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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슬픔과 탄식 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났다. 보수논객 연세대 김동길 교수조차 '세기의 장례식'이라고 평가할만큼 전국민적인 자발적 관심과 애도와 참여를 통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 최대의 장례식을 치루었다.

보수 논객 조갑제씨가 이러한 성대한 장례식에 분개하여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을 "배신자, 겁쟁이, 장사꾼"에 비유하며 이런 식으로 밀리기만 하고 제대로 좌경 깽판 폭도 세력을 몰아붙일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하야하는 것도 한 결단"이라고 극단적 비난을 서슴치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떨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결은 기회주의적 생존에 익숙한 보수세력들로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최악의 시나리오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그들은 수습책을 고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수습책은 식상하기는 하지만 '북핵 위기 증대'로 구체화되고 있는 듯 하다.

진보 세력들도 이번 사건으로 받은 충격이 매우 크다. 장례기간 중에는 국민 여론을 고려하여 정치적인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장례가 끝나자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적절한 정치적 카드로 사용하려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 세력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 자결' 책임 문제에 일정부분 부담을 지고 있다.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줄곧 고립되어 이명박 정부의 불순한 정치보복성 수사에 시달리고 있을 때 사실상 그대로 당하도록 방치해 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역풍에 주의하면서 최대의 공격을 가해야 하는 것이 현 진보진영의 고민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평소에 자주 갔던 봉화산 등산로 입구에 세워져 있는 '봉화산 산행 안내도'
▲ 봉화산 산행 안내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평소에 자주 갔던 봉화산 등산로 입구에 세워져 있는 '봉화산 산행 안내도'
ⓒ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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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랬듯이 기자도 5월 23일 오전에 청천벽력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였고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과연 자결일까? 혹시 시해 당하신 것은 아닐까?' 김구, 여운형, 장덕수, 장준하...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애석하게 떠나보낸 위대한 지도자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언론의 발표대로만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영원한 후회를 남길지도 모르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기에 실체적 진실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만사를 제껴 놓고 취재 장비를 챙겨 봉하 마을로 출발했다.

봉하는 과연 멀었다. 사건 당일인 5월 23일 18시 30분에 출발했는데 무려 5시간이 넘게 걸려 23시 45분 무렵에야 마을 진입로에 도착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추모행렬을 이루며 분향소로 향하고 있었다. 마을로 진입해 보려는 전투경찰 버스를 온몸으로 막느라 항의하며 몸싸움 하는 분노한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깨끗이 포장된 2차선 진입로를 10분 정도 열심히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봉하 마을 내부에 도착하였다. 길 우측에 노사모의 분향소가, 좌측에는 유족 측의 공식 분향소가 꾸려져 있었다. 유족 측의 분향소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헌화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본 기자도 30분여를 대열에 서서 기다렸다가 가까스로 분향을 마쳤다. 그런데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인지 기자의 눈에서 눈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분향을 마치고 새벽 1시경부터 마을 회관 앞 자갈밭에 앉아 몇몇 조문객들과 이번 사건에 대한 각자의 의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조문객 대부분은 언론과 유족측이 발표한대로 '자결'이 확실하다는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직하지 못한 그동안의 이력들을 볼 때, 경찰 측의 이상하리만치 신속한 자결 결론을 무조건 신뢰할 수만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기에, 갑론을박의 논쟁을 하다가 그만두고 새벽에 나름대로 직접 현장 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높은 봉우리가 봉화산의 사자바위, 좌측 둘째 봉우리가 부엉이 바위이다. 조문객들은 밤을 새워 촛불을 밝히며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였다
▲ 여명이 밝아오는 봉화마을 저 멀리 높은 봉우리가 봉화산의 사자바위, 좌측 둘째 봉우리가 부엉이 바위이다. 조문객들은 밤을 새워 촛불을 밝히며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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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가 넘어서자 어느덧 동쪽 봉화산 너머로 여명이 밝아왔다. 봉화산은 아직 통제중이었기 때문에 사건 현장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고 맞은편 산에서 사고 현장인 부엉이 바위를 바라보며 6시 전후에 촬영했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님도 이 시각에 산에 올랐을 것이라 생각이 되니 비감한 느낌이 다가왔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암벽이 '사자바위'이고, 가까운 암벽이 '부엉이 바위'이다. 노 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 봉하산 부엉이 바위와 사자바위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암벽이 '사자바위'이고, 가까운 암벽이 '부엉이 바위'이다. 노 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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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 대통령께서 한 달 넘게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마을 주민회 및 노사모 측에서는 촬영 기자들에 대한 극도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었다. 아침 6시경, 기자들에게 전원 마을을 떠난 후에 출입 비표를 재발급 받아 마을에 다시 들어오라는 경고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투신한 것이 맞다면 노대통령은 이곳에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촬영 시각은 24일 오전 6시 11분경으로 노대통령이 전날 머물던 시각과 거의 일치하므로 23일 사건 현장 분위기를 좀더 느껴볼 수 있다.
▲ 노대통령 투신 추정 장소 투신한 것이 맞다면 노대통령은 이곳에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촬영 시각은 24일 오전 6시 11분경으로 노대통령이 전날 머물던 시각과 거의 일치하므로 23일 사건 현장 분위기를 좀더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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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분위기에 눌려 서둘러 촬영을 마치고 내려와 조심 조심 눈치를 보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마을 밖으로 나가 마음 편하게 봉하 마을 논밭 풍경을 촬영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친히 거닐고 농사짓던 땅임을 알기에 친근하면서도 서러운 풍광으로 비쳐졌다.

