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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에 구멍이 뚫렸다. 남북한의 해상경계선 부근에서 한 번의 폭발로 1200톤의 초계정 천안함과 함께 국가안보가 두 동강 났다. 46명의 무고한 장병들이 희생됐다. 원인모를 사고 소식에 국민들은 마냥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북한과 친북세력 색출해서 단죄하자'는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보수신문들이 가장 신났다.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났다. "이번 기회에 자위권을 선포해 쐐기를 박자"는 강경론과 더불어 "더 이상의 논란은 이적행위"라며 색깔론을 지면에 가득 가득 채우고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옳다. 그런데 언론 본연의 감시·비판기능은 찾아볼 수 없다. 받아쓰거나 흥분하기 바쁘다. 군 당국과 정부, 군 통수권자이자 최고 국정책임자인 대통령 발표 내용의 엄격한 검증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고도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더 끔찍한 상황을 보려고 하는지 국민의 불안은 안중에도 없다. 최근 두 달여 상황을 복기해 보면 끔찍해진다.

 

[# 상황 하나] 천안함 사건 조사발표...제기되는 합리적 의문들

 

5월 20일. 국방부 민군 합동조사단이 사고 발생 두 달여 만에 입을 열었다. 천안함이 북한 소형 잠수함이 발사한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로 침몰됐다는 결론을 공식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행사를 3일 앞둔 시점이다. 사상 최대의 지방선거를 불과 열흘 정도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됐다.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지 않는 조사결과를 기대했지만 기왕의 의문점에 더해 새롭게 제시된 증거와 관련된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합조단은 어뢰가 가스터빈실 좌현 3m 위치에서 폭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직접 타격을 받은 터빈실의 상태는 침몰 원인을 밝혀줄 핵심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터빈실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조사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

 

<경향신문>은 22일 사설 '천안함 사건에서 제기되는 합리적 의심들'에서 "결국 어뢰추진체만 발견됐을 뿐 그 어뢰가 침몰의 직접 원인인지는 밝히지 못했다"면서 "당초에는 없었다던 물기둥이 관측된 것으로 뒤늦게 발표된 것, 추진체의 온전한 상태나 거기에 적힌 '1번'이란 표시가 북한의 통상적 표기 방식이 아니란 점도 의문"이라고 제기했다.

 

합리적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한겨레신문>도 이날 사설 '대응은 현실적으로, 조사는 더 철저하게'에서 "조사단은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했으나, 이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최종 결론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며 "나중에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당사자로 지목된 북쪽조차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제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대한 국가안보 사안마저 색깔론적 시각으로 접근해 이성적 대처를 방해하려는 보수신문들과는 대조적인 상관조정 기능을 보여준 사례다. 

 

[# 상황 둘] '합리적 의심', '엄격한 검증' 없는 조중동, 색깔공세 '열중'  

 

기다렸다는 듯, 대북 강경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특히 보수신문들의 논조에서 잘 드러났다. 군 당국의 조사결과 발표 직전부터 노골적인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일 사설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조선일보>는 '지금 우리 국민 1000명을 개성공단에 계속 둬도 되는가'에서 <동아일보>는 한술 더 떠 '발표와 결단만 남은 천안함, 비상한 각오를'에서, 또 <중앙일보>는 '천안함 대북 제재 모든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에서 "가해자는 북한으로 굳어졌다"며 강경론을 부추겼다.

 

군 당국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발표가 있던 날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의 간곡한 주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안함 사건을 다루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에게 전국언론노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문했다. ▲'받아쓰기 보도' 지양 ▲'합리적 의심' ▲발표 내용의 엄격한 검증 ▲군과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을 통해 언론이 국민들의 의문을 해소해줄 것 등이었다. 언론의 본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에 앞서 17일에도 전국언론노조는 "군 당국이 내린 결론과 근거들을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 됐다"며 "국민들에게 책임 있는 보도를 하자는 차원에서 2가지 기본원칙을 견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근거 없는 추정 배격 ▲정치적 악용 경계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덧붙여 언론노조는 "보도의 ABC라 할 수 있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설득력 있는 근거(Smoking Gun) 요구'와 '언론 본연의 감시·비판 기능', '과잉보도 자제', '정책이슈 희석화 경계' 등을 철저히 해 줄 것"도 부탁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색깔과 이념공세에 열중했다. <조선>은 군 당국의 발표가 있자마자 강도를 드높였다. 21일 사설 '북, 이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계속 발뺌할 것인가'와 '대한민국 자위권 선포해 북 도발에 쐐기 박으라'란 제목에선 전운이 고조됐다.

