 모습을 나타낸 ‘유성출가상’입니다.
ⓒ 임윤수

도솔천 내원궁은 이렇듯 다음 생에 부처가 될 보살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니 오늘날 내원궁엔 내세(來世)의 부처님이 될 미륵보살님이 살고 계실거란 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팔상도 중 두 번째 그림은 룸비니동산(비람)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하는 장면을 나타낸 ‘비람강생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달이 되면 해산을 하러 친정으로 가는 산모가 있듯, 인도에서는 아이를 낳을 적에는 친정으로 가서 낳는 풍속이 있었답니다.

마야부인도 산달이 되어 해산을 하러 친정이 있는 천비성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동산에서 무우수(無優樹) 가지를 붙잡는 순간 오른쪽 옆구리로 싯달타 태자를 낳게 되었다고 하니 그때 태어난 아기가 바로 석가모니입니다.

무우수란 말 그대로 ‘근심이 없는 나무’라는 뜻이니, 이때 태어난 부처님이 모든 중생들의 근심걱정을 모두 해탈케 하실 것임을 예고하신 뜻입니다.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는 다리 밑에서 태어나지 않고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함은 인도에 전해지는 신화, 오른쪽이 올바른 방향, 진리와 함께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인도사람들의 사고가 더해진 까닭으로 해석됩니다. 즉 부처님은 진리와 함께 하실 분이며,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동시에 묘사합니다.

▲ 출가를 한 석가가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을 나타낸 ‘설산수도상’(위)와 석가가 깨우치는 것을 방해하려던 모든 마구니들을 보리수 아래서 항복시키는 장면을 담고 있는 ‘수하항마상’(아래)입니다.
ⓒ 임윤수

인도의 신화에 따르면 최초의 거인에서 인간이 생겨날 때, 사제인 브라만은 입에서 생겨나고, 귀족인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생겨난답니다. 평민인 바이샤는 허벅지에서, 노예 신분이 되는 수드라는 발가락에서 생겨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인도에서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셨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모든 중생들이 겪는 여섯 걸음, 하늘,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으로 이어지는 육도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서 해탈할 것임을 예고하셨다는 표현이랍니다.

두 번째 그림에서 오른쪽을 보면 아홉 마리의 용이 아기부처님을 외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아기부처님이 태어나셨을 때 아홉 마리의 용의 출현하여 따뜻한 물과, 시원한 물로 정갈하게 씻어 주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상상의 존재인 용이 아기부처님을 외호하고 있다는 것은 아기부처님은 출생과 동시에 여러 가지 신통력을 갖추셨으며, 따뜻한 자비의 손길과 삼세(三世)의 인과를 아는 지혜의 힘으로 9품의 중생을 모두 다 구제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위한 출가로 이어지는 사문유관

세 번째 그림은 태자신분인 석가모니가 동서남북 사문(四門) 밖으로 나가 인생을 관찰하는 모습을 그린 ‘사문유관상’입니다. 그림 왼쪽에 부처님의 형상으로 앉아 계시는 모습은 아마도 부처님이 태자시절 농경제에 참가 했을 때 선정에 잠겼던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처님이 사문을 나와 병든 사람과 노인 그리고 죽은 자의 모습을 보며 생사에 대한 고뇌가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오직 깨달음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눈 덮인 설산에서 고행하고 있는 부처의 수행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임윤수

오늘날 우리는 보통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표현 하지만 고대의 인도에서는 태양이 도는 방향을 따라 ‘동남서북’으로 표시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왕자는 차례대로 동남서북 문을 나서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막연하게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처럼 사문을 나와 직접 생로병사를 보게 됨으로 석가부처님은 보다 진지하게 생사의 강을 건널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는 진리탐구가 시작되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네 번째 그림은 석가가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을 나타낸 ‘유성출가상’으로, 말을 타고 성벽을 뛰어 넘는 장면으로 부처님의 출가를 그렸습니다. 그림에는 단순하게 말을 타고 성벽을 뛰어 넘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림의 내면에는 속세와의 모든 연을 끊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출가자의 결연한 의지도 함께 담겨 있는듯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왕자의 자리, 권세영화에 호의호식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왕자의 자리뿐 아니라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과는 물론 사랑하는 부인과 천륜으로 연을 맺고 있는 자식과의 인연도 모두 끊거나 접어야 하니 출가를 결행한 석가모니의 의지야 말로 성벽을 뛰어넘는 마상과도 같다 할 것입니다.

