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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신문시장도 이미 대형마트나 대기업의 편의점이 장악해버린 유통시장처럼 서울에 본사를 둔 '지점'이 장악하게 될 것이고, 지역민이 낸 세금이 그들 신문의 광고료로 지불돼 소수 인력의 인건비를 뺀 나머지 이익금은 모두 서울 본사로 납입될 것이다."

 

20여년의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오면서 지역신문 기자들의 고뇌와 삶을 담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란 책을 쓴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부장이 미디어법 통과를 지켜보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한 내용이다.

 

지난 6일 <경남도민일보>에 쓴 그의 기사는 제목에서부터 암운이 드리웠다. '언론악법 시행 초읽기 지역언론사 여파는…'이란 주제목과 '서울 본사 둔 '경남조선일보'가 장악할 수도'란 부제목에 내포된 함의가 무겁다. 새 미디어법 시행은 곧 지역신문의 고사와 등치되는 개념으로 해석된다.  그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이 '지역을 죽이는 법'이라고 기사에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미디어법 통과 후 지역신문업계는 또 다른 고민거기리가 생겼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과정에서 숱한 논란이 돼 왔던 무가지와 무상경품 제공을 금지한 신문법 10조 2항의 존치에도 불구하고 신문고시가 폐지될 위기에 처한 때문이다.

 

지역신문들, 12일 공정위 전원회의에 촉각 곤두세우는 이유는?

 

 

그동안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여기며 정부와 한나라당의 신문고시 폐지방안에 강한 반발을 보이며 유례없는 지면파업까지 시도했던 지역신문들이다. 그런데 한치 앞의 운명을 가늠하기 어려운 신문고시 향배에 다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12일 전원회의를 열어 신문고시의 폐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폐지될 경우 전 지역의 거센 저항은 불 보듯하다. 후폭풍이 동시에 몰아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행정규칙 일몰제에 따라 시행 후 5년 동안 개정하지 않은 규칙들을 일괄 폐지한 후 재고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신문고시도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기구한 신문고시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공식명칭은 '신문업에 있어서의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으로 1996년 신문업계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막기 위해 제정된 규제조치다. 각 신문사들이 자사 신문의 독자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경품류를 제공하거나 무가지를 끼워 넣거나 강제투입을 하는 등 극심한 과당 경쟁행위를 막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신문고시가 시행되면서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이 수그러드는 듯했으나, 2년 후인 1998년 12월 규제개혁위원회가 신문고시를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폐지하자, 다시 각 신문사 간에 판매경쟁이 격화되었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3개 신문사 독과점 형태는 더욱 심화됐다. 극소수 신문사를 제외한 지방신문들이 도산위기에 처하게 되자 언론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신문고시를 부활할 것을 잇따라 촉구했고, 2001년 7월 공정위는 신문고시를 다시 시행했다.

 

신문판촉의 과당경쟁을 벌이던 지국 사이에 살인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혼탁했던 신문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재도입된 것이다. 무가지와 경품 제공을 연간 구독료의 20% 이내로 제한하고 일주일 이상 강제투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최근 조사에선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조·중·동 지국의 거의 대부분이 신문고시를 위반해 왔음이 확인됐다.

 

"신문고시마저 없앤다면 지역신문들은 붕괴 불 보듯"

 

이런 상황에서 신문고시마저 없앤다면 신문시장의 혼탁상이 심해질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는 볼멘 소리가 높다. 지역신문들은 "신문고시 폐지는 곧 신문시장에서 불공정한 불법· 탈법 거래를 부추기는 최악의 선택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의 룰도 허물어버림으로써 서울의 몇몇 부자신문들만 살아남는 심각한 여론 독과점 현상을 초래하게 할 것"이라며 신문고시 폐지에 강한 반발을 보여왔다.

