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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는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차도선 의병장(1863년~1939년) 등 5명의 애국선열 유해봉환을 추진했다. 당시 보훈처 관계자들은 중국을 방문해 길림성 무송현 두지동 옛집 타작마당에 있던 차 의병장의 묘소와 손녀 등의 유족을 확인했다.
 
친손녀 차월겸(66․차 의병장의 셋째 아들 '원복'의 3녀)씨는 한국 정부의 유해봉환 요청에 따라 1995년 청명에 할아버지 시신을 화장해 보관했다가 같은 해 6월 연변 장백호텔에서 보훈처 직원들에게 유해를 전달했다. 보훈처는 같은 해 6월 23일 대전국립묘지에서 안장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친손녀가 보훈처 직원에게 전달한 차 의병장의 유해는 가짜 종손 차상옥(당시 차씨 종친회 사무총장·2007년 사망)이 유족대표로 참가한 가운데 안장됐다. 뿐만 아니라 국립묘지 비석엔 가짜 종손이 손자 대열에 끼었고, 차 의병장의 출생지는 가짜 종손의 본적인 '충남 청양'으로 뒤바뀌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첫 번째 가짜 유족, 족보까지 변조했다

 

첫 번째 가짜 유족 차상옥은 어떻게 차 의병장의 종손으로 둔갑할 수 있었을까?

 

세무공무원으로 퇴직한 뒤 연안 차씨 종친회(延安 車氏 宗親會)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차상옥은 언론을 통해 차도선 의병장 유해봉환 소식을 접하고 가짜 후손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차 의병장의 유해봉환 업무를 맡았던 보훈처 관계자는 차상옥이 보훈처를 찾아와 '신문보도를 보고 할아버지 소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차상옥이 가짜 독립유족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차 의병장의 진짜 유족 모두가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종친회 사무총장이라는 직위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보훈처 내부 직원의 협조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아니면 보훈행정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종친회 관계자는 "차상옥이 족보까지 변조해 차 의병장을 증조할아버지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차 의병장을 증조할아버지로 만들려고 차 의병장의 출생지를 자신의 본적인 '충남 청양'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차도선의 아내와 형님 가족들은 일제로부터 모진 고문 등에 시달리다 중국 무송현으로 이주했다. 가족 대다수는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중국에 정착했으며 손자 금겸(셋째 아들 '원복'의 둘째 아들)만이 북한에 들어가 교원생활을 했다. 차 의병장의 남한 거주나 직계 친족 여부는 밝혀진 바가 없다.

 

한편, 보훈처는 1995년 '애국선열 5위 유해봉환 안장식' 행사 순서지에 "안중근의 이등박문 주살을 후원하기도 하였다"고 적시했다는 등 사실이 아닌 공적을 공식행사에 배포할 정도로 보훈행정이 구멍 뚫린 것을 반증했다.

 

내가 진짜 종손... 두 번째 가짜 유족의 수법은?

 

 

차상옥에 이어 차 의병장의 종손을 자처하고 나선 종친회 간부 차재명(54·원주시연안차씨종친회 총무)은 무슨 근거로 종손이라고 주장한 걸까?

 

차재명의 호적등본과 대동보 등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차재명의 증조할아버지 차도선(車道璿)과 의병장 차도선(車道善)은 음(音)만 같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일 뿐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차재명의 증조할아버지는 '구슬 선(璿)' 자를 쓰지만 의병장은 '착할 선(善)' 자를 썼다.

 

그리고 차재명의 증조할아버지 본적은 '함남 정평'이고, 의병장의 본적인 '함남 갑산'으로 전혀 다르다. 특히 차재명의 증조할아버지는 1878년에 출생했지만 의병장은 1863년 출생으로 나이가 15살이나 많다. 뿐만 아니라 의병장에겐 형(도심)과 동생(도순)이 있지만 1915년 만들어졌다는 차재명 증조할아버지 족보엔 두 여동생이 있을 뿐이다.

 

종친회는 대동보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차재명의 증조할아버지와 의병장을 동일 인물로 만들었다. 대동보에 의병장의 이름인 도선(道善)을 본명으로 하고, 차재명 증조할아버지인 도선(道璿)을 자(字)로 올렸다. 두 사람을 본명과 자로 합체(合體)한 셈이다. 이로 인해 차재명의 고조할아버지인 차운평(車運平)이 의병장의 아버지로 둔갑됐다.

 

뿐만 아니라 의병장의 생년월일을 차재명 증조할아버지의 생년월일로 바꿔치기 했다. 게다가 대동보 공적에 '차도선 의병장이 안중근의 이등박문 주살을 후원'했다고 기록했다.

 

의병사를 연구한 박민영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안중근 선생과 차도선 의병장의 연관성은 희박하다"고 일축했다. 종친회 관계자는 보훈처가 제공한 자료로 공적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가짜 후손들에게 농락당하는 의병대장, 지하에서 편하실까?

 

차재명은 조작된 대동보 등을 통해 의병장의 종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의병장의 출생지를 자신의 본적지로 바꾼 첫 번째 가짜유족 차상옥의 수법을 모방한데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생년월일까지 바꿔치기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차재명은 중국에 거주하던 의병장의 친손녀 차월겸을 2000년 8월 한국에 초청하면서 종손 둔갑을 시도했다. 그러나 차월겸이 종적을 감추면서 첫 시도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종친회를 등에 업고 보훈처에 자신이 종손이라고 계속 주장했다.

 

차재명은 지난 2006년 12월 종친회장 차화준(14대 국회의원)과 연명으로 대전국립현충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묘소 비석에 새겨진 의병장의 생년월일(1863. 1. 29)을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생년월일(1878. 10. 12)로 바꾸고, 첫 번째 가짜 유족에 의해 뒤바뀐 출생지 '충남 청양'을 자신의 증조할아버지 본적인 '함남 정평'으로 정정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현충원이 정정 불가 통보를 하면서 실패했다.

 

의병장의 친손녀들은 차재명과 종친회의 종손 보증 요구에 시달렸다. 친손녀들이 종손 보증을 거부하자 소위 '첩' 설을 내놓았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일제의 감시와 체포 등으로 부인 곁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여자를 얻어 살 수 있다'라면서, 호적에는 없지만 차재명의 집안이 '큰집 혹은 작은집'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했다는 것이다. 의병장이 첩을 두었을 수도 있다 라는 억지 주장이었다.

 

차 의병장의 손녀 옥겸(59·차 의병장의 셋째 아들 '원복'의 4녀)씨는 "종친회 사람들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해대기에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가 바람둥이냐'고 항의했다"면서 "종친회 사람들로부터 종손으로 인정해달라는 강요에 너무 많이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차재명과 종친회 관계자는 기자가 '가짜 유족 임을 시인하느냐'고 묻자 "의병장의 종손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태그:#차도선 의병장, #가짜 독립유족, #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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