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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올해 들어 2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원. 그러나 내년엔 이마저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2010년도 최저임금액이 이번 달에 결정된다고 하는데, 노동계는 인상안인 5150원을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경제악화를 이유로 3770원으로 삭감하자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경제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전북 전주의 A 아파트. 이곳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기문(가명, 61)씨는 요즘 심기가 불편하다. 이달 말 국회에 상정될 최저임금제 개정안 때문이다. 최저임금제 법안 개정을 앞두고 노동계에서는 5150원을 주장하고 있고, 경영계에서는 3770원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최저임금은 4000원이다. 기자가 '최저임금제 개정안' 문제를 꺼내자 박씨는 '끙' 하고 불편한 심리를 드러냈다. 그 안에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박씨의 월 소득은 90만원이 조금 넘는다. 여기에 각종 세금과 보험료를 떼고 나면 실제 수령액은 90만원이 조금 못 된다. 박씨는 이 아파트에서 근무한 지 8년째다(다른 아파트에서 일한 것까지 포함하면 10년째다). 시간당으로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4천원 수준을 못 넘을 거라고 생각한다.

막노동보다 더한 10년차 '관리인'의 하루

아파트 경비원이 쓰레기장을 정리하고 있다.
▲ 아파트 경비원 아파트 경비원이 쓰레기장을 정리하고 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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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전한 하루일과는 이렇다.

근무가 있는 날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출근차량 교통정리로 하루 일을 시작한다. 교통정리가 끝난 뒤에는 한 시간 반 동안 구역 내 청소와 합동청소를 한다. '경비원'이 아닌 '관리인'이기 때문에 아파트 내 청소나 공사 등도 박씨의 몫이다(참고로, 경비원은 순찰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박씨는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경비 아저씨으로 불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관리인이다. 그러나 그를 관리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에서 준비해온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난 뒤 오후에는 보도블록 공사와 아파트 내 정원수 가지치기를 한다. 정원수 작업만으로도 월 90만 원은 너끈히 받을 것이라고 박씨는 얘기한다. 다음 주엔 아파트 동마다 복도물청소와 옥상물탱크 청소, 지하 저수로 청소가 계획돼 있다. 아파트 주민의 택배나 우편물 보관도 박씨의 임무다. 700여 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에서 매일 30~40건 정도의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고 관리해준다.

저녁 시간에는 순찰업무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칠 무렵 동마다 구비되어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모두 수거한다. 밤 9시부터는 교대자 4명이 밤샘 순찰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7시 퇴근. 이것이 박씨의 '1박 2일' 업무 스케줄이다.

이 아파트에는 박씨 외에 7명의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다. 박씨는 이 중에서도 고참 축에 속한다.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에서 후반이다. 더 나이 들면 막노동보다 더 강도 높은 이 업무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씨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은 모두 한 집에서 경제적 주 수입원의 위치에 있다. 50대 후반이라면 한창 돈 들어갈 때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중고등학생 자녀도 있고 목돈 들어가는 대학생도 있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자녀도 있다. 나이 든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그들에게 월 90만 원의 수입은 너무나 빠듯하다.

물가는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고 있고, 살림은 점점 빠듯해지고 있다. 몸도 이젠 예전같지 않아서 하루하루 근무하기가 벅차다. 그런 와중에 최저임금을 인하하겠다는 경영계의 이야기에 박씨는 기가 찰 뿐이다. 지금까지 아끼고 쪼개고 절약하며 살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아끼고 살라는 말인지. 한마디로 박씨에게는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부질없는 희망 품기, 이젠 지친다

도봉구 창동 아파트 단지 전경
 도봉구 창동 아파트 단지 전경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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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씨를 더 암담하게 만드는 것은 최저임금 감액 그 자체는 아니다. 법안 따로, 현실 따로 가는 '따로국밥'식의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박씨는 강조한다. 박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절망케 하는 것은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지프스와 같은 현실이다.

"사실 최저임금을 올릴 것인가, 내릴 것인가 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기대도 않는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뭐하나. 식사 시간이나 수면 시간, 쉬는 시간을 더 길게 책정해서 그만큼 빼버리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받는 금액은 똑같다. 아니 더 줄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런 법을 뭐하러 만드나. 자기들만의 탁상공론 아닌가. 문제는 이를 현실에서 적용하려는 의지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지 어언 10년. 그동안 박씨는 최저임금제 문제나 노동법 문제가 이야기될 때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부질없는 희망도 걸어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분노하고 절망했다. 500원이 오르면 식사시간을 30분 더 책정하여 임금을 깎았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오롯이 식사를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차피 일하는 건 마찬가지다. 윗돌 빼어 아래에 괴는 식이다.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어려운 경기를 감안해서 다 같이 좀 절약해보자는 취지는 잘 안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만 허리띠 졸라매게 하는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할 수 있나. 그래도 요새 같은 때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어 묵묵히 다니고는 있지만 정말 분통이 터진다." 

박씨는 최저임금제고 뭐고 다 소용없는 소리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장갑을 끼고 일터로 향했다. 박씨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최저임금을 깎는다는 것은 정말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을 가지고 얼마를 깎네 마네하면서 옥신각신하는 것이 우습다. 그렇게 단돈 몇 푼이라도 올리면 뭐하나. 현실은 이와 너무 딴판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엔 세상에 편법이 너무 많다."


태그:#최저임금제 개정안, #아파트 경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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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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