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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죽령 고개를 넘을 필요가 없어

 

 죽령 옛길의 표지석

 

소백산 지역은 여러 번 답사를 했다. 죽령 이쪽과 저쪽을 잇는 죽령 옛길을 탐사하기도 했고, 소백산을 조금 벗어난 봉황산 부석사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따라 소백산 경계탐사를 하기도 했다. 또 소백산 서쪽으로 흐르는 남천계곡의 발원지를 찾아 고치령에서 소백산을 넘는 물길 탐사도 해 보았다. 그렇지만 소백산 동쪽에 있는 작은 절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다. 인연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 그것도 소한(小寒)에 이들 절집을 찾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굽이굽이 죽령 고개를 넘어야 소백산 동쪽으로 갈 수 있지만 이제는 터널이 뚫려 아주 빠르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4600m에 이르는 죽령터널을 3분이면 통과한다.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 풍기 읍내를 우회해 동양대학교 부근에서 931번 지방도를 탄다. 이 도로는 소백산 동쪽을 남북으로 잇는 길로 순흥을 지나 부석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소백산 동쪽의 작은 절들을 동쪽에서부터 보기로 했다. 그러므로 답사는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 순이 된다. 성혈사와 초암사는 순흥면에 있고 비로사는 풍기읍에 있다. 성혈사를 보기 위해서는 순흥면 소재지에서 좌회전해 배점리를 지나 덕현리 방향으로 가야한다.

 

 성혈사 전경: 왼쪽 앞에서부터 나한전, 산신각, 성혈암이 있다.

 

성혈사 가는 길은 좁고 경사가 급하지만 결코 위험하지 않다. 길이 양지바른 곳을 따라 나 있어 운전하기도 편하다. 성혈사 가는 길에 저 멀리 소백산 국망봉이 올려다 보인다. 산 정상은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차를 성혈사(聖穴寺)의 중심 법당인 성혈암(聖穴菴) 앞에 세운다.     

 

작지만 볼 것이 많은 절집들

 

 특이한 정자인 함담정

 

성혈사는 크게 다섯 개의 당우로 이루어져 있다. 종무소로 쓰이는 성혈암, 요사채, 나한전, 산신각, 아직 현판도 붙이지 않은 삼성각이 그것이다. 물론 특이한 정자인 함담정(含湛亭)을 불교 전각으로 본다면 여섯 개가 된다.

 

이들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은 나한전이다. 1984년 나한전을 해체 보수하면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이 건물이 1553년(명종 8)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건물들은 그 이후에 지어졌다. 성혈암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알 수 없고 1937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산신각은 1886년에 처음 지어졌다는 기록(종도리 묵서명)이 있다. 그리고 삼성각은 2000년대 들어 새로이 지어졌다.

 

 성혈암의 세 부처님

 

그러므로 성혈사의 역사와 관련해 중요한 절집은 나한전, 성혈암, 산신각이다. 성혈암은 현재 성혈사의 중심 법당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3칸이 법당으로 쓰이고 나머지 2칸은 스님들의 생활공간으로 쓰인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존불로 하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하였다. 그런데 이들 부처님께 올려진 공양물이 재미있다. 초코파이와 바나나가 올려져 있다. 이곳의 부처님은 단 것을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성혈암에서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왼쪽 벽에 걸려 있는 신중탱화(경북 문화재 자료 제525호)이다. 그림 아래 기록된 묵서명(乾隆四十乙未秋)을 통해 1775년(영조 51)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탱화에서 오른쪽 가운데 크게 그려진 인물이 제석천이다. 제석천은 불교의 수호신으로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과 불제자를 보호한다. 그림 왼쪽에 위태천을 비롯한 사천왕이 있고, 오른쪽 제석천 주위에는 사대천자(天子)와 천녀(天女) 천동(天童)이 호위하고 있다.

 

 성혈암 신중탱

 성혈암 칠성탱

 

성혈암의 오른쪽 벽에는 칠성탱화가 걸려 있는데 1954년(甲午) 제작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별로 없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있고, 그 뒤에 칠성 여래가 호위하고 있는 형상이다.

 

산신 할아버지의 멋진 수염과 호랑이의 미소

 

성혈암을 나와 계단을 하나 올라가면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런데 산신각 안에 나무로 조각한 산신상이 있어 특별한 인상을 준다.

 

 산신각 안의 산신상과 산신탱

 

보통 산신각에는 벽면에 산신탱이 그려져 있다. 최근에는 산신탱과 불탱을 나란히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곳 성혈사 산신각은 산신탱과 함께 산신상이 모셔져 있는 특이한 구조다. 상투를 틀고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있다. 오른 손에는 염주가 들려 있고 양손 위로는 실꾸러미가 얹혀 있다.

 

산신을 태운 호랑이는 미소를 머금은 듯 무섭지 않은 얼굴이다. 그리고 호랑이의 좌우에는 동자 둘이 뭔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남자와 여자 아이로 보이는데 그 표정이 정말 천진스럽다. 이 산신상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종교성과 예술성이 비교적 잘 결합된 의미 있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나한전 앞에 있는 용사자석 등

 

 나한전과 석등

 

산신각에서 다시 계단을 하나 더 올라가면 나한전이 있다. 나한전 법당으로 오르기 전 법당 축대 아래 석등이 있어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리로 간다. 석등은 보통 탑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는 나한전 앞 양쪽으로 두 기의 석등이 나란히 서 있다. 이들 석등은 거의 똑같은 모습인데, 동쪽 석등의 받침돌인 거북이 땅 속에 묻혀 있고 서쪽의 것은 땅 위로 나와 있다.

 

 석등: 하대석은 거북이고 중대석은 용사자이다.

 화사석 사이로 보이는 석등

이들 석등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대석은 거북 형상이다. 그 위의 중대석은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을 한 사자이다. 얼굴 모습을 통해 사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석은 보통 석등과 마찬가지로 앙련이다. 그 위의 화사석은 팔각으로 사방에 구멍이 나 있다. 화사석 위는 옥개석이 덮여 있으며 옥개석 위에는 보주가 얹혀 있다.

 사자의 얼굴

이들 석등의 상단부 조각은 정교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하단부를 이루는 하대석과 중대석의 동물 조각은 정말 특이한 모습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용의 모습이 특히 역동적이다. 그런데 얼굴로 표현된 사자의 모습은 상당히 해학적이다. 얼굴 윤곽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표현되어 소박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거북이도 작고 아담해서 귀엽기까지 하다. 이것을 예술성이 떨어지는 지방 양식으로 보기보다는 종교적인 순수성의 표현으로 보는 건 어떨는지.

 

성혈암 벽면에 붙어있는 산신탱, 산신각의 산신조각상, 나한전 앞의 석등, 이들 모두는 성혈사를 대표하는 불교문화재다. 이들은 다른 소재를 사용하여 만든 예술품이지만 종교적 신봉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같은 기능을 한다. 이들 성혈사의 불교문화재가 예술적으로 좀 더 높이 평가받는 때가 조만간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소백산 동쪽의 작은 절 답사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소백산 동쪽의 작은 절로는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가 있다. 이들 절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탐사하여 기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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