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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4>의 한 장면. 고등학생 시절 난 '모범생'으로 보였지만, '간지와방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여고괴담4>의 한 장면. 고등학생 시절 난 '모범생'으로 보였지만, '간지와방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 씨네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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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95년경, '동부이촌동'이라는 서울 부촌의 고급아파트에 가족들과 잠깐 거주하게 됐다.

그 시절, 외동딸인 나는 부모님에게 항상 모범생이어야 했다. 왠지 그 평판을 유지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길 만했다. 하지만 날라리 근성이 어디 가겠는가? 부모님은 꿈도 못꿀 '간지와방증후군'('간지'=폼, '와방'=무척 많이)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이스트팩 매고, 캘빈클레인 입고, 워크맨 허리에 끼고

그럼, 사례를 한 가지 들어보자. 그 당시 '게스'라는 브랜드의 청바지가 청소년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엉덩이 오른쪽에 역삼각형 빨간딱지는 집단 내에서 '있다'는 우월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는 못해도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그걸 입을 순 없었고, '간지'는 은근히 과시하고 싶었던 터였다.

찾고 찾다가 '캘빈클라인'이라는 청바지를 찾아냈다. 그 청바지에는 딱지가 티나지 않게 붙어있었고 그 때 패션을 아는 이들은 대부분 그 상표를 알아봤다. 그래서 몇날 며칠 아버지 가랑이에 매달린 결과 바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난 그 예쁜 청바지를 그 당시 유행했던 '이스트팩'에 넣어 다니면서, 방과 후면 뭇 남성들이 우글거리는 노량진 단과학원으로 갔다. 그 때 느껴진 사람들의 시선이란…. 참 거기에 자동되감기 기능이 있는 소니의 워크맨도 허리춤에 빛나고 있었다.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던 게 아니라 모범생으로 보이면서 새침한 이미지를 굳히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전략이었다. 학생들이 많은 단과 수강에 우선순위를 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일단 많은 이에게 폼 나게 보여야했으니까!

머리는 날티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상고머리를 했고, 교복 치마도 두 단 살짝 접었다. 거기에 유행하는 가방을 매고 사복으로는 나름 인정받는 청바지에, '아이참(쌍꺼풀 만드는 테이프)'을 붙인 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부모님 여행을 틈타 머리 염색을 시도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염색이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자율적이던 우리학교 아이들의 머리가 노랑·파랑·빨강 단풍잎으로 물들여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늘어날 수록 내 마음 속에서도 '간지' 증후군이 슬슬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음 속은 그랬지만,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듯 무표정한 채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고 갑자기 부모님께서 해외동반 여행을 가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그 때 내 머릿속을 '휙~' 지나가는 아이디어 하나. '때는 지금이다, 드디어 염색을 하는 거다.'

우선 나는 짝퉁 모범생 넘버투인 단짝 효선이를 꼬시기 시작했다. 효선이는 생각보다 쉽게 넘어왔다. 외동딸인 나에게 부모님이 없을 때 사고를 친다는 것은 완전범죄를 뜻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난 공부계획 때문에 굉장히 지친 듯한 표정으로 부모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부모님이 떠나자마자 효선이와 함께 어른스런 복장을 갖추고 비디오가게로 향했다. 당시 브래드피트를 무척 흠모하고 있었던 지라, <가을의 전설>이란 영화를 빌렸다. 어른 행사를 하면서 말이다. 이 영화는 '18세 이상 관람가'였으니까. 그리고 화장품 가게에 들러 은근히 붉은빛이 날 만한 염색약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일단 머리에 염색약을 칠했다. 대략 20여분 지나고 나서 헹궈야한다고 써있었다. 그래서 막간을 이용해서 <가을의 전설>을 봤다. 부모님이 즐겨 마시는 맥주 한 캔씩을 들고선. 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일인가?

세 형제들의 사랑을 몽땅 한 몸에 받는 붉은 머리의 아녀자를 보면서 부러움에 가득할 때, 너무 오랜시간이 지났음을 알았다. 걱정스레 헹군 우리들의 동양머리는 은근 빨강머리 앤으로 변신해 있었고. 걱정이 됐다. 하지만 '너무 티나면 뭐 며칠 있다가 다시 하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재미나게 영화를 보고 술도 먹고 흥청망청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빨강머리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래서 우리 둘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그냥 유지하기로.

"엄마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가 노래진 거 같어"

영화 <다세포 소녀>의 한 장면. 요즘은 고등학생이라도 제법 여러가지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할 수 있다.
 영화 <다세포 소녀>의 한 장면. 요즘은 고등학생이라도 제법 여러가지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할 수 있다.
ⓒ (주)영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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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개학할 때쯤 부모님은 돌아왔다. 하지만 개학과 동시에 난 아침 식사시간과 야자나 학원을 끝내고 난 밤에야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염색한 걸 엄마에게 걸리지 않았다.

