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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이 '뒤질랜드'에 도둑들이 돌아왔다. 절도는 안 하고 관객들 포복절도만 시켜서 문제지.

 

2003년 명계남과 박철민이 늙은 도둑으로 현실을  풍자한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가 늙긴 커녕 한참 회춘한 희극 감각을 넉살 좋게 챙겨서 돌아왔다. 2008년 버전 <늘근도둑 이야기>가 새롭게 무대에 오른다. <서툰 사람들>에 이은 <연극열전 2> 두 번째 작품이다. 1월 4일부터 3월 9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에서 공연한다.

 

이번엔 영화 <화려한 휴가>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이 연출한다. 김지훈 감독에겐 첫 연극 연출이다. 이상우 원작의 <늘근도둑 이야기>는 1989년 초연 이래, 무대에 오를 때마다 그 무대가 처한 시대 따라 변했다.

 

<연극열전2>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배우 조재현은 5년 전 <늘근도둑 이야기>를 본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봤던 연극 중에서 제일 많이 웃었다. 명계남이 박철민의 그 화려한 애드리브를 다 받아주더라."

 

그 화려한 애드리브의 달인 박철민이 다시 '덜 늙은 도둑'이 됐다. 이번엔 명계남 대신 박원상과 짝을 이뤘다. 또 다른 늙은 도둑 짝은 유형관, 정경호다.

 

사회보다 형무소에서 더 오랜 시간을 산 두 늙은 도둑이 2008년에 몰래 숨어든 곳은 '그 분'의 미술관이다. <행복한 눈물> 같은 현대 미술작품의 비싼 가치를 알 리 없는 두 늙은 도둑은 금고만 찾다가 잡힌다. 수사관은 두 도둑을 취조하고, 두 도둑은 취조를 당하는지 신세를 타령하는지 마는지 하며 관객들 혼과 허파를 쏙 빼놓는다. 4일 <늘근도둑 이야기>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 이들을 만났다.

 

잠깐 본 <늘근도둑 이야기>는 여전히 도둑 얼굴만 늙었지, 폭죽 터지듯 연달아 터지는 배우들 입담이 환상이었다. <뉴하트>에 '뒤질랜드'를 구축하느라 바쁜 박철민만 찬란한 입담을 지닌 게 아니었다. 현장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도, 연출가와 배우는 현란한 애드리브의 향연과 유머 감각의 폭죽을 터뜨렸다. 서로서로 탁구처럼 찌르고 받아치는 <늘근도둑 이야기> 제작진의 현란한 말들의 애드리브 현장으로 안내한다. 
 

<화려한 휴가>때와 감독과 배우가 분위기 역전 됐네

 

- 김지훈 감독이 보기에 영화 연출과 연극 연출이 어떻게 다른가?
김지훈 감독: 영화 할 땐, 사실 이 배우들이 B급 배우라서, 영화 할 땐 혼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여기 오니까 상당히 반대가 돼서, 제가 작아져서 절 상당히 힘들게 했다.


박철민: (싱글싱글 웃으며) B급 연출이죠.
김지훈 감독: 영화 할 땐 호흡이 끊기잖나? 배우들이 감정선 잡아 연기하기 힘들고 저도 배우의 연기를 배워야겠다 해서 왔는데, 연극 하면서 하루 두세 시간씩 배우 연기 보니까 많이 배운다. 연출 자체가 배우 감정선 끌어내는 거라 생각한다. 영화 하며 어떻게 배우 연기 잘 끌어내나가 중요한데 그게 부족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연극 연출하게 됐다. 이거 끝나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 않을까 확신한다.


- 김지훈 감독이 여기 연극 쪽에 오니까 영화 <화려한 휴가> 때와 달리, 배우들한테 주도 당했다고 했는데 감독이 실제 어땠나?
박철민: 영화 현장에선 든든, 믿음직했는데 연극현장에선 불안하고 어쭙잖았다(웃음). 저희들이 다신 영화감독하고 연극 연기를 안 해야겠다 생각했다(웃음). 영화 현장에서도 그러지 않은 것처럼 하면서 디테일하게 연기 끌어내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연극 현장에서도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괴롭히는 모습이……. 그래서 다신 안 해야겠다(웃음).

 

박원상: 틀린 점 별로 없던 거 같다. 영화 땐 밤 씬 찍을 때도 선글라스 끼고 있다. 그런데 연극 연습 현장에선 한 번도 선글라스 낀 거 못 봤다.