 

이어 22일에는 '도리어 '무자비한 징벌' 엄포 놓는 북한', '국제사회는 북 비난에 공동 보조, 그러나 한국 정치권은', '준엄한 북한 응징으로 대한민국 안전과 평화 수호해야'란 사설들에서 흥분을 삭이지 못했다. "'범법자 북한'에 대한 실천적 응징을 가하자"는 주장은 선동에 가깝다.

 

<동아>도 21일 사설 '김정일 집단, 너희가 '우리 민족'이냐'와 22일 사설 '한미일 '김정일 특권집단 사유경제'의 목을 죄라', '중국의 도덕성을 묻는다', '힘에서도, 기에서도, 꾀에서도 이겨야 한다'에서 대북 강경론에 기름을 붓는 듯 흥분했다. "북이 꼼짝 못하게 급소를 찌르는 수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중앙> 역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안보위기론을 강조했다. 21일 사설 '더 이상의 논란은 이적행위 … 지금은 단합할 때'와 '중국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기대한다'에 이어 22일 사설 '북한의 새로운 공격 가능성에 철통같이 대비하라', '국제사회의 안보 이슈로 떠오른 천안함'에서 불을 품듯 대북 강력론과 색깔론에 무게를 실었다. 군의 각별한 경각심도 당부했다.

 

[# 상황 셋] 지방선거 카운트다운 시작되자 전쟁기념관서 대국민 담화문?

 

24일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청와대가 아닌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단호한 언행이 주요 방송사로 생중계됐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은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 도발"이라며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남북 간 교류·협력은 무의미한 일이므로 남북 간 교역과 교류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앞으로 우리 영해·영공·영토를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경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 운명을 결정할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질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쟁 공포'를 자극했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만행에 대해 참고, 또 참아왔다. 오로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간절한 염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달 간 꾹 참아온 '군 통수권자이자 최고 국정 책임자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방선거를 9일 앞둔 날이다. 카운트다운이 막 시작된 시점이다.    

 

[# 상황 넷] "야당, 좌파 세력, 누리꾼들 무릎 꿇고 사죄를?"

 

전국 신문판매시장에 가장 많은 부수가 뿌려지는 3대 보수신문들은 갈수록 탄력을 받았다. 대통령 발언에 힘을 실어주고 다시 힘을 받는 듯하다. 언론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차분하고 냉정한 이성적 보도태도를 주문했지만 이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연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군 당국과 정부, 대통령을 감시·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의 입을 충실히 대변하거나 구멍 뚫린 안보에 대한 책임을 북한과 야당, 친북세력에 전가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담화 발표가 있기 직전인 24일 사설에서 나란히 주문한다. 세 신문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뿐만 아니라 내부에까지 돌렸다. <조선>은 '국민 의식, 천안함 이전과 이후'란 제목의 사설에서 "'전면전쟁'을 협박하는 북한 앞에서 우리 정치와 우리 국민이 달라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들까지 훨씬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상황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는 '천안함 46용사 유족에게 무릎 꿇어야 할 사람들'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일부 야당 정치인과 친북좌파 세력, 철없는 누리꾼은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해도 시원치 않을 사람들이다"고 꾸짖었다. 

 

대통령 담화 후에는 더욱 거칠어졌다. 25일 <조선>은 ''북 책임 추궁'과 '안보 관리 능력' 함께 보이라', '진실' 모르는 사람은 입이라도 다물어야'란 사설에서 대통령 발언에 더욱 힘을 실었다. <동아>도 ''김정일 집단' 응징, 실효가 있어야 한다', '생각이 병든 사람들'이란 사설에서, <중앙>은 '매를 번 북한, 유일한 해결책은 사죄뿐이다', '지금은 비상한 각오와 결연한 행동으로 하나 될 때'' 사설에서 북한에 응징도 모자라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적으로 내몰았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말 잘 듣는 애완견처럼 권력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언론의 사회적 순기능은 찾아볼 수 없다. 설마 전쟁이 발발하면 신문이 더 잘 팔릴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상황 다섯] 한반도 불안 방치한 정부의 책임, 왜 안 묻나? 