한낮이 가까워 올수록 조문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조계사에서 찾아온 스님 1백여명이 노 전 대통령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금강경을 독경하여 조문객들의 마음을 더욱 숙연케 하였다.

상주로 서있는 여러 참여정부 인사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시민 전 의원은 유난히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고 절통해 하고 있었다. 유시민 의원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기자는 비로소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현실이 실감되었다. 다시 한번 분향소에 헌화하였고 그때 눈물이 흘러내렸다. 깊고 한 맺힌 '아이고' 통곡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유시민 의원님 힘내십시오!"라는 위로를 겨우 전한 후에 분향소를 나왔다.

낮부터 봉화산 출입 통제가 대부분 풀려 사건 현장 부근까지 접근할 수 있었으나 투신 자결한 구체적인 장소는 여전히 통제되었다. 이때다 싶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산책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며 사진 촬영을 하였다. 산 중턱쯤에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부엉이 바위 가는 길'과 '정토원, 사자바위 가는 길'이었다.

=== 저기 한 등산객이 지나가는 지점을 기준으로 좌측은 '부엉이 바위 가는 길' 우측은 '봉화산 정토원 가는 길'로 갈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측 길을 택했다.
▲ 운명의 갈림길 === 저기 한 등산객이 지나가는 지점을 기준으로 좌측은 '부엉이 바위 가는 길' 우측은 '봉화산 정토원 가는 길'로 갈라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측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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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 가는 길은 얼굴에 솜털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아 보이는 앳된 전경 하나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 저 언덕배기 정상이 바로 부엉이 바위 정상이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정토원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행적이 극명하게 서려있는 곳이다.
▲ 부엉이 바위로 가는 다리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 저 언덕배기 정상이 바로 부엉이 바위 정상이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정토원이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행적이 극명하게 서려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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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정토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분쯤 걸어가니 시골마을에 있을법 하지 않은 화려한 정토원이 과연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정토원측이 이번 사건의 주요 목격자 중의 하나였음을 까마득하게 몰랐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달랑 사진 한 장 찍고 계속해서 좀 더 위쪽에 있는 '사자 바위'에 올라갔다.

정토원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주 찾아와 부모의 위패에 분향하곤 하던 곳이었으며 대통령 본인의 위패도 이곳에 모셔지게 되었다. 사건당일 이곳에서의 경호원의 수상쩍은 행적이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 정토원 대웅전 전경 정토원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주 찾아와 부모의 위패에 분향하곤 하던 곳이었으며 대통령 본인의 위패도 이곳에 모셔지게 되었다. 사건당일 이곳에서의 경호원의 수상쩍은 행적이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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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바위는 과연 빼어난 주변 풍광을 여과 없이 시원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전망대였다. 그곳에서 지난 한달여간 각 언론사 기자들이 상주하며 망원 카메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를 비롯한 사생활을 샅샅이 촬영하고 있었다니 사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사자 바위에서 바라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범한 사저는 모 유력 보수 일간지가 '아방궁'이라고 비난하던 말이 얼마나 침소봉대의 악의적 허구였나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모 유력 보수 일간지는 고 장자연씨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소문난 그 일간지다.

