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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에서 태아 성별 물어보니 웃기만...

오늘(15일)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임신 20주째로 정기검진을 받았다. 이쯤 되면 슬슬 태아의 성별이 궁금해진다. 의사선생님께 슬쩍 물어봤더니, "글쎄요?" 하시며 그냥 웃기만 하신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야 입을 옷도 공수해오고 이름도 생각해야한다고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해도 의사선생님은 그저 웃기만 하신다.

3년 전 첫째 새롬이 때에는 거의 만삭이 다 돼 성별을 물으니 "뭐가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없는 거 같기도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뭐가 보여요?"하고 되물으니 "글쎄요, 그거(고추) 같기도 하고 탯줄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하고 대답하셨다. 결국 첫째아이 때도 성별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알고 계시면서 안 알려준 건지, 정말 탯줄인지 고추인지 헷갈려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의사가 산모나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말해주면 의료법 19조2항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성폭행이나 미성년자 임신 등 불가피한 경우는 제외다).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이 의료법을 잘 지키고 계신다. 나로서는 성별을 알 수 없어 답답하긴 하지만….

대부분 산모들 태아 성별 알고 있어

그런데 현실을 보자. 내 주변부터 살펴보겠다. 내 친구, 아내 친구, 내 친척, 아내 친척을 포함한 많은 지인들, 임신 중이거나 출산을 경험한 지인들 중에 아이가 태어나기 전 성별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임신 13주만 되면 벌써 성별을 알고 있다. 내 경험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그렇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아빠 닮았네요, 엄마 닮았네요, 파란옷이 좋겠네요" 등 간접적으로 성별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면, 3년 전 첫째아이 임신했을 때 수만 명이 가입한 임신부 모임 인터넷 카페에 가입한 적이 있었는데, 게시판 글을 보니 대부분 임신부들이 성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좋은 이름 공모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건가? 임신부들이 태아의 성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산부인과 의사가 성별을 알려줬다는 것인데 의료법으로 이들을 다 처벌할 수 있을까? 성별을 말해주는 현장을 덮치거나 임신부가 의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지 않은 한 처벌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공공연한 비밀' 이라고 부른다.

시대 변함에 따라 낙태금지법도 개정해야

20주된 태아 모습(우리 첫째아이)
 20주된 태아 모습(우리 첫째아이)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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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대 말~80년대 초 정부는 산아제한정책을 펴며 둘만 낳기를 권유했다. 그러자 기왕 낳을 바에 아들을 낳자 하여 여태아를 낙태하는 일이 횡행했다. 이를 막기 위해 87년 의료법을 개정해 낙태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남아선호사상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물론 어르신들, 시골 분들은 여전히 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임신, 출산의 당사자인 젊은 계층은 아들, 딸을 굳이 구별하지 않는 것이 추세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 현상 탓에 아들이든, 딸이든 최대한 많이 낳아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시대가 이렇게 변하는 상황에서 낙태금지법이 굳이 필요 있을까 싶다. 물론 암묵적으로 낙태가 성행하고 있는 것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이 있든 없든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낙태에 낙태를 거듭해 아들을 낳는 경우도 있다. 지인들 중에도 세 번이나 낙태한 끝에 아들을 낳은 이가 있다.

의사가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도 '공공연한 비밀', 법으로 금지한 낙태가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 이 돼 버린 상황에서 낙태 금지법의 '실효성'과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낙태 불가능한 시점에서 성감별 허용해야

어렵고 복잡할 것 없다. 독자 여러분들 주위의 젊은 지인들을 둘러보시라. 임신 중반 넘어 아들인지 딸인지 성별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말이다. 또 낙태금지법이 두려워 의사가 성별을 안 알려주는가? 또 낙태금지법이 두렵다고 낙태를 안 하는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명목 하에 법을 넘어서 할 건 다하고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낙태 금지를 목적으로 태아 감별을 법으로 무조건 제한할게 아니라 아들, 딸 성별을 미리 알려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별 판별이 가능한 임신 13주 정도부터 성별을 알려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의학적으로 낙태가 힘든 시점인 임신 7개월 정도부터 성별 공개를 부분적, 제한적으로 허용해 출산준비를 쉽게 하고 성별 인지를 통해 임신부와 그 가족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복추구권'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낙태가 힘든 임신 7개월 이후부터는 사실상 낙태금지법 적용이 우습지 않은가? 또한 7개월 이상 임신을 유지한 임신부가 그 이후에 낙태할 일이 있겠는가?

임신 7개월 시점에서 태아 성감별 공개제안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단점 혹은 부정적, 긍정적 효과에 대한 관련 분야 전문가, 비문전가 들의 폭넓은 견해를 듣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아, #낙태, #성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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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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