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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제가 어렵다. 기업 파산, 가정 파산을 이야기한다. 이럴 때에 대비해서 사회 보장이라는 게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사회복지 수준이 하위권이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 개인보험이다. 누구는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버팀목이라고 하고, 누구는 '불안'을 파는 장사라고 비판한다. 과연 무엇이 옳을까. 여기 각기 다른 주장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보험과는 참 인연이 없이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당연히 돈이 없었고, 직장에 다닐 때는 4대 보험으로 만족했습니다. 결혼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5년 동안 나와 아내가 든 보험은 하나도 없으니까.

 

아참, 결혼 초기 살짝 보험과 마주친 적 있습니다. 결혼식을 얼마 앞두고 어머니가 결혼식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물으시고는 보험증서를 내미셨습니다.

 

"그동안 내가 널 위해 넣던 건데, 이제 네가 이어서 넣어라."

 

없는 살림에 늘 바쁜 어머니가 이런 것까지 챙기셨나 싶어 감동 먹었습니다. 쌓인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가입한 지는 좀 됐습니다. 보험도 마음이 담긴 선물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이후로 몇 번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잘 넣고 있냐. 괜찮은 상품인 것 같던데 웬만하면 넣어라. 왜? 힘드냐."

 

보험회사에서 독촉한 모양입니다. 얼마 뒤 내가 먼저 전화드렸습니다.

 

"낡은 빌라라서 그런지 녹물이 나오네요. … 그래서 말인데, 어머니가 든 보험 해약해서 정수기 샀어요. 애도 생기고, 당장은 이게 필요해서." "…."

 

어머니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 정수기 덕에 우리는 물 걱정은 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특히 나는 생수 사와라, 약수 떠와라 등등 신부름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묻습니다. "불안하지 않니?" 부모님은 말씀은 하지 않지만 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저 놈이 몇 만 원짜리 보험도 들지 못하는 형편인가.'

 

굳이 설명해 드리지는 않았지만, 돈이 한푼도 없어서는 아닙니다. 차고 넘치는 '축복'을 받지는 않았지만, 부족하고 아쉬운 대로 자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보험이야 돈이 없을수록 더 들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려울 때를 미리 대비하라는 충고도 제법 들었습니다.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험 광고를 듣고 볼수록 다른 방법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 보험은 믿을 만한 친구고 가족이다?

 

보험회사는 광고합니다. 보험은 정말 어려울 때 친구 같은 존재라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반갑게 통화하다가도 돈 이야기 나오면 뚝 끊는 세상이라서, 용돈의 일부만 투자해도 힘들 때 큰 보탬이 된다고 합니다. 광고에는 실제 사례들이 등장하고, 당신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하라고 충고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보험이야말로 진짜 친구고, 힘이 되는 가족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사려 깊은 동반자고, 때로는 갖고 싶은 애인입니다. 그래서 "어디 **보험 같은 남자 없나"라는 카피가 등장했나 봅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폼나게 달리다가도 남친이 평생 함께 하자고 하면 당장 차(광고에서는 이륜차)를 세우지만, 보험은 영원을 약속합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고 했나요. 이제는 '내가 부은 보험이 먼 친척보다 낫다'고 해야겠지요. 잘 키운 보험 하나가 열 아들 안 부러운 노부모도 있고, 남편이 남기고 간 보험 덕에 고생을 던 아내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험이 없어, 돈이 없어, 인생 수렁에 빠졌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조금 더 따져보면 꼭 보험과 돈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보험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삶을 한 순간 막장으로 내모는 정글에서 이 정도 안전장치는 필요하겠지요. 이런 생각에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살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막상 그렇게 살아보면 미리 짐작한 걱정과 다르게 그리 불안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보험 대신 진짜 친구들 사귀다

 

보험은 자신이 친구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진짜 친구가 있습니다. 보험이 든든한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단지 그들은 보험처럼 쿨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미련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도 쌍방이.

