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월호호로 뱃시간이 없이 수시로 건너다닌다.
▲ 경도 들어가는 배 월호호로 뱃시간이 없이 수시로 건너다닌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전날 만든 고무줄 총을 하나씩 준비했다.
▲ 배 안에서 전날 만든 고무줄 총을 하나씩 준비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따뜻한 겨울이 되면 가까운 섬에 간다. 한적하고 편안한 시골길을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준비해 간다면, 애들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벗어나 도로를 질주하는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다.

대경도 가는 길에

여수 국동항으로 향했다. 잠수기수협 앞에 대경도 들어가는 도선이 닿는다. 매표를 하려고 대합실에 들어가니 시간표도 없고 표도 팔지 않는다. 배는 기다리면 오고, 요금은 배에서 받는단다. 새우깡과 생수를 샀다.

배는 승용차 4대를 실을 수 있으며, 객실은 따로 없고 긴 나무의자가 무료한 듯 기다리고 있다. 도선요금은 어른 500원, 학생 100원이다. 작은애는 600원이 있는데 3번 왕복할 수 있다고 묘한 웃음을 짓는다. 2~3분 걸렸을까? 대경도 선착장에 도착했다고 내리라 한다. 너무 싱겁다. 애들은 넓은 바다로 나가는 뱃놀이를 생각했을 텐데…. 선창에는 여수로 나가려는 차들이 기다리고 있고, 승합차로 된 택시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대경도(大鏡島)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약 0.5㎞ 지점에 있다. 서쪽에 있는 소경도(小鏡島)와 함께 여수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며, 주위에는 송도·노도·가장도 등의 섬들이 산재해 있다.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경도(京島)라 하다가 경도(鯨島)로 바뀌었고, 1910년 이후부터는 주위의 바다가 맑다는 뜻으로 경도(鏡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고래를 닮은 섬이 더 친근감이 간다.

해안도로 경계석에 앉아 인라인 스케이트로 갈아 신었다. 애들은 질주 본능을 느낀다. 오늘 계획은 섬을 끝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거다. 애들은 신이 났다. 마을로 오르는 경사진 길도 힘든 줄 모르고 장난을 치면서 올라간다. 뒤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여수 풍경이 한 폭의 유화를 보듯 펼쳐져 있다.

차도 다니지 않고 한적한 길을 마음껏 달린다.
▲ 인라인 타고 다니는 애들 차도 다니지 않고 한적한 길을 마음껏 달린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이런 기분을 어디서 느낄 수 있으랴.
▲ 도로를 질주하는 애들 이런 기분을 어디서 느낄 수 있으랴.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소나무에 얽힌 전설이 이어지지 않는 안타까움

외동마을 높은 곳에 당집과 함께 소나무가 있다. 점점 다가갈수록 나무는 죽은 채로 다가온다. 동그랗게 둘러쳐진 석축에 갇힌 소나무는 이미 생명을 잃었다. 최근에 죽었는지 나무의 형태가 그대로 있다. 오랜 세월을 바닷바람과 싸우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버텨왔는데, 도로를 내면서 소나무 뿌리를 잘라서 죽었다고도 하고, 당집을 지어서 죽었다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훼손으로 인해 소나무가 고사되었다는 것이다.

동그란 축대 위에 고사한 소나무와 당집이 있다.
▲ 할머니 소나무 동그란 축대 위에 고사한 소나무와 당집이 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밭길의 아름다운 곡선을 살려 시멘트 포장을 하였다. 위에는 당집이 자리하고 있다.
▲ 할아버지 소나무 올라가는 길 밭길의 아름다운 곡선을 살려 시멘트 포장을 하였다. 위에는 당집이 자리하고 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맞은편 언덕에도 소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갔다. 정상에는 당집과 소나무 세 그루가 어우러져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동그랗게 석축을 쌓아놓았다. 당집의 경계를 만들었는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큰 소나무는 말라버렸다.