박철민: 겸손해진 거다. 불안하니까(웃음).
박원상: 아마 연극 끝나고 나면 철민형과 소원해지고, (나와) 감독하고 관계가 돈독해지지 않을까.
김지훈 감독: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다.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거지 겸손해서 안 끼는 거 아니다(웃음).

조재현: 유형관은 17년 전 <에쿠우스> 같이 했던 극단 선배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굉장히 오랜만에 무대 선다. 감회가 남다를 거 같다.


유형관: 어느 순간 지내다보니, 크게 해놓은 거 없이 선배가 됐다. 다른 부분도 힘들었지만 나이 차이 때문에, 왕따 당하는 느낌이었다(웃음). 영화 <화려한 휴가>는 속아서, 5회차 한다놓고 30회 출연했는데, 박철민, 박원상은 배우로 캐스팅한 거 같고, 전 그때 보상 차원 캐스팅 한 거 같다(웃음). 아무튼 오랜만에  자릴 마련해서 감독한테 고맙게 생각한다. 언제 술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제가 위장이 안 좋아서 못 하고 있다. (김지훈 감독을 바라보며) 술 한 잔 합시다.


김지훈 감독: 잘릴 수도 있습니다(웃음). <화려한 휴가> 때 원래 용대 역할로 정경호를 하려고 했는데, 박원상이 조금 더 쌌다. 캐스팅할 때(웃음). 정경호는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주가가 확 올라서 천만원대 배우가 오육천으로 확 올라서…….
정경호: 진짜인 줄 알겠다.

 

박철민, "우린 7백만을 경험한 배우와 연출가"


김지훈 감독: 요번에 정경호가 고생 많았다. 박철민이 B급 배우가 갑자기 A급이 돼서, 박철민이 연습을 많이 못하게 되는 바람에.
박철민: 맨입으로 그러진 않는다. 제가 못 나오는 날, 계산해서 일괄 지급할 생각이 있다.
정경호: 박철민과 저는 그런 관계는 아닌데 정확히 할 필요는 있다. 드라마 하며 많이 못하면 일부분 보상한다니까 굉장히 훌륭한 선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늘근도둑 이야기> 하면서 저 맨 끝 막내 다음 제가 막내다. 주가 높은 선배들과 호흡 맞추게 돼서 공부가 됐다. 하지만 이제부터 양보 안 하겠다.
 

 

김지훈 감독: 최덕문은 신혼여행도 못 갔다. 이거 하느라.
박철민: 결혼식은 대박 났다. 짭짤했고.
최덕문: 신혼여행 안 가기로 하고 연습하는데, 다들 그러더라. 오버하지 말고 갔다 와라. 전 개인적으로 5년 전에 이 작품 했다. 명계남, 박철민 선배랑 했다. 그래서 다른 역할 하는 게 어떠냐 했는데, '날로 먹자' 해서 다시 형사 했다(웃음).


박원상: 날로 먹는 게 두 분이다. 날로 잘 드신다(웃음).
김지훈 감독: 요번에 새로운 배우를 한 명 발견했다. 민성욱이다. 극단 '차이무' 소속이다. 깜짝 놀랐다. 연기를 잘해서.


민성욱: 2003년 <늘근도둑 이야기> 할 때 전 조연출을 했다. 이번에 수사관 역으로 공연한다.
박철민: 그때 도움 우리에게 주셨나? (웃음) 조재현 말고는 7백만을 경험한 배우들이다 (웃음). 저분이 기껏 한 게 330만인가 했는데, 우린 굉장히 흥행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불과 몇 달 전에 750만을 다 경험했고, 저 같은 경우 요즘 드라마 <뉴하트>가  27% 나왔다.


박원상: 다른 질문 없나?

박철민: 이런 추세로 가다간 전 공연 매진 예상한다. 마지막 힘을 기사에 실어주시면 멋지고 아름답고 노는 한 마당 보여줄 생각이다.

 

- 2003년 <늘근도둑 이야기>랑 요번 <늘근도둑 이야기>랑 달라진 점이?
최덕문: 5년 전엔 풍자성이 굉장히 강했다. 풍자로 전해줄 게 많았고 재밌었다. 세월 지나니 풍자성이 떨어졌다. 그 대신 웃음과 재미로 많이 채웠다. 그 대신 재미는 배가 됐다. 훨씬 재밌는 작품이 됐다.