그런 나날 속에 난 은근히 갈색이 돼버린 내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한껏 폼을 내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졸면서 아침밥을 먹고있는 나의 머리 위로 창문너머 한줄기 빛이 비추고 있었다. 선선한 공기와 함께.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그때 도시락을 싸던 엄마가 달려 들어와 머리를 어루만졌다. "너 머리색이 왜 이래!"

'아차 이런. 철두철미하지 못했군….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한다. 나는 엄마의 기대치를 져버릴 수 없다. 결코! 그녀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믿고 싶을 것이다. 알면서도. 넘어가고 싶을 것이다'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뇌 속을 후비고 다녔다.

그래서 대뜸 나온 말이. "요즘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힘들어. 어질어질하고. 내 친구들도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이렇게 머리가 노래지는 애들이 좀있어."

참. 어디서 이런 엉뚱한 발상이 나온 것인지. 그러나 반응은 의외였다.

"아이고. 나도 네 나이 때 그러더니. 너도 그러는구나. 우리 가문이 유전자가 정말 약한가보다. 내가 그때. 얼마나 머리가 양놈이냐고 놀림을 받았던지! 어째 저번에 효선이 머리 도 좀 노랗더만. 늬들 둘이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보네. 어쩌냐. 어린 소녀들이. 늬들이 만만디인 줄 알았는데. 입시가 조급하게 만들기는 하는구나."

허걱. 넘어가서 안도하긴 했지만.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커진 듯했다.

알 수 없는 동물의 육즙을 들이켜야만 했던 나

그리고 며칠 뒤인가? 집에 희한한 한약이 배달되었다. 기력을 보강한다는. 어떤 동물의 육즙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역했다. 엄마가 덧붙인다.

"이렇게 갈색으로 되다가 머리카락이 가늘어진단다. 그리고 머리가 쑥쑥 빠진대. 늦으면 고칠 수 없다니깐. 빨리 손을 썼다, 내가." 

그리곤 또 한탄을 한다.

"내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두 달간 한약을 먹은 나는 식욕이 부쩍 늘어 피둥피둥 살이 쪘으며, 하루 세 번 역한 맛을 보며 후회의 나날들을 살았다.

그리고 수능을 보았다. 해방감에 먼저하고 싶은 일들을 해치웠다. 옷도 사고, 보고싶은 잡지도 실컷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그러다가 엄마 후배가 하는 미장원에 갔다.

유난히 호들갑이 심한 엄마가 나선다. "얘가 수험생으로 너무 고생을 해서…." 역시 어디서나 모범생으로 날 부각시키는 엄마. 거울 앞에 앉았다. 보조가 보자기를 둘러주며 말했다.

"염색하신지 좀 됐나 봐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가 저기서 달려와서 말했다.

"얘가 어찌나 수능 공부한다고 고생했는지. 머리가 이렇게 노랗게 되었다니까요. 그나마 한약을 먹어서. 이것 봐요, 새 머리 올라오죠? 까만 머리? 하여간 요즘 애들 너무 힘들어서 불쌍해 죽겠어. 정말…."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묘한 웃음을 짓던 보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모가 머리에 물을 뿌리며 몰래 꿀밤을 쥐어박는다.

"이모! 쉿! 절대!"
"너 지금 너네 엄마 진짜 바보 만든 거다. 그거만 기억해라."

13년이 지난 지금, 강한 내전의 폭풍이...

2008년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지금, 문득 그 날이 떠올랐다. 참 별 거 아닌데 목숨을 걸고 우리들만의 비밀을 어른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청소년들은 그렇게 하루하루 열정을 누른 채 다가올 시험을 걱정하겠지.

사회에 나와 독립한 지 10년.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이 되어버리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또랑또랑하게 들려오는 "일어나셨어요, 찌솔(아직도 나는 그 정체모를 찌솔이라 불린다)?"

"엄마. 나 고3 때. 머리 노랬던 거 기억나?"
"그래. 사실 엄마 그것 때문에 앓아누웠었다. 얘가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고."
"사실…."

"응 뭐." 
"나 그때 염색한 거 였는데. 엄마도 알았지?"
"뭐라고? 잠깐만 뭐라고!"
"헉. 엄마 몰랐어?" 

사람소리라고는 일컫지 못할 경악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야~! 너 그거, 내가 그러려고 내가! 기력 회복하라고 내가! 똘이까지 잡아서 개소주까지 먹이고! 그랬냐! 그래서 한약 값이 100만원이나 들었냐! 야야야야야야!"
"엄마! 똘이? 우리가 키우다 너무 커져서 삼촌 집에 갖다줬다는 똘이? 걔 자연사했다며! 저절로 죽었다며!"

13년이 지난 지금, 강한 내전의 폭풍이 우리 집안에 불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거짓말 공모글입니다.



태그:#거짓말, #개소주, #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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