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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모임 이랑은 어려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모임이다. 새롭게 꾸려진 목포시민연대 여성위원회의 용해동 소모임으로 만났다. '이랑'은 서로에게 언덕이 된다는 고유명사다. 이랑의 뜻답게 구성원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정을 쌓아온 이웃이다. 일상에서 만난 이들은 매일 아침 산행을 나서며 쉴 새 없는 수다로 활동하고 있다.

용해동 포미아파트를 중심으로 자연스레 꾸려진 모임은 아이를 기르는 조행순, 김지영, 최주희, 김은미, 송수진씨 등이 이랑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다 떠는 작은 모임에서 수다만 떨기보다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뜻을 모아 꾸려진 이랑은 아이들 교육, 환경, 먹을거리에 대한 것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 알뜰장터, 독서토론을 번갈아가며 진행하고 있다. "내 아이 중심에서 우리 아이로 기르는 교육으로 폭을 넓혀가며 세상을 대하는 폭도 넓어졌다"고 조행순 이랑 대표는 말한다.

텃밭을 가꾸고 세상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디아코니아 노인 요양원에  봉사하러 가는 날, 목포21이 동행 취재했다.

디아코니아에서 배운 것

디아코니아 노인 요양원은 개신교 수녀원에서 폐결핵 환자들을 돌보다 이들이 노후를 겪으면서 노인요양원으로 거듭났다.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던 노인들도 이곳에 와서 활기를 찾고 건강을 회복한다고 전한다.

언님이 내려준 첫 번째 숙제는 청소다.
 언님이 내려준 첫 번째 숙제는 청소다.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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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아이들과 달리 씻겨도 냄새가 난다. 그런데 디아코니아에 오면 냄새가 안난다고 한다. 그것은 하루종일 어르신 꽁무니만 바라보며 기저귀도 갈고 씻겨드리는 고된 노동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에게 남은 것은 자존심과 고집뿐이라 최대한 존중해가며 보조를 맞춰야 한다." 언님(개신교 수녀)의 이야기에 다들 긴장한 표정이다.

디아코니아요양원의 요양사가 노인을 안고 마사지를 하며 설명하고 있다. 이날 이랑 회원들은 디아코니아에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웠다.
 디아코니아요양원의 요양사가 노인을 안고 마사지를 하며 설명하고 있다. 이날 이랑 회원들은 디아코니아에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웠다.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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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침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생일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청소를 마치고 소박한 생일상 앞으로 모시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아무말 없이 따라나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안아 들어 휠체어에 앉혀야 하는 이도 있다. 손주 재롱보러 가자는 말에도 자리서 꼼짝도 않아 진땀을 빼기도 한다.

디아코니아 가족들은 낯선이들의 방문에도 반갑게 맞이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낸다.
 디아코니아 가족들은 낯선이들의 방문에도 반갑게 맞이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낸다.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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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초를 부는 표정은 어린아이 못지 않다.
 생일 초를 부는 표정은 어린아이 못지 않다.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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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상이 차려진 거실로 이끌기 위해 이랑 회원들이 방방을 돌았다. 제일 끝방 할머니는 방을 같이 쓰는 이가 오늘 생일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잠시 뒤 그 방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생일선물이라며 준 꼬깃꼬깃한 만 원 한 장을 두고 받느니 안 받느니 손이 오간다.  "저번에도 언니가 돈 줬잖우"하며 뿌리치는 할머니에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제"하며 기어이 내민다. 같은 방을 쓰는 두 노인은 함께 살면서 자매가 됐다.

YMCA어린이집 원생의 포옹에 마치 손주를 안아본 듯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YMCA어린이집 원생의 포옹에 마치 손주를 안아본 듯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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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에서 생일맞이 프로그램을 준비해 왔지만 한 달 만에 맞은 잔치가 끝나자 서운해하는 기색이다.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끝난 빈 자리를 이랑 회원들이 채웠다.

아이들의 퇴장에 이어 시민연대 김행미여성위원장이 구성진 가락을 뽑아냈다.
 아이들의 퇴장에 이어 시민연대 김행미여성위원장이 구성진 가락을 뽑아냈다.
ⓒ 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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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코니아를 나서는 길에 자매가 된 두 노인의 이야기며 디아코니아에서 만난 '사람'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에 기저귀 얘기가 나왔을 때 겁부터 나더라"면서도 "봉사는 베푸는 게 아니라 배우는 자리"라고 말한다. "잠깐이나마 손을 잡는데 반응이 없어도 온기가 전해지더라"는 말로 오늘 배운 '사람살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이크로 정치, 그리고 아마추어 정치인들

이랑은 공동체다. 서로에게 언덕이 된다는 뜻을 가진 한 이랑은 공동체일 것이다.  모임을 함께 한 희망누리공부방 김애리 시설장은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를 보며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정치 형태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나'가 만들고 바꾸는 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일본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생활정치와 참여정치를 기치로 하고 있다. 생활 정치는 사회에, 지역에 생활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권을 실현하는 정치이다. 이들은 시민들을 소외하는 기존 정치판에서 자신들의 대리인들 만들었다. '관료주의', '이기주의'에 물든 일본 정치판을 개혁한 것이다.

'이랑'을 비롯한 목포시민연대 역시 '아마추어 정치', '가장 작은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생활모임으로 만난 이들이 자녀 교육에 대해, 먹을거리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작은 변화들을 이끌고 있다.

김애리씨는 "사회에 관심이 없던 이들이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작은 정치가 아니겠나"고 이랑 활동을 평가했다. '이랑'을 함께하면서 구성원들에게도 변화가 일고 있다.  보육 때문에 10년 동안 아이들 없이 먼 길 나서 본 적 없던 이들이 완도 여행을 꾸리고 있다. 그녀들이 세상밖으로 한발짝 뗀 것이라면 과대 평가일까? 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 이랑에서 가장 작은 정치, 아마추어 정치를 만났다.

"이랑은 목포 시민이라면 비혼과 기혼을 가리지 않고 환영한다"고 한다. 생활의 활력소가 필요하다면 이랑의 문을 두드려도 좋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목포2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성모임, #이랑,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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