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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공익광고협의회가 내보내는 광고 중에 다문화 정책 혹은 인식과 관련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

"아직 우리글이 서툰 다문화 가정 준호엄마를 위해 날마다 알림장을 읽어주신다는 민지 어머니, 당신의 사랑이 있어 준호도 대한민국의 꿈나무로 자랍니다."

(민지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모습과 함께 준호 엄마의) "언니, 고마워요"

"다문화 사회는 사랑하는 마음도 더 많아지는 사회입니다."

공익광고협의회 광고가 우리 사회의 다문화 정책 혹은 인식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함은, 광고를 통해 시청자가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 때문이다.

준호 엄마는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으로 보인다. 광고이니만큼 준호 엄마는 우리사회 표준적인 결혼이주여성을 가정했을 것이다. 광고에서 준호의 알림장을 읽어줘야 한다는 것은 준호가 최소한 초등학교 1학년 이상이라는 것을 뜻한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우리나이로 여덟 살이고, 아이의 엄마는 최소한 한국에 8년 이상을 살았을 것이고, 민지 어머니가 마음씨 좋은 이웃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선에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다.

광고를 보면 8년 이상 한국에 살았을 준호 엄마는 여전히 '한글이 서툴다.' 그래서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아이의 알림장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매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무능한 엄마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광고가 의도한 바는 다문화 가정도 우리의 이웃이니만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웃은 이웃의 도움이 없으면 아이를 대한민국의 꿈나무로 키울 수 없는 의존적 존재로 그려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다문화 사회를 부르짖는 우리사회의 다문화 정책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이율배반적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왜 준호엄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면 안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정말 결혼 이주여성들은 8년 이상의 세월 동안 대한민국에 살면서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할까? 누군가가 꼭 읽어줘야만 알림장을 이해할 정도로 무지할까? 좋다. 그렇다면 한글을 읽어주기보다는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내용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주말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의 모습
▲ 결혼이주여성 한국어 교실 주말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의 모습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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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수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생활고에 내몰리고 있어, 그 동안 한글을 배울 만한 여력이 없었다고 변명해서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시선 때문이다. 결혼이주여성은 꼭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시선 말이다. 그러한 시선은 오늘날 다문화 가정의 상태를 개선해 주기보다, 빈곤과 의존 상태를 오히려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준호 엄마에게 다가간 '민지 엄마'는 참 '좋은 이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준호는 민지 앞에서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엄마를 둔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다문화 정책은 우리 사회의 생채기를 더 드러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고 내용처럼 준호 엄마가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하고 8년 이상을 우리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맞다하면, 먼저 그 동안 준호 아빠는 무엇을 했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문화'를 논할 때 '인권이 이슈이어야 한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다문화 논의가 인권을 담보하지 못하고, 다문화 주체에 대한 소외와 하향식 교육과 동화주의적 관점을 강제하는 식으로 진행돼 왔다는 반성과 함께, 보여주기 위한 '다문화담론'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태그:#공익광고, #다문화가정,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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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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