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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할 일을 꼼꼼이 챙깁니다. 
웃는 일은 보험인으로 기본입니다.
▲ 오늘 할 일을 챙기는 장영주님 오늘 할 일을 꼼꼼이 챙깁니다. 웃는 일은 보험인으로 기본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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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누구 소개해 줄만한 분 없나요?"

취재 할만한 사람을 찾던중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아내는 서스럼없이 한사람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평소 조심성 많은 아내인지라 의외였습니다. 아내가 소개해준 분은 아이들 보험을 들고있는 보험설계사 여성분이었습니다.

"울산 시청 지나면 대한생명 건물이 있어요. 거기 3층으로 가봐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오전에는 회의와 모임이 있어 바쁘니 오후 2시경 찾아가면 될거라 했습니다.

보험설계사. 저도 한때 보험설계사 일을 잠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화재 보험을 했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보험이란게 예기치 못한 사고나 질병에 대해 갑자기 큰 돈이 들어 갈수도 있는 일이라서 미리 조금씩 돈을 모아 예비하는 일입니다. 보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공부해 보면서 취지가 좋고 의미가 있는거 같아 시작했었으나 제 취향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 몇 개월 만에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고와 질병에 대한 불안정한 미래를 대비하자고 당당하게 말을 할수 있어야 하는데 남의집 머슴살이만 하다가 뭔가를 개척해야 하는게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입사한 동기가 오전에 출근하고 저녁 무렵 들어와 소장에게 한건씩 계약해 온걸 보고할때 소심한 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험설계사 일을 그만두었고 다시 직장을 얻어 다녔으며 그것이 적성에 맞았습니다.

저는 보험 잘하시는 분들을 참 대단한 분들이라 여깁니다. 아내가 소개하는 장영주라는 분도 참 대단한 여성인거 같았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시작하여 그 시련을 극복하고 지금은 전문 여성 직업인으로 자리 잡았고 보람과 긍지속에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가 소개한 그분이 어떤 분인지 만나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2010년 3월 30일 화요일 오후 2시 약속 장소로 가보았습니다. 오전엔 출근 모임을 가지고 오후엔 영업하러 다녀야 하는데 저와 만날 약속을 잡아 다른 약속 건은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반갑게 맞이한 그분은 대화가 가능한 조용한 사무실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이미지를 풍기는 여성이었습니다.

-간단히 소개 좀 해주실래요?

"제 이름은 장영주라고 하구요. 나이는 올해 38살입니다. 2남 1녀 중 장녀로 충청도 금산에서 출생했어요. 부모님이 인삼 농사를 지으셨는데 망하고 4살 무렵 울산으로 이사 내려 오셨지요. 그때부터 계속 울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결혼은 언제 한거예요?

"친구 소개로 만나 1998년 6월 14일  26살때 결혼 했어요. 저보다 2살 위구요. 남편은 증권회사 다녔고 저는 현대자동차 2차 하청업체 경리로 6년 다닐때였죠. 그때나 지금이나 제 생각은 변함 없는데요. 돈은 또 벌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하필 결혼 당시 아이엠에프가 터져 남편의 직장생활이 무지하게 힘들었던 때였어요. 증권이 모두 깡통 계좌가 되어버려 하루 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되어버린 상태였어요. 그래서 우린 보증금 2백에 월 20만원 하는 달셋방에 신혼집을 차렸어요"

장영주님은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맏 딸로 태어나 두 동생을 키우다시피 하며 자랐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정도로 똘망똘망한 아이 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힘들게 자라서 그런가 웬만한 시련 같은 건 이겨 낼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 온거 같아요. 제가 성실하고 부지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사람이 재산이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자랐지요"

지난 2000년 3월 아는 후배의 권유로 보험 설계사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하여 가족 모두가 반대할 뿐 밀어 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몰래몰래 다니며 교육도 받고 영업활동도 해나갔다고 합니다.

"남편 몰래 두 달 정도 다녔어요. 나중엔 남편도 눈 감아 주더라구요. 11개월 된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기 업고 출근하여 일터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 맡기고 영업일을 했어요. 아직 아기니까 엄마 떨어지기 싫어 울며불며 매달려요. 그때마다 같이 부둥켜 안고 한참 울다가 일 나가곤 했어요. 그 땐 많이 힘들었지만 제 성격이 또 한번 시작하면 포기 않는 성격이라 마음이 아파도 참아가며 이를 악물고 다녔지요"

-보험 일 처음 할 때 어땠어요?

"오직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교육 받은 대로 했어요. 모르는 건 아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상담도 하면서 영업활동을 지속 했습니다. 저는 자신에 관한한 주도면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열심히 다녔더니 건 수도 올리게 되어 첫 월급도 받게 되었지요"

-첫 월급 받은 기분이 어떻던가요?

