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땀을 흘리는 경기장 못지 않게 뜨거운 곳이 있다. 바로 베이징 현장을 안방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중계석.

공중파 방송 3사(KBS, MBC, SBS)는 베이징에서 선수들 못지않게 치열한 혈전을 벌인다. 특히 각 방송사에서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타 해설자들을 앞세워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려 한다.

이 중에는 MBC에서 야구를 중계하는 허구연 해설위원처럼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 해설자'도 있지만, 아직 중계석과 마이크가 익숙치 않아 실수를 연발하는 '초보 해설자'도 있다.

'초보'들의 해설은 완벽하지 않아 신선하다. 때론 반말도 나오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말이 헛나오기도 한다. 평소 방송에선 들을 수 없는 '초보 해설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은 올림픽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선배의 정겨운 반말] "필희야 슛!", "너희가 지구 최고의 양궁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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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들은 대부분 국가대표 선수나 지도자 출신이다.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들의 선전을 기원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해설자의 본분을 망각하기도 한다.

MBC에서 핸드볼 해설을 맡고 있는 '우생순의 주인공' 임오경 해설위원은 지난 11일 독일과의 경기를 중계하던 도중, 문필희가 좀처럼 슛을 던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필희야 슛!"이라고 소리쳤다.

중계 도중에 반말을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했지만, 공교롭게도 문필희는 그 즈음부터 과감한 중거리슛을 던지며 한국에 승기를 가져 왔다. 임오경 해설위원과 문필희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큰 언니'와 '막내'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아마도 텔레파시가 통한 모양이다.

MBC 양궁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수녕 해설위원도 10일 여자 단체전 금메달이 확정되자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더니,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라는 캐스터의 말에 울먹거리며 말했다.

"후배들아, 너희들이 정말 최고의, 지구 최고의 양궁 선수들이다, 자랑스럽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에 빛나는 '신궁'이 잠시 옛 생각이 났나 보다.

이 밖에 여자 농구 해설을 맡고 있는 SBS 전주원 해설위원과 KBS 유영주 해설위원도 9일 브라질전과 11일 러시아전에서 방송임을 잠시 잊고 후배 선수들에게 '반말'로 애정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다. 두 해설위원은 정선민, 이종애, 박정은 등 대표 선수들과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함께 한 바 있다. 

[실수 남발 박태환 중계] "매운 고추가 맵다"... 방송 3사의 실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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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영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이 너무 흥분됐을까? '마린보이' 박태환이 활약하는 수영 종목에서는 방송 3사를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실수 행진을 벌였다.

MBC 박석기 해설위원은 10일 자유형 400m 결승에서 박태환이 1등으로 턴을 할 때마다 "세계 신기록 페이스입니다"를 연발했다. 그러나 화면에는 계속 세계 기록에 미치지 못하는 숫자가 나와, 시청자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박태환이 골인지점에 도착해 금메달이 확정됐을때도 박석기 해설위원은 계속 "세계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세계 기록에 1초78이 모자랐다. 박석기 해설위원의 명백한 실수였다.

같은 시각, KBS에서 중계를 하던 안창남 해설위원은 박태환의 금메달이 확정된 후 격양된 목소리로 '작은 고추가 맵다'를 "역시 매운 고추가 맵다"라고 잘못 말하기도 했다. 모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는 '매운'을 입력하면 '매운 고추가 맵다'라는 검색어가 자동 완성된다.

SBS의 김봉조 해설위원은 자유형 200m 결승을 중계하다가 사고(?)를 쳤다. 김봉조 해설위원은 레이스 후반 마이클 펠프스(미국)와 박태환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미치겠네, 이거"라는 '부적합 언어'를 내뱉었다. 

또한 레이스 중반에는 뜬금없이 "펠프스… 힘내라"고 외치기도 했다. 박태환의 2관왕도 좋지만, 8관왕을 노리는 '수영 황제'의 세계 신기록 작성을 기원하는 수영인의 마음이었나 보다.  

[막말의 본좌] "아이씨... 바보야!", 심권호의 '감성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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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여러 종목의 해설자들이 때로는 경험 부족으로, 때로는 흥분을 이기지 못해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막말의 본좌' 심권호 해설위원(SBS 레슬링 해설)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은 심권호 해설위원은 당시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 해설위원(KBS)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일약 스타 해설자로 도약했다. 이른바 '심권호 어록'은 네티즌들에게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심판이 안보고 있어요, 심판 안 볼 땐 저렇게 잡아야 돼요"
"저 선수는 지금 제가 나가도 이기는데…."
"지현아, 너는 다다음 올림픽까지 금메달 세 개 따라!"

때로는 '방송 부적합 언어'를 쓰기도 하지만, 언제나 냉정을 잃지 않는 근엄한 해설자들 사이에서 심권호 해설위원의 '감성 해설'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4년 전과는 달리 다소 부정적이다. 심권호 해설위원은 아테네 올림픽과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해설 경험을 쌓았지만, 여전히 반말이 기본이다. 한국 선수가 위기에 빠져 있으면 알아듣지 못할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청자들의 귀를 어지럽힌다.

심지어 지난 12일 금메달 후보 박은철(55kg급)이 4강에서 패했을 땐 "아이씨"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8강에서 탈락한 정지현(60kg급)에게는 "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바보야"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경기 시작 전에는 차분하게 중계를 하다가도, 정작 경기가 시작되면 방송은 안중에도 없이 선수를 응원하기 바쁘다.

심권호 해설위원은 한국 레슬링 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올림픽 2연패(애틀란타, 시드니)를 달성한 '전설'이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자신을 꺾은 임대원의 트레이너를 자청하기도 했을 만큼 레슬링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마이크로 가감없이 쏟아내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4년차 해설위원의 노련함이 아쉬운 대목이다. 

[초보 맞아? 깔끔한 해설] 이원희-김동문, 전문성 있는 해설로 인기 몰이

물론, 베이징 올림픽을 중계하는 해설위원들이 모두 실수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대표 선발전에서 왕기춘에게 패한 후, KBS의 객원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는 '초보'답지 않은 해설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원희 해설위원은 현역 선수답게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섬세하게 설명해 주며, 유도계의 선배이기도 한 김병주 해설위원과 뛰어난 호흡을 과시하고 있다.

한편 '이원희의 대항마'로 MBC에서 전격 기용한 '격투기 스타' 추성훈도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서툰 한국어 실력 때문에 캐스터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부족한 표현력과 부정확한 발음도 문제였다.

애틀란타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 아테네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에 빛나는 '배드민턴 영웅' 김동문도 KBS 해설위원으로 발탁됐다. 김동문 해설위원은 정확한 발음과 조리 있는 말솜씨로 이미 해설 경험이 있는 SBS의 김문수(바르셀로나 남자복식 금메달), MBC의 방수현(애틀란타 여자단식 금메달) 해설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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