▲ 깨우침을 방해하기 위해 마구니들은 이렇듯 여인의 가슴으로 수행중인 석가모니를 유혹하였습니다.
ⓒ 임윤수

이렇게 출가를 한 석가가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 다섯 번째 그림인 ‘설산수도상’입니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오직 깨달음을 얻겠다는 일념으로 눈 덮인 설산에서 고행하고 있는 부처님의 수행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의 깨달음을 방해하려 등장시킨 유혹의 젖가슴

이런 고행을 거쳐 마침내 부처님께서 깨우침을 얻으려하자 거칠 것 없이 세력을 행세하던 마왕들에겐 더없는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온갖 마구니들을 등장시켜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마구니들의 훼방이나 유혹을 뿌리치고 깨달음을 얻게 되며, 이때 등장하는 모든 마구니들을 보리수 아래서 항복시키는 장면을 담고 있는 그림이 여섯 번째인 ‘수하항마상’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하려고 마왕들이 무서운 모습으로 등장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무력으로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한편, 관능적인 여체로 등장해 유혹의 손길도 뻗쳐봅니다.

이때 유혹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여체가 다름 아닌 풍만한 여인의 젖가슴입니다. 출가 전 결혼을 하여 이미 젖가슴의 보드라움과 짜릿한 촉감을 경험하였을 석가모니에게 풍만한 여인의 젖가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탱탱한 젖가슴은 성욕에 대한 갈증이며 극복해야 할 유혹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 깨우침을 얻은 석가 일찍이 함께 수행을 하였던 비구들을 찾아가 깨우침을 말을 전합니다.
ⓒ 임윤수

이 유혹의 젖가슴을 떨치지 못해 순간의 쾌락이나 짜릿함을 맛보았다면 석가모니부처님은 존재 할 수 없었겠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은 마구니들의 이런저런 훼방과 유혹들을 흔들림 없이 극복하니 깨달음의 경지, 성불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원초적 본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은 이성에 대한 이런저런 유혹은 수행자들뿐 아니라 범부들조차도 극복해야할 유혹임이 분명하며 이 유혹을 극복하는 자만이 이루고자 하는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 부처님이 사슴이 뛰어노는 동산,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문(포교) 하시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일곱 번째 그림인 ‘녹원전법상’입니다. 개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일찍이 함께 수행을 하였던 다섯 비구들을 생각하고 멀리까지 찾아가 처음으로 설법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때 교진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제일 먼저 깨달음을 얻자 부처님께서는 "교진여가 깨달았다."하고 소리치며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한 동안 설법하기를 망설이다가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 가 함께 수행을 하던 도반들에게 깨달음의 말씀을 전하셨는데 처음으로 그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신 분이 나타나니 무척이나 기쁘셨을 겁니다.

▲ 깨우침을 얻은 석가가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법문(포교)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일곱 번째 그림인 ‘녹원전법상’이며, 여덟 번째인 ‘쌍림열반상’ 부처가 일생을 마치고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임윤수

이렇게 교진여가 부처님의 말씀을 처음으로 깨닫게 됨으로 드디어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제자로 이뤄지는 불법승 삼보가 모두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한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부처님 가르침. 팔만사천법문으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여덟 번째 그림은 부처님이 일생을 마치고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나타낸 ‘쌍림열반상’입니다.

80년 일생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춘다가 공양한 버섯요리를 먹고 탈이 나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게 됩니다.

왼쪽, 관에서 발목이 쑥 나와 있는 그림은 멀리 떨어진 기사굴산이라는 곳에서 선정에 들어있던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열반을 느껴 달려오자 이미 돌아가신 부처님이 관속에서 발을 내밀어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하여 비록 부처님의 몸은 널 속에 계시지만 살아 계신 부처님을 친견하게 한 곽시쌍부(槨示雙趺)를 나타낸 것입니다.

▲ 한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팔만 사천이나 되는 오묘한 가르침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임윤수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이 사라쌍수 아래서 ‘우리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무엇에 의지하여 수도를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였을 때 부처님께서는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라.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의(義)에 의지하여 진리를 공부하라. 나는 성도 후 지금까지도 한자도 설하지 않았느니라.’ 라고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한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팔만사천이나 되는 오묘한 가르침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그 가르침 속에는 극복하여야 할 유혹의 대상은 바로 여체, 젖가슴으로 표현된 욕정도 포함되어있음이 분명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중 팔상도 사진들은 불사중인 진천 보탑사 적조전 닫집에서 촬영한 것으로, 평편화가 아니라 목판에 입체조각을 하여 단청을 한 조각품입니다. 4월 22일 불사 회향법회가 있은 후 참배, 관람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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