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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러시아에 도착한지 일주일 쯤 지난 후였을 겁니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매고 길을 나선 것이.
 
그간 비행기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 러시아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생전처음 겪어보는 '시차문제'에 적응해야만 했었고, 말로만 듣던 공포의 '레기스트라치야(외국인 거주등록)' 절차를 밟아나가느라 하루에 10년씩 늙어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죠.
 
행정직원들도 어찌나 다들 불친절하고, 근무방식도 형편없던지 원. 러시아는 네바강변의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의 신축및 재건축이 불가능해서, 하나의 부서가 한 곳에 몰려있지 않고 100년~200년 전에 지어진 낡고 조그만한 방들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미로찾기식의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십니까? 러시아로 오세요.  분명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맛 보게 될 것입니다. 
 
국립페테르부르크 대학은 바실리섬 곳곳에 분산하여 위치하고 있는데, 인문학부 본관의 작은 정원을 지나면 오른편에 '국제교류실' 로 통하는 작은 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초입에는 학술교류 협정을 맺은 전 세계 각 대학들의 이름과 함께 조그마한 기념석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계명대와 연세대 등의 이름도 찾을 수 있답니다.

 
 
 
 
 
 
 
네바강변과 녭스키 대로의 화려한 전경에 비해, 인문학부 내부는 꽤나 낡고 어수선합니다.
곳곳에서 건물의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제가 귀국할 때까지 계속되었죠. 더구나 이 대학의 간부들이 공사비를 횡령한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보도되고, 사법당국의 수사가 진행되는 바람에 공사기간이 더욱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드디어 받았습니다. 신.분.증.  러시아에 유학해 본 분들은 누구나 압니다. 이 종이쪼가리가 주는 어처구니없이 벅찬 그 감동을. 레기스트라치야 발급에는 한 달정도 소요되고, 학교는 그 기간동안에 학생들의  단수비자를 복수비자로 전환하여주기 위해 여권을 걷어갑니다. 때문에 그 동안에는 바로 위에 보이는 스프라브카(임시증명서)를 발급해 줍니다.
 
아직 정식 레기스트라치야를 발급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지난한 절차와 과정이 끝났다는
해방감이 밀려와 이루 말 할 수 없이 기뻤죠. 러시아에서는 불심검문이 잦은데, 특히 유색인종 남자는 항상 신분증과 거주등록증을 휴대하고 다녀야만 곤경을 피할 수 있습니다.
 
 
 
 
스투가라독(학생회관)건물에 있는 카페 '레리' 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음식을 시켜먹었습니다. (그 동안은 기숙사에서 '흘렙'(빵)과 라면으로 연명하고 있었죠;)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와 저렴한 가격, 그리고 가장 중요한 풍성한 양~!
 
손님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학생식당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프인 '보르쉬 사 스미타노이' 약간 김치찌개 맛이 느껴지는 감칠맛 나는 수프인데, 저 역시 러시아 있는 내내 가장 즐겨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러시아에서의 성공적인 정착을 자축하는 의미로 함께 교환학생으로 온 봉연, 서울대에서 온 준석과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 동안 아껴두었던 한국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다들 흐뭇해서 한 동안 젓가락을 들 생각도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죠.
 
비록 햇반에, 라면, 김치, 김, 젓갈이 전부지만, 명절밥상 부럽지 않더군요.
 
드디어 일주일만에 김치를 입에 넣는 그 순간,  비로소 러시아에 온 실감이 났습니다. 아껴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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