봉화산 중턱의 정토원을 지나면 산정상에 '사자바위'가 있다. 사자바위는 봉화마을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좋은 위치이다. 이곳에 각종 언론인들이 상주하며 노무현 전대통령의 사생활을 감시, 촬영하기도 하였다.
▲ 사자바위에서 본 봉하마을 전경 봉화산 중턱의 정토원을 지나면 산정상에 '사자바위'가 있다. 사자바위는 봉화마을을 한 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좋은 위치이다. 이곳에 각종 언론인들이 상주하며 노무현 전대통령의 사생활을 감시, 촬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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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바위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등산로 근처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 부부가 보였다. 사건 현장인 부엉이 바위에 조금 더 접근해 보려고 시도하였지만 경찰의 완강한 통제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마지막으로 들렀다던 약수터도 통제되어 출입이 불가능하여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였다.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부엉이 바위 전경. 노무현 전대통령은 바위 정상 중앙에서 약간 우측 부분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락지점에는 날카로운 낙석들이 간혹 바닥에 흩어져 있어서 지면 충돌 순간을 상상하는 것이 괴로왔다.
▲ 부엉이 바위 전경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본 부엉이 바위 전경. 노무현 전대통령은 바위 정상 중앙에서 약간 우측 부분에서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락지점에는 날카로운 낙석들이 간혹 바닥에 흩어져 있어서 지면 충돌 순간을 상상하는 것이 괴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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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에서 여러 시간을 소모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출발 시각이 다 되어 아쉬움을 남겨두고 급히 마을을 벗어나 몇 킬로미터를 뛰어갔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웬일인지 그 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장대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미처 차량에 탑승하지 못했거나 탑승 순서를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문객들은 꼼짝없이 온몸이 흠뻑 비에 젖어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불평하는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고인의 죽음을 하늘도 애도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며 처연하게 그 비를 맞았다.

하늘도 장대같은 소낙비를 내려 국민들과 함께 울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노무현 전대통령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그에게 비극을 초래한 원흉들을 또한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 봉하마을의 소낙비 하늘도 장대같은 소낙비를 내려 국민들과 함께 울었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은 노무현 전대통령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그에게 비극을 초래한 원흉들을 또한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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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젖고 비에 젖은 조문객들을 뒤로 하며 버스는 봉하 마을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올라오는 버스 속에서 기자는 다시한번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또한 그의 서거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추론해 보았다. 하지만 워낙 국가적인 규모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라, 정보력이 제한된 한 개인으로서의 취재력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그의 죽음이 경찰과 언론이 밝힌대로 '자결'이었는지, 아니면 일부 네티즌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암살'이었는지 기자는 현재 실체적 진실을 100%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는 '이명박 정부와 정치 검찰과 무책임한 보수 언론'이라는 것이며 그 책임의 정점에는 대한민국의 현직 국가원수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명박이라는 이름에 '정치보복에 의한 살인자'라는 오명을 추가하여 기록하리라.

▲ 봉화산 사자바위 정상에서의 조망 봉화산 사자 바위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전경과 주변 경관이다. 고인의 평생의 삶의 체취가 서린 이곳에서 역사와 인생을 다시한번 돌아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모쪼록 이번 비극의 실체적 진실을 전국민이 올바로 알 수 있도록 수사 당국은 역사 앞에 책임진다는 자세로 정직하고 합당하게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해야 할 것이다.
ⓒ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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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당신은 바보...

      원수 갚으라는 말대신
      모든 것이 다 운명이라며 떠난...

      가족과 지인들의 고통을
      혼자서만 살뜰이 지고 떠난...

      죄없이 고초당하면서도
      변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쓰라리고 힘들어도
      기대어 울 어깨하나 갖지 못했던...

      마지막 순간에
      담배 한 개피도 후련히 못 피우고 간...

      당신은...

      바보 노무현입니다.

2009. 5.24. 봉하 마을을 떠나오며
이상호 드림.

덧붙이는 글 | 부엉이 바위에서 자결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바위 구조와 경사각도상으로 볼 때 떨어지더라도 한번에 바닥까지 떨어지기가 힘들고 여러 단계 리바운딩을 하면서 떨어지게 되는 구조라서 죽는 순간이 많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선의 선택을 자발적으로 하셨다고 믿고 있음에도 역사를 위하여 그의 죽음의 과학적 실체적 진실을 한치의 의혹도 없이 또한 알고 싶은 바람입니다. 경찰은 더이상의 실망스러운 부패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철저하고 엄정히 조사하고 정리하여 국민적 염원을 풀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경찰에게 이럴진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은 더더구나 당연한 요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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