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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번잡한 홍콩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곳 중 한 곳이 바로 '몽콕(旺角)'이란 동네다. 몽콕은 야우마테이와 함께 홍콩의 명물로 손꼽히는 야시장이 있으며 수많은 상가와 식당, 유흥가, 전제제품 상가 등이 즐비한 곳이다. 때문에 언제나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홍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몽콕하문 旺角下問>인 것은 몽콕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난생 처음으로 몽콕 거리를 홀로 걸었지만 별로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데뷔작인 <몽콕하문(旺角下問)> 때문이다.

1987년 작품인 <몽콕하문>(한국 개봉당시 제목은 엉뚱하게도 <열혈남아>였다)은 홍콩 반환을 앞두고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미래와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홍콩 젊은이들을 담담히 담아낸 수작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소개된 홍콩 영화 중 아직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감독한 왕가위는 80년대의 뉴웨이브 세대의 뒤를 이어 90년대 작가주의를 표방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다. 이 작품을 통해 홍콩의 실제 거리와 인공 세트를 적절히 활용, 공간을 새롭게 구성했으며 당시에는 생소했던 스텝 프린팅(Step Printing, 촬영 뒤 촬영된 프레임을 중복 복사하면서 프린트를 만들어내는 것) 기법과 과감한 슬로 모션을 도입, 홍콩 젊은이들의 불안한 모습을 감각적으로 묘사했다.

영화의 모티브는 감독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 <비열한 거리 Mean Street>(1973)에 등장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캐릭터를 살짝 빌려 완성했다. 그리고 1989년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선정되었고 홍콩에서 열린 제8회 금상장 영화제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수 십대의 비디오 브라운관과 명멸하는 네온 빛으로 시작한다. 이는 홍콩이라는 도시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무표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곳이 바로 홍콩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몽콕의 모습이다. 여기에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뒷골목 인생 유덕화가 있다. 그리고 그의 주변 사람들, 즉 앞뒤 못가리는 고향후배이자 부하인 장학우와 아리따운 시골여인 장만옥, 허세와 비열함이 주무기인 라이벌 깡패 두목 만자량이 가세한다.

이들 모두는 어딘가 모자라고 세상과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삐그덕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카메라는 이들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거칠고 음습한 홍콩의 뒷골목과 변두리의 황량한 공간을 넘나들며 집요하게 추적해 간다. 그리고 담담히 파멸의 순간을 관조한다.

왕가위 감독은 영화 전체의 시각적 기조를 다큐멘터리에 근접하는 투박한 사실주의에 두고 있다. 형광등 불빛을 주조명으로 그대로 사용한 실내장면은 인물들의 얼굴을 창백한 푸른빛으로 채색하고 완만한 리듬으로 끌고 가던 카메라는 뜻하지 않았던 순간에 격렬하게 움직이며 간간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터뜨린다. 그것은 마치 짓밟히고 찢겨진 삶에 익숙해진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잠재한 파괴성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배경이 된 당시의 몽콕과 지금의 몽콕은 다르지만 여전히 몽콕은 영화속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유덕화와 장만옥의 애절한 눈빛을 마주하던 순간 흐르던 대만 출신 가수 왕걸(王傑)이 부른 '당신을 잊고 나를 잊고 忘了汝, 忘了我'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지금도 몽콕을 거닐 때면 <몽콕하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유덕화와 장학우의 마지막 대사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태그:#왕가위, #열혈남아, #몽콕하문,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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