"첫 월급 받으니 직장 경리 볼때와는 또다르더라구요. 기쁨도 두배인데 반대로 두려움도 두배가 되더라구요. 그런 기분이 생전처음 들다보니 참 야릇하기도 했어요. 다음에 또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이 크게 올라 오더라구요. 그래서 첫 월급을 은행에 그대로 넣어두고 몇개월 동안 한 푼도 안썼어요. 앞이 막막해서 도저히 쓸수가 없지 뭐예요"

장영주님은 몇개월후 중요한 영업의 마음가짐 하나를 터득하게 됩니다.

"그 후 저는 영업은 막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반면에 막막하니까 더 매력있다고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참 미묘했어요. 일반 직장은 일한 만큼 주잖아요. 한데 보험은 일한만큼 주는게 아니라 성과를 내야만 낸 만큼 주거든요. 그게 저랑 매치가 되나봐요. 뭔가 모험하고 도전하는 그 정신 가치가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더 재미가 나요"

-그동안 해보니 보험영업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 생각되나요?

"보험을 하려면 우선 상품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더라구요. 그리고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잘 점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아는 부분을 논리 정연하게 설명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직업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 자존에 대한 철학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보험에 대한 시각이 어떤가요?

"저도 보험을 모를 때는 쓸데없이 돈만 날리는 상품 정도로만 여겼어요. 그러다 보험에 대해 공부해 보니 보험이 우리같은 서민들에게 더욱 필요한 금융 상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타고 갈 때 안전띠 착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나 할까요. 평소엔 별 차이가 없잖아요. 안전띠 맨 사람이나 안 맨 사람이나... 그러나 사고가 났을 때는 천지 차이가 나잖아요. 신문이나 방송에도 보면 안전띠 맨 사람과 안 맨 사람의 차이를 많이 보도하고 있잖아요. 보험도 마찬가지죠. 보험이 다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정한 상태를 어느 정도는 해소 시킬 수 있는 안전띠 같은 역할은 충분히 한다는 것이지요"

장영주님은 이어 말했습니다. 보험이 완벽하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충격완화 장치 정도는 해 줄 것이라고.

"사고와 질병은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러므로 준비 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고객도 어느 정도 보험에 대한 가치를 잘 알아요. 저는 그래서 겉만 뻔지르르한 포장 상품보다는 솔직하게 상품의 장단점을 말해주는 쪽입니다. 그러니까 고객도 저를 신뢰하게 되는 거 같아요."

-11년째 보험 일을 해오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네, 있지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고 기쁜 사연도 있었어요."

장영주님이 이야기 해준 안타까운 사연은 이랬습니다. 32살 된 어느 여성분이 가입후 8개월 만에 뇌수막염에 걸렸다고 합니다.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 되었고 급기야 합병증으로 신장까지 기능이 마비되어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땐 정말 마음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그분이 보험에 들어 병원비와 장례비를 충당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고 합니다. 또 한 여성은 보험 가입 후 임신성 뇌출혈로 당시 한쪽눈이 실명위기까지 갔으나 보험금으로 수술과 치료를 하여 다시 건강을 되찾은 사연도 있었다고 합니다.

-장영주님은 스트레스 같은 건 안 받으실 거 같아요.

"아니요. 저도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다만 그 상태를 빨리 호전시키려 노력하지요. 제가 하는 직업상 스트레스를 가지고 고객을 만날 수 없으니까요. 스트레스가 몸으로 올 때도 있고 마음으로 올 때도 있더라구요. 몸으로 올 때는 그냥 푹 쉬어요. 그러면 좋아집니다. 마음으로 올 때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왜 이런 마음이 들지 하면서 원인 분석에 들어가죠.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곤 해요. 그리고 저는 항상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요.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잖아요. 또 자신에 대해 충실하고 만족하려고 노력해요."

영업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말하는 장영주님. 두어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삶에 대해 자신이 터득한 여러가지 지혜도 알려 주어 요즘 힘들게 생활하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장영주님에게 들은 내용 중에 동굴인생 터널인생이 생각납니다. 동굴인생은 아무리 들어가도 어두운 굴속을 헤맬 뿐인 인생을 말한다고 합니다. 터널인생은 동굴과 비슷하지만 한참 가다가 다시 환한 밖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동굴인생은 준비없는 사람을 가리키고 터널인생은 준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혼자 못 하니 조언을 해줄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또 코끼리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코끼리 코를 만지고 코끼리의 다른 특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꼬집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전체를 볼줄 아는 지혜를 가지란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고의 위치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고의 전문인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완벽한 재무설계를 해서 행복한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유가 되면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선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다부지고 힘찬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장영주님의 앞 길에 행복이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10년 넘게 보험일을 해왔지만 후회 없다는
장영주님
▲ 보험일이 좋다는 장영주님 지난 10년 넘게 보험일을 해왔지만 후회 없다는 장영주님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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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험설계사,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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