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누구를 맞이하고 있을까요

"단풍은 없어요, 가뭄으로 어설픈 단풍 지난 비바람에 모두 져버렸거든요, 오대산에도 없는 단풍이 설악산에 남아있겠어요?"

"아니에요? 주전골에는 분명히 멋진 단풍이 남아있을 겁니다. 주전골은 설악산의 다른 골짜기와는 달라요. 내기라도 할 수 있어요."

 

나는 단풍이 지고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른 일행은 고운 단풍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11월 1일 20여 명이 버스를 타고 한계령을 넘으며 바라본 설악산의 단풍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5부능선 이상은 이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습니다. 골짜기와 낮은 봉우리들도 새빨간 단풍이나 샛노란 단풍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멀리서 바라보면 어설프게나마 단풍 색깔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너무나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뭐랄까. 어정쩡한 빛깔의 나뭇잎들은 불그스레하거나 누리끼리한 정도로 그 빛깔이 너무 볼품없는 모습이었지요.

 

주전골이 설악산이고 설악산이 주전골인 일행

 

며칠 전 오대산에서 이미 단풍에 실망한 터라 설악산 단풍도 아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행 한 사람이 굳이 주전골을 거쳐 내려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주전골엔 분명히 고운 단풍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일행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주전골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수량이 너무 적어 초라한 용소폭포

 작은 웅덩이에 내려앉은 낙엽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중 어느 때 설악산을 찾아도 그는 주전골에 들르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해마다 몇 번씩 그가 설악산을 찾는 것은 어쩌면 주전골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에게는 설악산이 곧 주전골이었고, 주전골은 설악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양양 여행 일정에서 어쩌면 주전골에 들르지 않고 다른 곳을 경유하여 서울로 돌아온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양양으로 가는 길에서 한계령을 넘을 때 아예 주전골을 거쳐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어떻게 말릴 수 있겠습니까?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지요. 물론 고운 단풍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계령을 넘어 내려가다가 주전골 입구에서 내린 일행들은 골짜기로 향했습니다.

 

첫번째 만난 곳은 용소폭포, 그러나 오랜 가뭄에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너무 약하여 여간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단풍다운 고운 단풍도 볼 수 없었지요.

 

단풍도 폭포도 볼품없이 초라한 풍경

 

"여기서 그냥 내려가면 너무 싱거우니까 십이 폭포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로 합시다."

 

역시 주전골을 좋아하는 일행이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갔다가 내려오자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주전골을 더 즐기고 싶어서였겠지요. 몇 사람은 그대로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대부분의 일행들은 위쪽으로 향했습니다.

 

 열두 굽이를 흘러내리는 십이폭포

 바위절벽과 봉우리들

그러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골짜기를 흐르는 수량은 더욱 적어지고 나뭇잎들도 대부분 낙엽으로 떨어져 황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양편으로 뾰족뾰족 솟아있는 바위봉우리들은 금강산의 만물상처럼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특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누군가를 맞이하는 듯한 모습의 바위 봉우리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위바닥 골짜기를 굽이굽이 열두 굽이를 돌아 흘러내리는 십이폭포도 흘러내리는 물이 너무 적어 초라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폭포 아래 골짜기 바닥 바위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낙엽들도 쓸쓸한 모습이었습니다.

 

골짜기 등산로는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경사진 대부분의 등산로가 목재 다리와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안전한 등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골짜기엔 아직도 부서진 시설물 잔해가 남아 있어서 몇년 전 집중호우로 입은 피해를 가늠해볼 수 있었지요.

 

잘 정비된 등산로, 그러나 곳곳에 수해의 흔적들

 

십이폭포까지 올랐다가 뒤돌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래골짜기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많은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늘한 늦가을의 설악 풍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전골 중류까지 내려오는 동안 고운 단풍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골짜기 사이로 바라보이는 봉우리

 노랑과 빨강, 어둠과 밝음, 색과 빛의 조화

"우리가 너무 늦었나? 주전골 단풍이 왜 이 모양이지?"

"그러게 말이야. 올라올수록 단풍 구경을 할 수가 없네."

 

밑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도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없는 것이 몹시 서운한 모양이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이 골짜기 바위 절벽에 곱게 물든 단풍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빨리 내려와 여길 보세요? 이 단풍 곱지 않아요?"

 

앞서 걷던 일행 한 사람이 반색을 하며 불렀습니다. 다가가 살펴보니 개울 위로 가지를 뻗친 한 그루의 작은 단풍나무와 노랗게 단풍이 물든 잡목이었습니다. 예년처럼 단풍이 곱고 풍성했더라면 결코 관심을 끌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이날의 주전골에서는 이만한 단풍도 대단한 수확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몇 번인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정성껏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다른 등산객들도 모처럼 고운 단풍이라며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발견한 고운단풍과 아름다운 골짜기 풍광

 

골짜기 아래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단풍빛깔이 고와졌습니다. 골짜기 양편으로 늘어선 기암괴석 절벽과 봉우리들의 모습도 더욱 깊고 높고 섬세한 모습으로 다가왔지요. 햇볕도 밝고 하늘도 맑았습니다. 그 맑은 하늘 아래 주전골의 풍광이 정말 아기자기한 모습이었습니다.

 

길은 골짜기를 따라 곳곳에 목재 다리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해복구를 한 골짜기의 모습은 예스럽지 못했습니다. 작은 바윗돌로 쌓은 축대 같은 것들은 골짜기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지요.

 

 바위봉우리와 단풍

 성국사 석탑과 단풍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보다가 멋진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골짜기 물가에서 자란 단풍나무였습니다. 그러나 단풍나무에 곱게 물든 단풍잎은 이미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촘촘히 잎이 붙어있는 가지와 드문드문 붙어있는 빨간 단풍잎 사이로 바라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있었습니다.

 

골짜기 가운데로 바라보이는 뾰족한 바위봉우리를 단풍나무 한 그루가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환상적인 풍경이었지요. 새빨간 단풍잎 사이로 바라보이는 뾰족한 바위봉우리가 그렇게 멋진 모습일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운 단풍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 이후론 오색약수터에 내려올 때까지 더 이상 고운 단풍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성국사에 이르렀을 때 3층 석탑 너머로 바라보이는 단풍이 있었지만 결코 곱고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요.

 

드디어 오색약수에 이르렀습니다. 약수터에 이르기 전 골짜기에 걸린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오색약수터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약수터 주변은 수해복구를 하면서 끌어올려 정비한 바위옹벽과 바윗돌들, 그리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자갈들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오색약수터 근처 골짜기도 고운 단풍은 없었습니다. 나지막한 산등성이도 우중충한 빛깔이었습니다. 그러나 길가 음식점 마당에 벌여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빨간 마가목 열매들이 단풍보다 훨씬 곱고 진한 빛깔이었습니다.

 

 가게앞에서 파는 새빨간 마가목 열매

"어때요? 단풍은 볼 게 없었죠?"

 

주전골엔 고운 단풍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우긴 일행에게 슬쩍 농담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 일행이 마침 뒤따라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 고운 단풍 카메라에 많이 담으셨잖아요? 그만하면 좋은 단풍 아닌가요? 단풍보다는 언제 봐도 아름다운 골짜기가 더 좋았지만 허허허."

 

일행의 유쾌한 웃음 속에는 이번 여행길에서도 주전골을 놓치지 않고 걸어 내려온 만족감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