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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고자이 마을 위령탑 뒤 회랑에 그려진 무서운 한국군의 모습.
ⓒ 김효성.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던 아군이 학살을 저질렀다는 기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겨레21>의 구수정씨를 비롯하여 이번의 김효성 기자까지 여러 건의 기사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 역시 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편이다.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제심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고도로 훈련되고 강력하게 무장한 전투원들이 어떤 이유로 자제심을 잃었을 때 발생할 비극의 형태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 플래툰에서 게릴라에게 동료를 잃은 미군 소대가 인근 마을에 침입해 학살을 자행하고 마을을 불사르는 장면은 결코 영화 속의 한 프레임이 아니다.

어찌 보면 학살은 전쟁에 필수적으로 함유되는 성분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앵글을 맞추면 베트남에 10년 가까이 기간 동안 무려 32만이나 되는 병력을 파견했던 아군도 학살의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동안 기사화되었던 아군에 의한 학살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특히 이번에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맹호부대의 고자이 마을 학살 기사는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먼저 증거의 하나로 제시된 위령탑 뒤편 회랑에 그려진 '무서운 한국군의 모습'부터가 틀렸다. 기자가 아는 상식으로 그 병사의 부대마크는 맹호부대가 아니라 남베트남의 레인저부대다.

맹호부대의 마크는 이름 그대로 호랑이가 크게 포효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도 차이가 많다. 그리고 부대마크를 오른 팔에 붙이는 것 역시 남베트남 부대의 특징이다. 아군의 경우에는 왼팔에 붙인다. 그것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면 상식에 속하는 것이며, 한국군이라는 병사가 입은 군복 역시 남베트남의 복장이다. 일단 외면적인 고증 부분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부대 마크·독약 살상, 고증과 상식에 맞는가

다음으로 학살의 방법에서도 문제가 발견된다. 목표물의 공중에서 폭발하여 살상효과를 높이는 지연신관 포탄과 헬기를 대규모로 동원하여 펼치는 헬리본 등은 논외로 해도 '독약을 먹여 죽였다'는 주장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독약을 먹여 죽이는 방식은 가해자가 소수이며 은밀하게 침투하는 경우에 제한된다. 그런 만큼 독살은 주로 암살에 적합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독약을 먹이려는데 얌전히 받아먹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은 발버둥치며 저항할 것이 뻔하다. 학살을 작정하고 들어간 부대가 그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사용할리가 없다. 그런 각도에서 접근하면 학살이라는데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다니 그냥 넘기기 어렵다. 피해자의 정신상태가 정상적이라고 전제하면 40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피해자가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리가 없고 다른 마을에서도 동일한 목격자가 있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부대마크와 군복 등이 전혀 다른 것은 위령탑 제작과정에서 맹호부대에 대한 고증이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단순한 오류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은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문제는 가장 중요한 교차검증이 없다는 것이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베트남의 '말라이 학살'이나 이라크의 '하디타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다. 6·25 당시 노근리의 경우도 그렇다.

그런데 고자이는 가해 측이 분명하지 않다. 기사를 보면 당시의 작전일지 등의 결정적 증거는 고사하고, 그때 학살에 가담했던 사람과의 인터뷰 같은 정황근거조차 없다.

가해 측의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면 기사로서의 순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학살보도가 전부 그렇다.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베트남까지 달려갔던 것은 매우 가상하다.

그러나 당시 맹호부대로 복무했던 사람을 수소문하여 찾아가거나 지휘관 급 인사들을 만나보려는 노력은 하였는가? 그렇게 발로 뛰는 것은 고사하고, 국방부에 공식적인 자료 요청이나 하였는지조차 의문이 간다. 지금까지 기사화된 학살이 전부 사실이었다고 해도 교차검증이 없으면 기사로서 인정받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좋지 않은 목적을 위해 대중을 미혹하는 행위로 지탄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는 충분한 것 같으니 기자의 의무와 양심은 내부로 향해야 할 것이다. 가해 측이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캐내기를 촉구한다. 사과는 그때 해도 늦지 않는다. 명확하게 교차검증되기 전까지는 학살은 극히 일부의 혐의에 그칠 뿐이며 참전용사들이 학살자의 일원으로 매도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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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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