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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사장님, (100분토론) 11시 10분 고정 편성 부탁드립니다."

 

떠나는 자의 소박한(?) 바람에 패널도, 시민논객도, 5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도 맘껏 웃었다.

 

19일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진행한 마지막 <100분토론>은 날선 공방 대신 넉넉한 웃음으로 가득찼다. 이날 밤 11시 15분부터 130여 분간 계속된 '고별방송'에서 손 교수는 토론 진행자로서의 냉철함을 벗고 그동안 숨겨왔던 유머감각을 맘껏 선보였다.

 

냉철한 손석희, 유머감각도 만만치 않네

 

그는 이날 대표논객으로 자리를 함께한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토론 중간 중간 스스럼없이 농담을 던지며 마지막 방송을 웃음꽃으로 장식했다.

 

멍석은 대표논객으로 나온 유시민 전 장관이 깔았다. 방송 막바지 유 전 장관은 "<100분토론> 편성시간이 지금은 자정 넘어 12시 20분까지 밀렸는데 시청자들은 다음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며 "공영방송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토론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바로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해도 내가 진행할 때는 이런 불만은 말도 못했다"고 토로하자 좌중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곧 이어 옆에 있던 송영길 최고위원도 "떠나면서 한 말씀 하라"고 거들자 손석희 교수는 "엄기영 사장님, 11시 10분으로 고정 편성 부탁드린다"고 받아쳐 스튜디오는 다시 한 번 웃음 소리로 가득찼다.

 

손석희 교수의 '동안' 비결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오갔다. 이날 영상 인터뷰를 통해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손 교수와 나는 1956년생 동갑인데 더 젊어 보이는 비결이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손 교수는 "박 변호사 뿐 아니라 여기 나와 있는 노회찬 대표도 나와 동갑"이라고 밝혀 방청석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어 "굳이 답을 말씀 드리자면 내가 동안이 아니라 박 변호사가 노안"이라고 겸손 아닌 겸손을 드러냈다.

 

유시민 "손 교수, 출연할 때마다 '시청률 책임지라'고 압력"

 

대표논객들은 과거 <100분토론>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기억들도 꺼내놨다. "나 때문에 서운한 적은 없었느냐"는 손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노회찬 대표는 "내가 소수정당 소속이다 보니까 큰 정당에 비해 발언횟수도 적게 주고 발언이 길지 않았는데 중간에 자르는 것 같았다"며 "개인적인 소원으로는 내가 사회를 보고 손 교수를 토론자로 앉혀 발언도 자르고 가차없이 진행해보고 싶었다(웃음)"고 밝혔다.

 

이 오해(?)에 대한 답은 전임 진행자였던 유시민 전 장관이 대신했다. 유 전 장관은 "토론 진행 경험상 원래 패널들은 자기가 가장 오래 이야기 해놓고 조금 했다는 피해망상이 있다"고 지적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유 전 장관은 섭섭함 아닌 섭섭함을 소개했다. 그는 "손 교수가 내 후임인데도 전임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웃음)"며 "여당 국회의원 시절에는 이미지 관리라는 것도 필요했는데 손 교수가 내가 나올 때 마다 '오늘 시청률을 책임지라'고 압력을 가해 본의 아니게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그 때문에 상당히 피해를 많이 봤다"며 "그랬으면 밥이라도 한 번 사야하는데 아직 밥도 한 번 안샀다(웃음)"고 말했다. 손 교수는 "곧 사겠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라도 살 수 있다"고 '공약'했다.

 

나경원 의원도 "평소 메모를 하지 않으면 토론이 안되는 습관이 있는데 <100분토론>에 처음 나왔을 때 가져온 볼펜이 안 나와 당황스러웠다"며 "카메라가 안 비칠 때 손 교수에게 볼펜을 빌려 위기를 넘겼다"고 회상했다. 손 교수가 "결국 그날 나는 볼펜 없이 토론을 진행했다"고 답해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지만 토론 프로그램다운 날선 공방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날 5명의 대표논객은 ▲민주주의와 소통 ▲경제성장과 복지 ▲다양성과 인권 등의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정희는 고문하고 이명박은 밥줄 끊어"... "근거 없어"

 

