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화성행궁으로 들어가는 신풍루
 화성행궁으로 들어가는 신풍루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조선행궁 건축의 백미 화성행궁을 찾아서

장안문을 들어서면서 옛날 정조대왕이 행차했던 대로를 따라 걸어간다. 성내를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커다란 종(鍾)이 보인다. 여민각이다. 맞은편으로 엄청나게 큰 광장이 펼쳐지고 광장 끝으로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을 지나고 작은 개천을 건너면 행궁으로 들어가는 신풍루(新豊樓)가 있다. 커다란 느티나무 세 그루가 근위병처럼 당당하게 서있다. 언제부터 서 있었을까? 서 있는 모습으로 보아 한 그루가 더 있어야 되는데….

신풍루 한쪽 문으로 들어선다. 신풍(新豊)이란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라고 하니 행궁을 만든 정조는 이곳에서 고향처럼 살고 싶었나보다. 담장 옆으로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마당으로 들어서니 오른쪽에는 엄청 큰 느티나무가 금줄을 두르고 있다. 나무는 대부분이 죽어 있어 살아있는 부분마저도 무척 힘들게 보인다. 신풍루를 양쪽으로 군사들이 주둔해 있었을 북군영과 남군영이 있고, 집사청, 서리청 등 각종 업무용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당을 지나 좌익문을 지나고, 박석이 깔린 중양문을 지나면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奉壽堂)이 온화하면서 넉넉한 모습으로 어서 오라고 반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봉수당 풍경
 봉수당 풍경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봉수당의 정조대왕 집무 모습
 봉수당의 정조대왕 집무 모습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봉수당은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가운데는 일월오악도를 두른 것으로 보아 왕이 집무를 보던 곳인가 보다. 오른쪽 방은 왕이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있으며, 왼쪽 방은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화성행궁에는 장금이가 살아있다

왼편으로 경룡관(景龍館)과 침전인 장락당(長樂堂)을 지나 복내당(福內堂)으로 들어선다. 복내당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많이 보았음직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고상궁이 되기 위해 음식 경합을 펼쳤던 곳이다. 예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의 풍경들이 그대로 떠오른다.

장금이가 살아있는 복내당
 장금이가 살아있는 복내당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장금이가 궁녀가 되기 위해 외웠던 내명부(內命婦) 품계도 그대로 걸려있다. 뒤로 돌아가니 우물이 보이며, 추운 겨울 장금이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던 풍경이 보인다. 드라마 <대장금>으로 인해 너무나 눈에 익어버린 풍경이다.

파괴한 자의 후손들은 다시 관광객이 되고

뒤로 나가니 내시와 상궁들의 거처가 나온다. 마루에 앉아 잠시 쉰다. 이웃나라 관광객들이 열심히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을 하고 있다. 가이드가 두루마리를 입는 환관을 설명하면서 우와기또, 코트또 하면서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글퍼진다.

과연 이웃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화성행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당신네 나라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행궁을 다 걷어내고 파괴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할까?

일제는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건물들을 민족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다 걷어내고 그 자리에 학교나 관공서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꾸준한 복원운동을 펼친 끝에 2003년 10월에 1단계 복원이 완료하였다.

미로한정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
 미로한정에서 내려다 본 화성행궁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행궁 뒤로 나오면 소나무 언덕으로 내포사(內舖舍)와 미로한정(未老閒亭)이 보인다. 안 올라 가볼 수가 없다. 내포사에는 밖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때 두드렸던 하얀 목어가 걸려있다. 행궁의 가장 높은 곳인 미로한정에 앉아 화성행궁을 내려다본다.

정조의 영정을 봉안한 화령전

정조가 4발의 화살을 쏘아 다 맞췄다는 기념으로 썼다는 득중정(得中亭) 현판을 바라보고, 행궁의 유일한 생존건물 낙남헌(落南軒)과 오랜 세월 행궁의 슬픈 역사만큼 힘들게 버티고 있는 향나무를 지나 화령전(華寧殿)으로 향한다.

화령전은 순조 원년(1801년) 세운 영전(影殿)으로, 정조대왕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모셨던 곳이라고 한다. 주 건물인 운한각(雲漢閣)은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당당함이 넘쳐난다.

화령전 운한각
 화령전 운한각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화령전에 봉안된 정조대왕 영정
 화령전에 봉안된 정조대왕 영정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운한각 안으로 군복을 입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정조대왕의 영정이 걸렸다. 조선의 가장 당당한 임금을 마주한다.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드라마가 역사는 아니겠지만 얼마 전에 방영한 <이산>에서의 정조의 고뇌가 자꾸만 마음을 아프게 한다. 조금만 더 냉정한 정치를 했었더라면….

화성행궁의 또 다른 볼거리... 무예24기 공연

행궁을 나오니 신풍루 앞에는 공연준비가 한창이다. 무예24기 공연을 한단다. 무예24기는 정조의 명을 받은 이덕무, 박제가와 무예의 달인 백동수가 1790년에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 무예를 말한다고 한다.

오늘 공연은 말을 타고 하는 무예를 제외한 18가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11시 정각이 되니 공연을 시작한다. 검, 창, 장창, 봉, 월도, 활 등을 이용하여 화려한 무술솜씨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모든 무술을 조합한 실전 공연은 정말 실감이 난다.

무예24기 공연 모습
 무예24기 공연 모습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무예24기 공연
 무예24기 공연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무예24기 공연
 무예24기 공연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관객이 많건 적건 간에 온몸을 던져 펼치는 공연에 부상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전통을 보존하고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화성행궁에는 정기적인 공연이 있습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에 무예24기 공연이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토요상설공연, 일요일 오후 2시에는 장용영수위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태그:#화성행궁, #화령전, #무예24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