당집의 소나무에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약 500여 년 전 자손이 없는 노부부가 나무 두 그루를 심어 자식처럼 키웠으며, 소원으로 마을을 지키는 이정표가 되라고 하였다. 노부부가 죽은 후 위쪽 노송은 할아버지 나무이고 아래쪽은 할머니 나무라고 하였으며, 마을 주민들이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당산제와 풍어제를 모신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도로가 나고 개발이 되면서 이제는 이정표가 역할을 다한 듯 할머니 소나무와 할아버지 소나무는 그렇게 죽어 갔는가 보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인간의 풍요만을 기원하는 당집이 그 역할을 대신할 것 같다.

굴양식장이 보이고 멀리 돌산도가 보인다.
▲ 아름다운 풍경 굴양식장이 보이고 멀리 돌산도가 보인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금줄이 쳐져 있으며, 당집을 감싸안은 소나무가 일품이다.
▲ 내동마을 소나무 금줄이 쳐져 있으며, 당집을 감싸안은 소나무가 일품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섬을 따라 가는 길은 차도 다니지 않은 한적한 길이다. 애들은 계속 인라인을 타면서 장난이다. 섬 능선을 타고 이어진 길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외딴집과 물 빠진 굴양식장의 풍경, 바다너머로 보이는 돌산도의 풍경들이 어우러진다.

섬 중간 정도 왔을까? 내동마을이 있고 맞은편 언덕에 큰 소나무가 보인다. 밭을 지나 올라섰다. 소나무가 500년 묵었음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있다. 오랜 풍상을 견디어 왔는지 많은 가지들이 잘려 나갔다. 늙은 소나무는 금줄을 두르고서 하얀 당집을 긴 팔로 감싸고 앉았다. 당집을 감고 있는 긴 팔은 살아 있는 듯 한 착각을 느끼게끔 꿈틀거린다. 당집을 열어보니 한쪽은 부엌이고 한쪽은 제실이다.

섬 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얼마가지 않아 길이 끝난다. 차를 가져갔다면 돌아와야 한다.
▲ 해안가 시멘트 포장길 얼마가지 않아 길이 끝난다. 차를 가져갔다면 돌아와야 한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섬으로 이어진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섬이 크다. 애들도 조금씩 지친 표정이다. 고래 등만 넘고 꼬리는 보지 못한 채 돌아섰다. 아래로 시멘트 포장길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밭에서 냉이를 캐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니, 한참을 바라보다 반갑게 웃어준다. 할머니는 아는 사람이 인사를 하는 줄로 잠시 착각을 한다. “놀로 왔는갑다.” 섬을 여행하면서 가끔 느끼는 감정이다. 염소는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난데없는 불청객에 놀란 표정이다.

해안을 따라 가는 길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학교 운동장과 마주친다. 경도초등학교다. 바다가 보이는 운동장.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것고 잔디운동장이다. 조그만 섬마을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일까? 운동장에는 주인 없는 공이 두 개나 있다. 도시 같으면 누군가 주워갔을 텐데, 여기에서는 내 것임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공놀이 하려면 학교로 나와야 하고, 혼자 할 수 없으니 굳이 집에 보관할 필요가 없었는가 보다.

잔디구장에 바다가 보인다.
▲ 경도초등학교 잔디구장에 바다가 보인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작은 어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다.
▲ 내동마을 풍경 작은 어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학교를 나오니 마을로 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해상 펜션이 에스키모 이글루 같이 떠 있다. 처는 저기서 하룻밤 자고 싶단다. 하룻밤 바다 위에서 보내는 것도 추억이 될 것 같다.

마을은 항아리 같은 포구를 품고 낮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잘 쌓은 돌담도 있고, 문을 닫은 미용실도 보인다. 파출소도 있고, 보건소도 있으니, 있을 건 다 있다. 바닷가에서 일을 마친 아주머니들은 파래를 뜯어 작은 손수레에 끌고 온다.

