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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을 만드는 일은 농사의 기본 중 하나이다. 이랑을 잘 만들어야 일단 배수가 잘 되고 작물의 뿌리에 산소 공급이 원활해서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소가 끄는 쟁기로 갈고 곰방메로 흙덩이를 깬 다음 고무래로 걸리적거리는 것을 긁어내는 작업을 했지만 요즘은 관리기를 이용하면 모든 일이 손쉽게 끝나고 만다.

지난해까지도 트랙터로 갈아달라고 부탁하거나 마을의 경운기를 빌어 직접 쟁기질을 하고 이랑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계로 하는 것은 분명히 효율성의 면에서 우수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흙속의 지렁이나 이로운 곤충의 유충까지 흙과 함께 갈아버릴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 토막 난 지렁이를 보았으면서도 쟁기질한 일을 자랑삼아 올렸더니 경운기의 쟁기질보다 수작업을 권하는 덧글을 보면서 얼마 되지도 않은 텃밭농사에 너무 요란을 떨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어 금년에는 쇠스랑과 삽과 괭이만으로 이랑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지난 2월 말부터 도전했다.

   이랑을 만들 시기로는 빠른 편이지만 미리 만들어두었다. 멀칭만 하면 된다.
▲ 고구마 이랑 이랑을 만들 시기로는 빠른 편이지만 미리 만들어두었다. 멀칭만 하면 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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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스랑으로 흙을 뒤집으면 지렁이들이 득시글거린다. 쇠스랑이라고 해서 다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경운기로 갈아엎는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 하늘을 보면서 지렁이가 숨을 틈을 주고 흙덩이를 가볍게 부수면서 앞으로 나가는 작업을 계속하는데 생각처럼 진도가 쑥쑥 나가지 않았다. 다시 괭이 머리로 흙덩이를 깨서 고르고 삽으로 쳐 올려 두둑을 완성하기 까지 20미터쯤 파는데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그러나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더디더라도 하루 목표를 한 두둑으로 정하고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2개월 째 되는 지금도 일은 진행 중이다.

    지난 일요일 텃밭의 모습. 앞 부분에도 새로 이랑을 만들 계획이다. 멀칭에 놓은 곳에는 야콘을 심을 작정이다.
▲ 이랑 만들기 지난 일요일 텃밭의 모습. 앞 부분에도 새로 이랑을 만들 계획이다. 멀칭에 놓은 곳에는 야콘을 심을 작정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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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둑의 높이는 심을 작물에 따라 다르다. 야콘과 고구마를 심을 두둑은 높이 올리는 것이 좋다. 특히 야콘은 두둑이 높을수록 뿌리가 곧게 뻗어 상품성이 높아지기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멀칭 비닐도 폭이 120cm는 되어야 한다. 금년에는 야콘을 작년보다 더 많이 심을 계획을 하고 여덟 두둑을 만들 예정인데 앞으로 두 두둑은 더 만들어야 한다.

1년생 작물 중 옥수수,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등 1년생 작물은 두둑은 높지 않아도 되지만 토란과 생강은 뿌리 식물이기 때문에 두둑을 높이는 것이 좋다. 가지와 고추는 지주대를 세워야 하고 오이, 토마토는 줄기가 타고 오를 수 있도록 대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숙지원에 가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일의 결과를 보면서 내가 무언가 했구나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평생 분필만 잡고 살았던 사람이라 쇠스랑이나 괭이, 삽을 다루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요령 없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흙을 찍어 누르기만 하다가 몸살을 했는데, 요즈음에는 쇠스랑의 무게와 내려오는 힘을 이용하는 요령을 터득하여 일을 쉽게 풀어나가는 편이다. 이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하겠다.

농기구를 잡는 손의 위치와 발의 위치를 바르게 하고 가급적 많은 양을 파거나 쳐올리기 보다는 적은 양을 자주 하는 편이 덜 지친다. 또 팔을 뻗어 멀리 있는 곳의 흙을 다루려는 욕심을 부리면 허리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조심할 일이다.

현재까지 12이랑을 만들었다. 평균 20m 잡고 240m의 이랑을 만든 셈인데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12시간 남짓 걸렸다는 계산이 된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시작했으나 휴일에만 일을 했고 그나마 휴일에도 비 오는 날이 많았으며 더구나 그동안 나무를 옮겨 심고 아내의 꽃밭 만드는 일과 병행하다보니 일의 진척이 느렸다고 본다.

현재도 일부 두둑에 멀칭을 했지만 앞으로 멀칭을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하지만 그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금주는 토요 휴무일이니 날씨만 좋다면 이랑 만들기는 물론 멀칭까지 끝날 것이다. 

   작은 두둑을 만들어 토란과 생강을 심고 각종 채소 씨앗을 뿌린 후 스프링쿨러로 물을 주다. 왼쪽은 꽃이 머문 자두나무다.
▲ 스프링쿨러 작은 두둑을 만들어 토란과 생강을 심고 각종 채소 씨앗을 뿌린 후 스프링쿨러로 물을 주다. 왼쪽은 꽃이 머문 자두나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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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텃밭 농사는 보람 있는 일이면서 놀이라는 생각을 한다. 각종 채소를 내 손으로 가꾸어 먹는 보람만 해도 다른 놀이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에는 5년만 빨리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지금 쯤 정원도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귀촌에 뜻을 두신 분이라면 적어도 50대 전반에는 시작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선거철이다. 선거란 승패가 분명한 경쟁이라지만 내 경험으로 일종의 도박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많은 지인들이 표밭 갈이에 뛰어든 것을 보면서 걱정도 많이 한다. 어느 누군가의 승리 뒤에 패배자들의 눈물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공정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남기는 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선거의 후유증으로 인간관계까지 서먹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벌써 튤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튤립은 지난해 가을 아내가 신안군에 부탁하여 구해 심은 것이다. 추위 때문인지 키가 덜 크고 꽃이 핀 것 같다.
▲ 튤립 벌써 튤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튤립은 지난해 가을 아내가 신안군에 부탁하여 구해 심은 것이다. 추위 때문인지 키가 덜 크고 꽃이 핀 것 같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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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일치를 꿈꾸면서 텃밭을 간다. 숙지원에는 매화와 수선화에 이어 앵두꽃은 귀엽고 자두 꽃이 환하게 밝다. 잔디는 푸른색을 띠기 시작하고 튤립도 꽃을 밀어 올린다. 도시에서는 주택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주말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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