조재현: 제가 연극을 많이 보는 편인 거 같다. 배우 가운데. 그런데 연극 하면서 무대에서 제일 보기 싫은 행동들이, TV 오락프로에서 나오는 말들, 유행하는 말들을 무대에서 재연해 보이는 거다. 굉장히 거부감이 있다. TV 볼 땐 많이 웃지만, 그런 연극은 연극 하는 사람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걸로 생각한다. 하지만 <늘근도둑 이야기>는 재미가 유행 쫓아간다든지 유행어 넣어 웃기려고 하진 않았다. <늘근도둑 이야기>가 지닌 재미 안에서 경쾌하게 한 거 같다.

 

두 늙은이가 원 없이 현 사회를 조롱

 

박철민: 저도 5년 전에 했고, 10년 전에 이 작품을 봤다. 10년 전엔 굉장히 풍자 중심이었다고 할 정도로 이분법 적 사회에서 날카로운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통쾌하게 끌어내서 극적 재미가 있었다면, 5년 전엔 풍자가 무디어지면서 두 늙은이들이 막 노는 거 섞여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거 같고, 이번엔 다변화 됐지 않나 싶다. 이익집단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디 집단 풍자했을 땐, 이쪽에서 다른 입장도 생기고 풍자가 쉽지 않고 치밀해야 한다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 중심은 두 늙은이들의 놀이마당이다. 해학과 풍자 가운데 해학 중심으로 했다고 해야 할까. 해학은 민중들의 해맑은 몸집, 바보 같은 몸집, 그런 거라 생각한다. 연습하며 중점에 뒀던 게 두 늙은이가 원 없이 경찰 앞에서 현 사회를 조롱하며 막 까부는 슬랩스틱도 있고 말집 몸집들이 넘쳐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 연출이 가장 아끼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 이유는?
김지훈 감독: 2003년 힘든 시기에 우울증에 빠졌다가 이 연극을 보고 힘을 찾았다. 그리고 영화 <목포는 항구다>를 했다. 개인적으로 보은 차원에서 이 연극을 한다. 정경호는 젊은 사람들 트렌드 중심에 있는 호흡을 느낄 수 있다. 정경호 보면 신난다. 정경호가 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즐길 때가 많고, 박철민은 반성할 때가 온 거 같다. 내가 술자리에서 한 걸 TV에서 다 써먹더라(웃음).


나도 처음엔 힘들더라. 긴 호흡 하니까. 이 분들이 TV나 드라마는 조연이지만, 여긴 주연이었던 분들이라서 말을 빼기가 힘들지 하니까 잘 한다. 앞으로 배우들 대할 때, 마음으로 갈 지점, 언어를 배웠다. 공연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가볍게 관객 웃기는 측면도 있지만, 2008년 새 시대 열렸고, 존경하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됐고, 이 연극이 무대가 새 시대와 함께 하지 않을까 한다.

 

- 김지훈 감독은 <늘근도둑 이야기> 끝나고도 다시 연극 연출할 생각이 있나?
김지훈 감독: 제가 복이 많아서 흘러왔는데, 이번에도 제가 한 역할보다 배우들이 잘해서 묻어가는, 무임승차 하는 기분이 든다. 조재현씨가 저한테 100프로 들인 술값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다음엔 창작극이든 뭐든 반드시 해야 되겠다(웃음). 학생들이 재취업 위해 학원도 다니는데, 감독은 공부할 데가 없잖나. 공부할 좋은 공간이라 생각한다. 반드시 해야잖나 생각한다.


조재현: 예전엔 연기자도 연극만 하고 TV만 하고 그랬다. 불과 얼마 안 된다. 중요한 건 연기는 다 똑같다. TV, 영화, 연극 연기 따로 없는 거 같다. 연출도 김지훈이 특이한 케이스인데, 영화 연출하다 연극 연출은 드물다. 중요한 케이스다. 마음이 중요하다. 사실 연극 연출해서 얼마나 큰 도움 받겠나. 연극 하면서 배우하고 두 달 석 달 같이 묻혀있으면서 아마 그 기간 동안 배우에 대한 공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김지훈 감독: 98년 처음 충무로 조감독 연출부 할 때, 현장 분들이 연극배우 못 쓴다고 하더라. 목소리도 크고. 불과 9년 만에 연극 연기하던 분들이 영화 다 평정했다. 이젠 연극하지 않고 영화 못하는 시대가 됐다. 벽이 없어졌다. 이젠 연극, 영화 나누는 개념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제가 오는 게 특이하다기보다 자연스런 현상 가운데 하나로 물꼬 트였다고 본다. 영화감독도 연극 연출을 해보고 싶단 감독이 많다. 나도 내년엔 더 좋은 작품 하겠다. 연극 연출 열심히 해서.


태그:#늘근도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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