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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전공자로서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특정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내 생각을 강요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천안함 사건, 무상급식 이슈, 그리고 경희대 패륜녀 사건. 하지만 선뜻 내 주장을 하기가 민감한 것도 사실. 혹시 녹음이라도 되어서 인터넷에 공개되면 순식간에 '패륜녀를 두둔한 패륜강사'의 타이틀을 가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 딸이 있어요~'라는 생뚱맞은 전제를 깔고 솔직한 내 입장을 밝혔다.

개똥녀, 된장녀, 루저녀. 이런 일은 다 '여자'다

먼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운을 뗐다. 당연히 모두들 공감하는 눈치. 하지만 바로 반전. "왜 이런 일은 다 여자죠?" 신기하지 않은가? 개똥녀, 된장녀, 루저녀 등 이른바 인민재판의 희생이 된 경우는 다 여자다.

물론 그녀들은 '잘못'이 있다. 이들 사건들은 전문용어로 '사가지 없는' 경우다. 하지만 이것이 '난도질'될 만한 일인가 하는 것은 '다른' 경우다. 지금의 분위기는 무단횡단하던 20대가 60대 할머니가 경적을 울렸다고 욕을 심하게 퍼부었는데 이를 '무기징역'에 처하는 꼴이다.

지금쯤 이를 젠더간의 불균형하고는 동급으로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그러면서 '남자의 피해사례'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마녀사냥을 당한 경우와 여자들의 경우는 그 '결'이 조금 달랐다. 전자의 경우 도덕적 범죄를 넘어서 실제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한 피해자가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낙태를 강요하고 결혼을 전제하고 사기를 치는 등의 일들이 그러한 이슈들이었다.

하지만 개똥녀는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단지 '지하철을 더럽게 한 죄' 때문에 그렇게 난리를 쳤다 말인가? 아니면 '밥 말아 처 드신 여자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던가? 루저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한 여성이 남자의 '키'를 아주 중요한 조건으로 단지 '말'했다는 것이 과연 융단폭격에 대한 정당성이 될 수 있을까?

패륜녀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여자는 심했다. '욕'이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했다. 그것도 상대가 어머니뻘이었다. 누구는 그 어머니의 '상처'가 물리적인 것보다 더 큰 것임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는 '명예훼손'으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미친개에게 물린 경우'다. 이 경우 물린 사람의 명예가 훼손당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개가 미쳤는 것이고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그 개가 미치는 것을 내버려둔 사회를 따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건 '패륜'이라는 낙인으로 이어지기에 아무리 보아도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루어졌다. 맞다. 이 사건의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여자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 이 사회는 여자들에게 '훨씬' 엄격하다. 특히나 그 엄격성의 문화를 아직 잘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여성'일수록 혼쭐이 날 가능성이 높다. 말 그대로 '멋 모르고' 행동하가다 완전 박살이 난 것이다.

그 환경미화원을 정말로 도와주는 길은 이 사건의 책임이 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과연 이 사회가 그렇게도 도덕적인지 묻고 싶다. 우리들이 얼마나 착하기에, '20대 대학생이 어머니뻘 환경미화원에게 욕을 한 것'에 그렇게도 흥분한단 말인가?

패륜녀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가 22년 만에 귀국하신 지인을 만났다. 그는 한국사회가 무척이나 '친절'해졌다고 고무되었다. 특히나 식당,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면서 그런 느낌이 강했단다. 그분은 이 현상이 매우 긍정적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사실 이는 신자유주의가 노골적으로 구체화되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감정노동'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단순한 '노동력'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무조건 웃으면서 해야 하는' 조건이 노동자에게 부과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비자가 '까라면 까는' 식이었다. 이른바 감정노동이 노동자 '평가항목'에 삽입되면서 노동자는 해고의 주관적 위험성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 하나의 꼬투리도 사용자에게 제공하지 않기 위해 한없이 더 약해지고 굴복해야 했다. 당연히 이런 메커니즘은 사용자를 오만하게 만든다.

학교 안에서 비정규직으로 계약되어 있는 노동자는 언제나 비굴하게 존재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고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소비자' 학생들은 한없이 오만해졌다. 자신들의 등록금으로 그(녀)들의 월급을 준다는 놀랄만한 상상력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해지자. 대학생들은 입으로는 '환경미화원 어머님'이라고 표현하지만 가슴으로는 '용역업체에서 온 비정규직 청소아줌마'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사회소외계층인 그분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가슴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정규직이 되어 등록금이 오를까 봐 걱정한다.

대학은 이제 자본의 '침투'가 아니라 '자본' 자체가 되었다. 그것도 20대들의 열렬한 요구 속에서. 20대는 이를 '학교의 효율적 경영'이라고 이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쓸데없는 정규직 직원'을 채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기술직이나 관리직은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20대들은 자신들이 이들보다 '훨씬 더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조차 정규직이 불투명한데 어딜 감히 '그런 직종'에서 정규직 자리를 원한단 말인가?

스펙 경쟁은 그렇게 본인들을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만든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분들에게 '그런 대우'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분들이 본인들이 경험한 부당함을 그렇게 소리질러도 대학생들의 반응은 언제나 '침묵'이었다. '동정은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대학에 대형마트가 들어오지 '못했다고' 난리이고 대학에서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삭발을 하고 크레인에 올라간 것을 '학교 이미지에 좋지 않다고' 난리다. 어떤 대학은 왜 우리는 그러한 기업이 얼굴조차 보이지 않느냐면서 얼른 명예박사 하나 주고 건물 하나 만들자고 난리다.

볼품없는 존재가 되어 갈수록 대학생은 그들을 더 무시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 이분들을 '어머니'로 대했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언제 이분들을 '어머니'로 대했단 말인가?
ⓒ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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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솔직해질까? 이 아줌마들은 대학생들의 '동기'를 부여한 인물이었다. 대학생들은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바로 그 담론 속에서 성장했다. 이를 그들은 '경쟁'이라는 단어로 합리화한다.

그들은 1세 때는 누가 먼저 걸음마를 시작했는지를 경쟁했고 2세 때는 누가 먼저 말을 시작했는지를 경쟁했다. 주변에서는 이를 '확인 또 확인'하면서 부채질을 한다. 3세 때부터는 이른바 어린이집에서, 6세 때는 유치원에서 그랬다. 악기를 다루어도 '누구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했고 성격도 '누구보다' 좋은 것이 중요했다.

그들에게 이른바 '순위'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1등'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죽을 때까지 '칭찬의 소재'가 될 수도 있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환경미화원은 대표적인 '순위 외'라고 인식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열심히 하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버전이다. '공부 잘 해야 하는 이유'보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가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들이 이른바 사회적 취약계층이다. 노숙자, 부랑자, 빈곤층, 청소부 등 바로 그들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니 이른바 1차 관문은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아줌마'가 그 학생의 꼭지를 돌게 한 것이다.

이 글을 보고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 사람 많을 것이다. 하지만 헛소리하지 마라. 그건 당신에게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이라도 청소아줌마가 당신에게 '맞짱' 토론을 제안하면 당신은 최소한 속으로라도 '완전 미친 거 아냐?'고 생각할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평소에 그들이 그러한 '볼품없는 존재'가 되어갈수록 그들을 얼마나 '더' 무시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래서 이건 '사회'의 문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온라인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패륜녀, #신자유즈의,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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