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옷이 그게 뭐니, 남들 부끄럽지 않니”라고 젊은이들에게 종종 말하곤 하지요. 또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며 피가 뜨거워져 잠이 오지 않는 청춘들을 달래곤 하지요. 그러나 기성세대들도 젊었을 때는 미니스커트와 나팔바지를 입고 장발머리로 멋을 냈군요. 암울했을 70년대에도 지금 젊은이들보다 더 뜨겁게 놀았다는 걸 영화 <고고70>(최호 감독)은 보여주네요.

비틀즈? 장발에 티를 나팔바지에 집어넣는 건 당시 유행이었지요. 70년대 나팔바지를 보면서 90년대 힙합바지가 연상되네요. 젊은이들의 패션은 늘 이상하고 신기하니까요.

▲ 비틀즈? 장발에 티를 나팔바지에 집어넣는 건 당시 유행이었지요. 70년대 나팔바지를 보면서 90년대 힙합바지가 연상되네요. 젊은이들의 패션은 늘 이상하고 신기하니까요. ⓒ 보경사


‘나라의 평화’를 위해 야간에 돌아다녔다가는 잡혀가는 유신 독재 시대에도 서울의 밤을 화끈하게 달군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음악 밴드들과 고고족들이죠. 영화는 고고열풍을 불러온 밴드 '데블스(Devils)'와 70년대를 기초삼아 음악영화로서 재구성하네요.

암흑의 유신시대, 고고가 서울의 밤을 밝히다

자유를 향해 답답하고 무서운 현실에서 고고는 즐거운 탈출구였지요. 저 많은 손들은 자유를 향한 애달픈 손짓처럼 느껴지네요.

▲ 자유를 향해 답답하고 무서운 현실에서 고고는 즐거운 탈출구였지요. 저 많은 손들은 자유를 향한 애달픈 손짓처럼 느껴지네요. ⓒ 보경사

상규(조승우 분) 일행과 만식(차승우 분) 밴드는 데블스라고 이름을 걸고 서울로 올라가지요. ‘소울 음악(soul music)'으로 사람들을 뒤흔들려고 올라온 서울이지만 사람들은 아직 그들의 소울은 이해하지 못하고 시대는 흥겹게 노는 걸 허락하지 않지요.

놀고 싶은 젊은이들의 욕구를 간파한 팝 칼럼리스트인 이병욱(이성민 분)의 기획과 화려한 의상과 춤으로 관객들을 휘어잡은 미미(신민아)가 데블스 음악에 더해지면서 고고열풍이 서울의 밤을 휩쓸지요. 젊은이들은 몸을 흔들며 밤새도록 고고하네요.

많은 청년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정권퇴진을 요구했던 그 시대에도 놀고 싶은 젊은이들은 있기 마련이죠. 모든 것을 금지하던 시대이기에 노는 것도 저항이 되네요. 춤추고 노는 것은 ‘불온문화’이고 ‘북괴’가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는 이상 ‘이적행위’가 되지요. 이러한 현실은 너무 갑갑하기에 생각하지 말고 달리자며 고고(gogo)라고 이름을 짓고 젊은이들은 한바탕 노네요.

'젊은 상상력'이 더해진 저항영화

머리가 길다고 가위를 든 경찰들이 시민들 머리를 자르고 짧은 치마를 단속하겠다고 여성들 다리에 자를 갖다 대라고 시켰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고고는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요. 긴급조치가 내려지고 퇴폐문화 단속을 벌이며 데블스 밴드와 고고 문화에 철퇴가 내려지죠. 퇴폐 문화를 단속하겠다는 ‘퇴폐정권’에 대해 오늘날 밤새워 노는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 연장선에서 젊은이들의 자유로움이 영화에 덧붙여지네요. 때리고 괴롭힌다고 조용히 꼬리를 내린다면 이 영화는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영화는 70년대를 배경으로 삼되 재연에 그치지 않고 싱싱하게 젊은 상상력을 끌어들이죠. 유치장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동료 밴드들을 팔고나오지만 ‘다시 놀아보자’며 무대를 여는 데블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젊은이들의 도전의식과 생기발랄함은 영화 마지막 16분 동안 음악공연에서 폭발하네요. 독재정권의 억압에 고통스럽게 젊은이들이 항거했듯이 주인공들은 최루탄 가스에 콜록거리지만 끝까지 노래를 부르며 저항하네요. 노래는 70년대지만 그들의 몸짓은 2008년 현재진행형이지요.