 

꾸준히 쌓은 신뢰는 의심이라는 아주 작은 틈 하나로 와르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한 순간만 넘기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인데, 길어진다면? 우리의 우정과 사랑을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관계에 대한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안전한 돈에게 내 미래를 맡깁니다. 이것이 보편적이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믿는 게 우리 시대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관계'에 나를 맡기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험이라는 나만의 비상구를 만들지 않고 친구를 맺어갑니다. 너와 나의 문제를 우리의 과제로 알고 함께 풀어가는 길벗이 되는 것입니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더라도 깊은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가까운 마을로 이사했습니다. 한두 가정씩 오다가 몇 년이 지나자 10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비슷한 연배라 인생 과제도 엇비슷합니다. 집을 구하는 문제와 직장을 잡는 문제, 연애와 결혼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 문제, 임신·출산·육아 문제 등을 머리 맞대고 풀어갑니다. 우리의 실천이 우리 시대의 문제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알기 위해 철학과 역사, 사회과학 등에 관한 공부도 함께 합니다.

 

어른들만 공부하는 게 아니고, 아이들도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교육을 하기 위해 공동육아를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고, 올해 아름다운마을학교라는 대안초등학교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외부에서 고용하지 않고 함께 마을에서 살면서 꾸준히 신뢰를 키워오고 교육을 준비한 사람들이 맡았습니다.

 

공공을 늘리며 대안을 만들어갑니다

 

원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식사하러 모여 자연스럽게 사귑니다. 저녁밥상이 재미있는 일과를 나누는 자리가 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문제로 토론하는 장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한 가정이 공동체로 결속력을 다지는 강력한 계기인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맛난 먹을거리를 혼자 혹은 자기 가정만 먹지 않고 함께 나누며 애정과 신뢰를 더욱 깊게 쌓아갑니다.

 

집에 있는 책들도 마을도서관을 만들어 함께 공유합니다. 책으로 상징되어 드러나는 지식에 대한 욕망을 자기 것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생활양식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차도 함께 사용합니다.

 

집집마다 차를 구입하지 않고 몇 대를 가지고 여러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럼 금방 망가지겠네?" 물론 혼자 타면서 애지중지하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이곳저곳에 함께 타는 흔적이 남았지만, 함께 쓰면서 누리는 '감가삼각'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를 쓰는 사람도 있고, 우리 중에는 환경을 생각해 차 같은 문명의 이기를 쓰지 않으려고 자전거를 타는 등 다른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차를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이 그런 문제로 논쟁을 벌이지는 않습니다. 필요에 맞게 서로의 정황에 맞게 실천하는 것을 존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삶에서 함께 쓰고 나누는 영역을 넓혀갑니다. 재정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자 하는 일이 달라 돈도 다르게 받지만 똑같이 나눠 씁니다. 물론 교통비나 교육비, 의료비 등 공공의 성격이 짙은 비용은 필요에 따라 공동비용에서 지출하지요. 이렇게 재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러한 삶을 지향합니다. 마치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이 십일조라는 것을 만들어 자기 백성들을 평등케 하시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관계가 보험이다

 

그렇지만 많은 교회들은 십일조가 품고 있는 참된 정신을 보지 않고 교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십일조를 사용해서 비난을 받습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십일조 정신은 '평등'에 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평등하면,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이나 네 주머니에 있는 것이나 모두 하나님의 것(혹은 공공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각자는 필요에 따라 잠시 맡아서 쓰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10%를 내놓으면 나머지는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되는 줄 압니다.

 

그러한 문제를 간파한 어느 교회 목사님이 "교회가 보험이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맺는 관계가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해야 제대도 된 교회라는 겁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맺지 않고 말로만 "형제" 혹은 "자매"라고 떠드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 목사님은 실제로 교인들끼리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관계를 만들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건강한 관계라면 교회든 가족이든 친구든 조직이든 서로 '보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보험회사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 부분은 누리고도 있지요.

 

이순재 선생님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보험은 그렇게 시작합니다. 반면 마을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친구는 이것저것 '귀찮게' 간섭하고 묻고 따집니다. 보험은 사건이 터졌을 때, 보상 조건을 꼼꼼하게, 어느 경우는 비참하게 따집니다. 그렇지만 참된 관계는 묻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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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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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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