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하세요? 우리는 영어·한국어·일본어·스페인어·중국어를 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우리는 영어·한국어·일본어·스페인어·중국어를 할 수 있습니다." ⓒ 박선민


중국은 13억 인구를 보유한 국가답게 자원봉사자도 '위에 뚜어 위에 하오(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인해전술을 쓰고 있다. 똑같은 파란색 티셔츠에 회색 바지 그리고 노란색 출입증 카드. 여기도 자원봉사 저기도 자원봉사, 그야말로 '자봉' 천지다.

5개 국어를 한다? 정말 그럴까


'We speak English, 日本語, 한국어, Espanol.'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거리. 그곳에서 눈에 띈 자원봉사자 셔츠에 적힌 문구다. 모국어인 중국어는 물론 영어·일본어·한국어·스페인어 등 5개 국어를 할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마침 한국인이 "이 근처 지하철역이 어디에요?"라고 물어본다. "이 길을 쭉 따라 올라가다보면~" 곧잘 한다.

질문을 던진 사람은 한국에서 올림픽을 보러 온 관광객 조정숙(28)씨다. 그들의 한국어 실력이 어땠는지 물어보자 "완벽하지는 않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어요, 막히는 부분에선 손짓과 제스처로 하면 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간단한 정보만 외운 앵무새가 아닐까'하는 노파심에 이번에는 기자가 직접 물어보았다.

"이곳에 진주 파는 상점은 없나요?"
"진주요? 아…."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자원봉사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 상점에도 팔고 저 상점에도 팔아요, 하지만 이 곳은 진주가 비싸요, 가짜가 있을 수도 있고요"라며 알짜 정보까지 알려준다.

 한국인 관광객에게 자원봉사자가 한국어로 길을 안내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에게 자원봉사자가 한국어로 길을 안내하고 있다. ⓒ 박선민



억양이나 단어는 아직 서툴고 어색하지만 조씨의 말대로 알아들을 만했다. 해외에서 한국어로 묻고 답을 얻을 수 있으니 어색한 점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신기한 마음에 "한국어 배운지 얼마나 되셨어요?" "어디서 배운 거예요?" "어느 소속이에요?" 한 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끊임없는 질문에도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순서대로 대답을 했다. 남녀 아이 5명 중 한국어를 가장 잘하는 그녀의 이름은 왕천향(15). 한국어가 가장 재미있지만 가장 어려운 언어도 한국어라고 했다. 한자가 아닌 한글인데다 받침이 있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은 낮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왕푸징 거리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8시가 훌쩍 넘는다. 자원봉사 하느라 못 봤던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거나 부족한 언어를 스스로 공부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일 땡볕에서 일하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전혀 힘들지 않다"며 "외국어 공부도 하고 외국인들과 교류도 할 수 있어 좋기만 하다"고 답한다.

"원래 저희는 농촌에서 병 줍는 아이들이었어요."

기자가 가장 놀란 것은 이들의 이력이다. 자원봉사자 5명 모두 광둥성 동관에서 재활용 가능한 병을 모아 하루벌이 하던 아이들이었다.

하루 먹고사는 것도 힘겨운 아이들에게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것은 '꿈'이었다. 정식 학교는 아니지만 이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은 바로 이들이 '선생님'라고 부르는 친빙청(48)씨다.

"번 돈을 값지게 쓰고 싶었을 뿐"

 아이들의 선생님 친빙청(왼쪽)과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외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왕천향.

아이들의 선생님 친빙청(왼쪽)과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외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왕천향. ⓒ 박선민

"7년 전 중국이 올림픽 개최국으로 확정된 후 결정했어요. 아이들에게 여러 외국어를 가르쳐 베이징에서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지난 2001년 중국이 올림픽 개최국으로 확정되었을 때 친빙청씨는 캐나다에서 일하는 평범한 홍콩 사람이었다. 그는 학생 때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 지금까지 스스로 공부를 했다. 홍콩인이라서 영어는 기본이었고 일본어는 여행 가이드를 했을 정도로 유창하며 한국어와 스페인어 또한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다.

그러던 그가 특별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중국으로 건너왔던 2003년, 이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 외국어를 가르칠 5명의 아이를 데리고 광저우로 옮겨와 4년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 7월 11일, 올림픽을 위해 5명의 학생과 함께 베이징 땅을 밟았다.

"지금까지 번 돈을 값지게 쓰고 싶었는데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맙죠."

4년을 넘게 아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외국어를 가르쳤고 베이징에서도 체재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후원을 받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는 26년 전에 일본 여행객 가이드를 하면서 돈을 꽤 벌었다고 한다. 번 돈으로 홍콩에 집을 세 채 샀는데 가격이 많이 올라 부동산 부자가 된 것이다.

그에게 이번 베이징 올림픽 자원봉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올림픽이 끝나면 5명의 아이들과 함께 광저우로 돌아가 새로운 외국어 2개를 더 공부할 예정이다. 바로 2010년에 열릴 아시안게임 자원봉사를 위해서다. 또한, 그는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쓰촨성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외국어를 가르칠 계획이다.

"이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아니예요. 할 수 없을 뿐이었지. 저는 단지 아이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가 농촌마을 동관으로 처음 왔을 당시의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 속에 해맑게 웃고 있는 꼬마들이 지금은 올림픽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게다가 5개 언어를 훌륭하게 구사하는 고급인력이다.

친빙청과 학생들은 앞으로도 계속 가르치고 배우며 또 실천할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도전이 2010년 아시안게임 그리고 그 후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친빙천 선생님을 만나기 전 광둥성에서 병을 주우며 하루 벌이를 했었다고 밝혔다.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친빙천 선생님을 만나기 전 광둥성에서 병을 주우며 하루 벌이를 했었다고 밝혔다. ⓒ 박선민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올림픽 자원봉사 왕푸징 베이징올림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