먼저 야당에서는 용산참사, 미디어법, 4대강 사업 등 구체적인 사건과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민주주의 후퇴와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 상황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용산 참사 희생자들은 아직도 냉동실에 시신이 갇혀있고, 그 가족들은 감옥에, 그들의 목소리는 경찰 차벽에 갇혀있다"며 "마찬가지로 국회에서도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을 재논의하라고 했음에도 그 목소리가 수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은 외국정상들 만날 때는 활짝 웃고 표정이 너무 좋은데 국민들을 만날 때는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며 "자신의 진의를 국민들이 왜곡하고 있다는 서운함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 소통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가장 나쁜 정치가 국민을 형벌로 다스리고 국민과 다투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 둘을 다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자꾸 법치를 들먹이면 국민들이 겁을 먹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이 말 안 들으면 가두고 고문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밥줄을 끊어놓는다"며 "지금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정부 기관의 간섭 때문에 민간기업 취직도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형준 정무수석은 "이 대통령의 진면목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때려잡는 것이 법치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은 선동이자 밥줄을 끊는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유 의원은 "굳이 이 자리에서 실명을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제 주위의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재반박했다.

 

나경원 의원은 "대한민국 국가브랜드가 33위에 머무는 것은 사회가 폭력적이고 정치사회적으로 불안하다는 이유 때문"이라며 "과도한 공권력 투입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하지만 법질서를 지키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성숙한 국가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회찬 어록 한 개 추가... "4대강과 부자감세, 신종플루로 치면 확진 상태"

 

그동안 <100분토론>에 23차례 나와 최다 출연 기록을 가지고 있는 노회찬 대표는 이날 '어록'을 또 하나 추가했다.

 

노 대표는 정부의 경제․복지정책을 비판하면서 "4대강 사업과 부자 감세는 정말 심각한 문제다, 신종플루로 치면 확진 판정 상태"라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살릴 것인지 4대강을 살릴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박형준 수석은 "4대강을 살려야 국민도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다"며 "내년 4대강 예산은 3조5000억 원으로 이것 때문에 복지 예산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토론 결과 한 가지 소득도 있었다. 용산참사의 조속한 해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도심 재개발 방식을 제도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제2의 용산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며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연말까지는 해결 됐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박형준 수석은 "현재 정부가 나름의 원칙 내에서 논의 중"이라며 "우리사회의 한 비극이기 때문에 빨리 해결해야할 필요가 있다,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행복한 사회자, 무거운 짐 이제 내려놓게 됐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토론을 끝마칠 순간이 다가왔다. 이날 방송을 끝으로 손석희 교수는 지난 2002년 1월부터 7년 11개월째 지켜오던 <100분토론>사회자 자리를 권재홍 MBC 기자에게 물려주게 됐다. 손 교수는 미리 준비해 온 고별사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8년 가까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게 됐다. 두 분의 훌륭한 전임 사회자에 비해 나는 무척 운이 좋고 행복한 사회자였다. 오래 했기 때문이다. 첨예한 논쟁 현장에서 8년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 준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사회자라는 짐은 내려놓지만 내 마음과 머리속에서 토론이라는 단어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토론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학습하는 기본적인 장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장에서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기쁜 마음으로 간직하겠다. 여러분께 넘치도록 받은 관심과 사랑 끝까지 잊지 않고 지키겠다."

 

이날 <100분토론>이 진행된 여의도 MBC 공개홀은 방송시작 2시간 전부터 전국각지에서 온 방청객들로 가득 찼다. '손석희 팬클럽' 소속 회원들은 물론 역대 시민 논객들과 대학생 등 500여 명은 방송이 끝나고 손 교수가 인사를 하러 다가오자 '손석희'를 연호하기도 했다.

 

특히 '손석희 팬클럽' 소속 회원들은 미리 준비한 장미꽃 100송이와 감사패를 전달했고 MBC 아나운서 후배들도 꽃다발과 선물을 전했다. 손 교수는 방청객들과 일일이 기념 사진 촬영도 했다.

 

다음 손석희 팬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미영씨는 "손석희 교수가 <100분토론> 진행자에서 물러난다는 게 너무 아쉽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태그:#손석희 , #100분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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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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