 

참으로 희한하다. 같은 신문이지만 기능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조중동>의 선동적 색깔공세와는 대조적로 <경향>과 <한겨레>는 '합리적 의심'과 발표 내용의 엄격한 검증, 군과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에 충실했다. 사설 제목에서부터 읽힌다. 

 

<경향>은 20일 '불씨 남기지 않는 천안함 조사결과를 기대한다'와 21일 '실효성 있되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22일 '한반도 불안 방치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천안함 사건에서 제기되는 합리적 의심들', 24일 '여당의 '북풍' 기도 누워 침뱉기 아닌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비교적 차분한 상관조정기능에 충실했다.   

 

<한겨레>도 19일 '섣부른 '천안함 외교공세'보다 완벽한 조사를', 20일 '관련자료 전면공개 없이는 신뢰 못 얻는다', ''북풍'에 휘말리는 선거 안 돼야', 21일 '한반도 위기 키우지 않을 냉정한 대응을', '무너진 안보, 이명박 정부는 책임져야 한다', 22일 '대응은 현실적으로, 조사는 더 철저하게', 24일 '천안함 남북 공동조사' 적극 검토해야', 25일 '섣부르고 위험한 대북 초강경 조처'에서 내부 책임론과 함께 대북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신중론을 주문했다.  

 

<한겨레>는 25일 사설 '섣부르고 위험한 대북 초강경 조처'에서 "정부가 어제 천안함 침몰을 북한 도발로 규정하면서 남북관계·군사·외교 분야를 망라한 대북 초강경 조처를 발표했다"며 "이런 강경책은 천안함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잘못이다"고 규정했다.

 

<경향>도 이날 사설 '천안함 사건, 무너진 국민 안보의식 탓 아니다'에서 "언론은 군 당국의 발표 자료를 그대로 옮기는데 급급했다"며 "특히 보수신문들은 합리적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심지어 전면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불안과 공포감을 전하는 신문들도 있었다"고 비판했다.   

 

[# 상황 여섯] 불안한 안보, 미디어 역기능 위험 동시에 노출

 

이처럼 언론은 두 부류로 평행선을 치닫고 있다.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건 조사발표에도 많은 의문점들을 계속 제기하며 신중론을 펼치는 쪽과 국민의 재산과 생명의 보루인 국가안보를 손에 쥐고 초강경론을 펼치는 쪽으로 갈리었다.

 

보수신문들은 천안함 침몰이란 중대한 국가안보 사안마저 치졸한 색깔론적 시각으로 접근해 이성적 대처를 방해하고 있다. 이들은 정당한 문제 제기마저 '괴담'이나 '더 이상의 논란은 이적행위'라고 폄훼하고 있다. 명백한 물증이 나왔으니 잔소리 말라는 투다.

 

언론학 입문이나 언론인 실무과정에서 기본으로 배우고 익히는 언론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망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보도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언론이 위협적 사건에 관한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정보를 전달했을 때, 그러한 정보를 접한 독자나 시청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다. 생필품을 사재기 한다거나 불안을 느껴 해외로 이민을 결심한다면 이는 환경감시의 역기능이다.

 

또 언론의 논평이나 사설에서 편견이 개입되거나 고의로 중요한 사회문제를 다루지 않게 된다면 이 또한 역기능을 야기할 수 있다. 사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는 현안에 대한 논평을 거부한 채 자사의 이념적 성향에 맞는 문제만을 논평의 주제로 삼는다면 이는 언론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언론의 상관조정 역기능이다. 이 역기능은 개인이 스스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비판적·분석적 사고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지금 우리는 불안한 안보상황과 함께 이러한 미디어 역기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제라도 보수신문들이 부디 합리적 이성을 되찾아 줄 것을 간곡히 바란다. 냉정하고 충실한 보도를 통해 국민들의 의문을 해소하는데 앞장서 주기 바란다. 그것이 판매시장에서 누리는 우월적 지위에 걸맞다. 독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태그:#천안함, #조중동,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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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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