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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박성복 원장.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박성복 원장.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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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선풍기, 자전거, 전화기 등 안 고쳐 본 것이 없다. 발목이 부러진 송아지 깁스도 마다 않고, 양수가 터져버린 흑염소 수술을 위해 원정도 가는 이곳은 압해도 사람들에게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다 늙어 부렀는디 사진을 뭐할라고" 진료를 마치고 나서는 어르신.
 "다 늙어 부렀는디 사진을 뭐할라고" 진료를 마치고 나서는 어르신.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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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민 6600여 명이 1.6km, 5리도 채 안 되는 바닷길을 철부선을 타야만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이야 압해도간 연륙교 개통으로 버스 한 대로 목포까지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배차 시간이 한 시간 남짓이다. 젊은 사람들이야 섬에서 도회지까지 들고 나는 것이 자유롭지만, 평균연령 65세 이상 노인층이 많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마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압해외과'는 이들에게 더욱 소중한 곳인지도 모른다.

이곳 환자에게는 굳이 이름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병원문을 들어서는 순간 환자 이름이며 어디가 안 좋아 오는지 거의 꿰고 있다"는 황혜혼 간호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취재 중의 병원 분위기에서 묻어나는 모습 때문이다.

꼭꼭 싸맨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어르신에게 "뭐가 또 고장 났는디? 다리는 무장 그래? 괜찮아 질거여"라며 신계호 원장은 쉴 새 없이 다감하게 말을 내 놓는다.

압해도 야생화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압해외과 신계호 원장 .
 압해도 야생화 사진찍기를 좋아한다는 압해외과 신계호 원장 .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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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잘 익은 홍시감이나 잔치끝 떡가지를 내밀기도 한단다. 초진이든 재진이든 상관없이 진료비 1500원을 받는데, 이유는 "아무리 없어도 1500원은 가지고 오시더라"며 신계호 원장은 너털웃음이다. 그래서 가끔은 수만원은 훌쩍하는 영양제가 덤이 될 때가 있다.

생선을 먹다 손가락 마디만한 가시가 목에 걸려 병원을 찾은 어르신은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해 진료를 하는 이도 진땀을 빼고 있을 즈음, 목소리가 큰 신 원장의 한마디에 목에 걸린 가시를 빼는 일이 수월해진다.

"아퍼도 쫌 참고 아~해봐. 안 그라믄 내시경 해야 된디… 그라믄 10만원 들어 부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처음 병원문을 열었던 2001년. 목포서는 제법 큰 병원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을 닫게 되면서 함께 일을 하던 사람들과 이곳 압해도에 병원 문을 열었고, 병원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도회지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진료를 하는 시간보다 이런저런 사는이야기며 가정사를 들어주고 함께 울다, 웃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고, 새벽부터 병원을 찾는 어르신들 때문에 술 한 번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술도 끊었다"는 신계호 원장은 천상 의사다.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한 외과의사가 펴낸 책을 건네주며 구호 활동과 가난한 동네에서 이웃 사람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는 박성복 원장은 참 조용한 사람이다. 진료를 할 때도 걸을 때도 슬리퍼 소리마저 잘 내지 않는다.

'인도주의 의사회' 이야기며, '맨발의 의사들' 이야기를 찬찬히 끄집어 내며 "병원은 공공서비스여야 한다"고 박성복 원장은 목소리를 높인다.

"서민을 위한 공공의료를 위한다면 대도시가 아닌 시골마을보건지소 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의료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고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가 자본제일주의로 멍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박 원장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의사면허가 10만을 넘어섰고, 우리나라 상위층이 의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고소득을 보장하는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료는 지나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순간 환자가 돈으로 환산된다고 이야기 한다. 비급여 의료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식코> 같은 영화가 만들어 지지 않았겠느냐. 미국식 의료가 아닌 국가 의료를 하고 있는 영국식으로 가야 한다."

압해도 압해외과를 책임지고 있는 두 원장은 전혀 다른 듯하지만 닮아 있다. 환자를 위한  마음, 마을사람을 향한 마음, 동료들을 향한 마음이 그러하다. 뭍으로 나가는 일이 수월해진 탓에 도회지의 큰 병원을 찾아 가는 환자가 늘어 섬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이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륙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야간에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발 빠른 대처가 불가능해 그것이 늘 안타까웠던 압해외과 병원 사람들은 지금은 그런 부분이 해소 되어 다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은 섬이라고 할 수 없는 작은 섬마을에 있는 압해외과 두 의사에게 작은 꿈이 있다. 언제가 될지 아직은 미지수 이지만 노인전문병원을 여는 일이다. 요새 요양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노인인구가 절대인 이곳에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제대로 된 노인전문병원이 꼭 필요하다는 그들의 생각이다.

자전거, 전화기 등도 고쳐주길 마다않는  주민들의 벗 황정수 사무장

난민촌을 찾아 가거나 세계의 오지를 찾아 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구호활동이지만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상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의료를 펼치고 있는 젊은 그들과 하루를 지내면서 쌀쌀한 가을 가슴이 따뜻해진다.

다시 130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압해외과에서 만났던 "다 늙어 부렀는디 사진을 찍어서 뭐 할라고"하며 수줍게 웃으시는 어르신과 자리를 같이 했다.

어른신들이 자리에 앉아서 출발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친절한 버스 기사님 때문에도 작은 배려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행복한 가을 날. 문득 사람의 병이 마음에서 생기듯 병의 치료도 의술이 아니라 인술로 고쳐진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섬마을 두 의사와 병원사람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면서 행복한 취재를 마무리했다.


태그:#목포21, #압해도,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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