"다시 놀아보자" 퇴폐문화 일제 단속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다시 공연을 하는 주인공들. 당시 많은 청년들은 때리고 협박한다고 불의에 꼬리를 내리지 않았지요. soul을 노래하는 주인공들처럼 그들에게는 soul(영혼)이 있었으니까요.

▲ "다시 놀아보자" 퇴폐문화 일제 단속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다시 공연을 하는 주인공들. 당시 많은 청년들은 때리고 협박한다고 불의에 꼬리를 내리지 않았지요. soul을 노래하는 주인공들처럼 그들에게는 soul(영혼)이 있었으니까요. ⓒ 보경사


70년대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보통 어둡고 무거워지기 쉽죠. 많은 이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안겨준 시대니까요. 당시를 고마움으로 기억하려는 일부의 움직임도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 우스개가 되어버리죠. 밝고 가볍게 나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박정희의 그늘에서 한국은 점차 벗어나는 게 느껴지죠. 

퇴폐문화를 선도한 그때 그 사람들

그런데 ‘퇴폐문화’를 선도한 ‘그때 그 사람들’은 어째서 대중들이 노는 걸 그렇게 못마땅했을까요. 밤이 되면 사이렌이 울리며 불을 끄게 한 것은 젊은 여성들과 밤마다 술과 향락을 누리던 게 부끄러워서였을까요. 퇴폐를 척결하려 했던 ‘근대화의 아버지’가 알고 보면 ‘퇴폐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쉬쉬하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퇴폐? 미니스커트가 퇴폐인지 여성들 허벅지 위에 자를 대는 일이 퇴폐인지 답은 너무 뻔하지요. 퇴폐문화를 단속하겠다는 그때 그 사람들은 밤마다 '퇴폐문화의 모범'을 보이네요.

▲ 퇴폐? 미니스커트가 퇴폐인지 여성들 허벅지 위에 자를 대는 일이 퇴폐인지 답은 너무 뻔하지요. 퇴폐문화를 단속하겠다는 그때 그 사람들은 밤마다 '퇴폐문화의 모범'을 보이네요. ⓒ 보경사

막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심리에요. 모든 것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욕망만 허용한 독재정권 아래에서 사람들은 더 놀고 싶었겠죠. 때마침 불어온 고고 열풍은 ‘산업역군’들을 보통 사람으로 회복시켜준 것일 뿐이지요.

총소리와 함께 젊은 여성들을 옆에 끼고 있던 ‘그때 그 사람’은 쓰러지지요. 재미있게도 데블스는 1980년 해체하고 그들이 활약했던 고고장 ‘닐바나’는 1979년 문을 닫지요. 유신 독재정권이 허물어진 비슷한 시기에.   

70년대에도 청춘들은 있었다

드라마가 조금 약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흥겨운 음악과 빼어난 공연 영상에 눈과 귀가 홀리네요. 조승우의 뛰어난 노래실력과 밴드의 탁월한 반주 솜씨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더니 내로라하는 카메라감독들이 동원되어 12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현란한 공연 장면은 마치 콘서트장에 간 것 같은 착각이 들죠.

영화는 노는 것도 허락 맡아야 하는 암울한 시대상과 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움이 대조를 이루지요. 부조리한 폭력으로 자유의 목소리를 억누르던 시대보다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열기에 초점을 맞췄기에 이 영화는 7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유쾌하네요. 오히려 공권력의 탄압, 단속, 규제, 감시는 신나게 흔드는 젊은이들을 돋보이게 하지요.

영화를 보니 홍대, 강남역 등에 있는 클럽 문화가 오늘날 신세대 문화라고 말했다가는 큰 코 다치겠네요. 이 영화는 지금쯤 50대가 되었을 70년대의 청춘들도 시대 억압에 맞서며 화끈하게 놀았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있는 근대사 동영상’이네요. '아침이슬'만 부르고 시대 아픔에 몸서리만 떨었을 거 같았던 그 시대에도 한국 로큰롤의 1세대와 청춘남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배우네요.

"우리도 젊었을 땐 말이야" 70년대에 고고로 밤을 지새던 젊은이들과 2000년대 클럽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네요. 지금이면 50대가 되었을 기성세대들도 젊었을 때는 화끈하게 놀고 싶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네요.

▲ "우리도 젊었을 땐 말이야" 70년대에 고고로 밤을 지새던 젊은이들과 2000년대 클럽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네요. 지금이면 50대가 되었을 기성세대들도 젊었을 때는 화끈하게 놀고 싶었다는 걸 새삼 알게 되네요. ⓒ 보경사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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