항구도시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섬을 돌아 나오는 시간은 2시간 정도. 다시 배를 타고 여수로 나왔다. 선창에서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으로 장어탕을 먹었다. 싸고 양이 많다. 2인분 시켜서 애들과 충분히 먹었다.

점심을 먹고 항구를 걸었다. 선창하면 어수선하고 번잡함이 떠오르는데, 작은 어선들이 쉬고 있는 국동항 풍경은 한적하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애들은 배에 올라서 보기도 하고 부잔교를 뛰어다녀 보기도 한다. 처는 불안하기만 한가 보다. 애들에게 하지 말라고 한다.

하얀 어선들이 길게 정박해 있다.
▲ 국동항 풍경 하얀 어선들이 길게 정박해 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경매를 기다리는 조개들
▲ 왕우럭조개와 개조개 경매를 기다리는 조개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개불 경매가 진행중이다.
▲ 경매 개불 경매가 진행중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징그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 개불 징그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수협에는 조개류와 개불 경매가 진행 중이다. 경매하면 시끌벅적한 풍경을 상상했는데 거래할 물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몇몇 분들이 모여 큰 소리로 물건을 다투고 있다. 개불을 많이 모아 놓으니 징그럽다. 잠수부들이 직접 물속 깊이 들어가 개불을 잡는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해양공원의 붉게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해양공원으로 향했다. 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따뜻한 겨울을 즐기고 있다. 방파제 위로 빨간등대가 나를 보고 가라고 유혹한다. 여수는 하멜과 인연이 있어 하멜등대를 세웠다. 방파제로 낚시객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등대는 다가갈수록 크게 다가온다. 빨간등대를 보면서 네델란드의 풍차를 생각한다. 위에 바람개비를 달아놓으면 더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빨간등대가 매력적이다.
▲ 하멜등대 빨간등대가 매력적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돌산대교 뒤로 해가 떨어진다.
▲ 일몰 돌산대교 뒤로 해가 떨어진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등대 뒤로 해가 떨어진다. 하멜은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을까? 매일매일 붉게 물들이는 해를 보면서 미치도록 가고픈 고국 하늘이 떠올랐을 것이다. 후에 탈출에 성공하여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도착했을 때는 여수항에서 바라보던 노을을 그리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멜과 여수
1653년 1월에 네델란드 상선 스페르웨르호가 텍셀에서 출발하여 7월 바타비아(자카르타)항을 거쳐 일본 나카사키항을 향해 64명의 선원을 싣고 출항하였다. 1653년 8월 16일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에 표착하였다.

살아남은 사람은 64명 중에서 36명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핸드릭 하멜이었다. 1654년 왕(효종)명으로 하멜 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1656년 강진 전라병영으로 압송되어 7년 세월을 보낸다.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자 1663년 2월 살아남은 22명을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씩 분산 수용하게 되었다.

여수에 오게 된 12명 중에 하멜이 있었고,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하였다. 1664년 초에 이도빈(李道彬) 수사가 왔는데 이 수사는 인자하여 하멜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하멜은 양모장사를 하여 탈출할 배도 살 수 있게 돈을 벌게 되었다.
1666년 수사 정영(鄭韺)이 왔는데 그는 인자하지 못했다. 하멜은 모진 생활을 하다가 탈출을 시도하게 되었다.

1666년 9월 4일 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주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전라좌수영성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둣가로 갔다. 식수를 준비하고 썰물이 시작될 때 군선 옆을 지나 남쪽 끝을 향하여 달렸다. 저녁 무렵 부산 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조선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 곳이 하멜 일행이 자유를 찾아 항해를 시작한 출발지다. (안내판에서)

덧붙이는 글 | 애들과 섬여행 갈때 인라인스케이트를 준비해 가면 애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태그:#대경도, #국동항, #해양공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