 

"신문고시는 폐지가 아니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지역신문들이다. 그런 그들의 심기를 공정위가 건드린 것은 지난 6월 23일. 공정위는 "정부 방침에 따라 5년 이상 된 규제는 8월 23일 일괄 폐지키로 했으며 그 안에 신문고시가 포함돼 있다"고 밝히면서 파문이 불거졌다.

 

이틀 후인 25일 창원에서 열린 한국지방신문협회(회장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 정기총회에서 각 지역 주요 일간지 사장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문법 제10조 2항과 3항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관련 부분을 삭제할 경우 지방신문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이에 강력 대처키로 결의했다. 무가지, 무상경품제공 등 불공정 행위 규제를 반드시 지켜나가기로 했다.

 

이들 신문사들은 총회 이후 일반기사와 사설에서 신문고시 폐지방침에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전국지방신문협의회 소속 회원사들도 동참했다. "끝내 몇몇 독과점 매체를 위해 대한민국 모든 지방신문의 기반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한다면 국민과 함께 끝까지 대처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지면파업을 하기도 했다.

 

이들 지역신문은 지난 7월 24일과 25일 공동기획기사에서 신문고시 존치와 지역발전기금 지원 연장을 거듭 촉구했다. "신문법 못지않게 중요한 신문고시는 8월 23일 '일몰제' 규정에 의해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며 "지방언론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신문고시 폐지는 절대 안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위는 12일 전원회의를 열어 신문고시를 포함한 98개의 일몰이 완료되는 훈령, 예규 등에 대한 일괄 정비를 결정할 예정이다. 신임 정호열 공정위원장의 첫 작품에 지역신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한겨레>, "공정위마저 조·중·동의 하수인이 돼선 안 된다"

 

 

이러한 지역신문들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듯 <한겨레신문>은 11일 사설에서 포문을 대신 열어 주었다. '신문고시 폐지 안 될 일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은 공정위와 조·중·동을 겨냥해 일갈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조·중·동의 신문시장 질서 교란행위가 훨씬 더 심해졌음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자전거일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이들 신문들은 최근엔 길거리에서 아예 백화점 상품권을 흔들며 내놓고 호객행위를 한다. 상품권 대신 현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금전적 유인에 더해 최소 1년에서 3년까지 무료구독까지 따른다. 공정위의 신문고시 위반 신고 접수 건수도 2005년 197건에서 지난해에는 585건으로 대폭 늘었다."

 

사설은 이어 "상황이 이런데도 공정위의 단속은 오히려 유명무실해졌다"며 "직권조사는 포기상태고 신고포상제만 겨우 유지되는 정도다. 정권과 유착한 신문에 대한 봐주기 행정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고 공정위를 비판했다.

 

"다양한 신문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는 전제가 된다. 그러므로 자본에 의한 여론의 독과점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민주정부의 의무다"라고 지적한 사설은 "따라서 의무의 최소치를 규정한 신문고시를 폐지해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사설은 "공정위마저 조·중·동의 하수인이 돼선 안 된다"는 통렬한 비판을 결론으로 삼았다. 과연 신문고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 결과에 따라 지역신문들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지방신문협회, 청와대 등에 "신문고시 존치" 공문

 

한편 한국지방신문협회(강원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제주일보 등 9개사)는 11일 청와대,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공정거래위원회 등 7곳에 신문고시 존치를 건의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지역신문들은 공문을 통해 "신문업 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신문고시가 일몰제 규정에 의해 이달 23일자로 폐기 위기에 있다"면서 "메이저 신문사의 불공정 거래행위가 여전한 상황에서 과열경쟁과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신문고시의 존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최근 국회를 통과한 신문법에서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조항이 존속되었다"면서 "언론시장의 독과점 방지와 지역여론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신문고시가 존치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지난달 22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갯벌타워에서 가진 제25차 정기총회에서도 신문고시가 존치되도록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하는 한편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미디어법이 지역언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찾기로 한 바 있다.


태그:#신문고시,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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