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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는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민이 어떤 질병에 걸려도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들은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에 손을 벌리기에 앞서 국민 스스로 보험료 부담을 조금 더 늘리자고 제안하고있다. 지금보다 건강보험료를 1인당 월평균 1만1000원 올려서 모든 사람이 필요한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한다는 것. <오마이뉴스>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료복지혁명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심도있게 고민해본다. 세번째 글은 안호덕 시민기자가 보내온 가족이야기이다. [편집자말]
지난 2일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은 큰아이가 체한 것 같다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배가 아파서 학교에 가기 힘들단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근처 대학병원에 갔다. 예전에도 똑같은 증상으로 세 번이나 입원한 적이 있어, 담당 선생님의 진료시간에 맞추어 갔다. 하지만 사전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 당장은 진료가 힘들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상태가 점점 더 나빠져 토하기 시작했고 당황한 아내는 어떡하냐고 전화를 했다.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응급실로 가는 길뿐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다니는 병원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갔다.

급히 퇴근을 하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아이가 링거를 맞고 있었다.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아이는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다. 응급실 의사는 심한 체증과 변비가 원인인 것 같은데 링거를 다 맞으면 집에 가라고 한다.

그러나 몇 번이나 같은 상태를 보아온 나로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집에 가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또 응급실로 들어올 거라며 입원을 시켜 달라고 했다. 아이의 병은 '식도염을 동반한 위-식도 역류질환'으로, 체한 것 같이 시작해 3~4일을 배가 아프다 구토가 멈추지 않아 나중에는 위액과 손상한 식도의 피까지 묻어나는 증상이다.

11일 입원비 본인부담금 125만 원... 민간보험 들었지만

입원을 해서 토하지 않고 배 아픈 것이 멎으면 내일이라도 퇴원하겠다는 말에 의사는 입원을 결정해 주었다. 입원 수속을 하러 야간 원무과에 가니 다인용 병실(4~5인실)은 빈 곳이 없고 2인실이 있는데 입원을 할 거냐고 묻는다. 차액 병실료 하루 15만 원. 그러나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른 병원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인용 병실이 나면 옮겨 달라는 부탁과 함께 입원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이번에도 아이는 4일을 내리 토하고 초주검이 되어서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2인 병실에 이틀을 지낸 뒤에야 다인실로 옮길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옆에 아이는 지방에서 올라와 다인실이 나지 않아 1인실에 이틀을 있다 옮겼다고 한다. 1인실 병실은 하루 35만 원. 이틀 70만 원의 병실료를 내야 될 처지였다.

다인용 병실은 병실 이용료가 의료보험에서 지급되지만 나머지는 병실 차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아이가 가입된 민간 보험에서도 상급 병원 차액은 지원되지 않는다. 다인용 병실을 구하지 못해 하루 15만 원, 심지어 35만 원의 병실료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병원 장삿속이 있지는 않나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입원한 지 11일 만인 12일, 아이는 상태가 좋아져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다시 들어오지 말자며 아빠와 손가락을 거는 아이가 애처로워 보였다. 아내에게 병원비를 물어 보았다. 아내가 건네준 진료비 영수증에는 총진료비 251만7448원. 환자부담 총액 125만1447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250여만 원 총진료비 중 130여만 원은 국민보험공단에서 부담하고 내가 부담해야 되는 금액이 125만 원인 것이다. 국민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더라도 본인 부담금 125만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나마 한 달에 5만 원씩 내며 아이가 어릴 때 들어 놓은 민간 보험이 상급 병실 차액 병실료는 지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본인 부담금에서 80% 정도는 지원되기에 병원비에 대한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다.

보험 없어 수술도 못 받고 돌아가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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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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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보험이 없었다. 민간에서 하는 보험은 꿈도 못꾸는 시절이었고 농어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의료보험도 시행되기 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덜컥 중병이 나셨다. 뇌종양. 머리 깊숙한 곳의 실핏줄이 꼬여 막혔다는 진단을 받기까지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두 대밖에 없다던 MRI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서울 대학병원 생활은 어머니 표현대로 '돈을 처바르는 일'이었다.

일주일마다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수백만 원씩 청구되는 병원 고지서는 고스란히 100% 본인부담금이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일궈 놓은 재산의 대부분이 병원비로 쓰였다. 의사가 성공해서 살 수 있는 확률 50%, 예상 수술비 1억여 원인 수술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일 년여 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 옆에 있던 환자는 공무원 가족으로 보험혜택을 받고 있었다.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어머니는 "그 당시 보험이라도 들었으면 수술이라도 받아봐서 죽은 사람 원이라도 푸는 건데" 하며 지나가듯이 이야기 하신다.

그런 환경 탓인지 결혼하고 나서 나와 아내, 아이들까지 온 식구 상해와 질병에 대한 병원비를 보장하는 민간의료보험을 빠짐없이 들었다. 그 액수만도 한달에 25만 원 정도.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꽤 높다. 사실 민간의료보험을 들면서 돈을 벌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국가의 국민의료보험에서 보장되지 않는 부분, 그래서 본인부담금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부분을 예비하자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며칠 전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의 '중산층 가정 파탄 낸 5천만원 치료비' 기사를 읽으면서 민간의료보험도 100% 예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약값이 없어 가정이 파탄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이 남의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아찔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998년도엔 어머니가 큰 수술을 받으셨다. 상태가 호전된 어머니는 암보험을 들어 놓은 것이 있다며 알아보라고 하셨다. 당연히 보장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보험사에 문의하였지만 보장받을 수 없는 질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피내암. 의학적인 용어도 생소한 병명. 암은 맞지만 보장받을 수 없는 질병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그런 질병은 보장이 안 된다고 설명하고 보험가입을 받았느냐고 따졌다. 그런 건 아니지만 보험약관과 계약 내용에 그렇게 되어있으니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고, 마음대로 하라는 태도로 나왔다. 화가 나서 당장 해지한다고 하니까 해지 위약금이 있어 보험료로 낸 금액은 80% 정도 밖에 돌려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몇 년 보험료를 더 부은 뒤에야 이자 없는 원금만 돌려 받을 수 있었다.

1만1000원 인상으로 의료비를 100% 지원받을 수 있다면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6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족식을 진행했고, 7월 14일 시민발기인들과 함께 본조직 출범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6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발족식을 진행했고, 7월 14일 시민발기인들과 함께 본조직 출범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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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백혈병이나 불치에 가까운 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일년에 수천만 원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비하면, 나같이 몇십만 원 병원비 부담을 가지고 이렇게 장황스런 글을 쓰는 게 도리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아이 의료비 250만 원 중 환자 부담금 125만 원 절반 정도는 나의 몫이다(이중 80%는 민간보험에서 지원된다). 환자 부담금 중 많은 부분이 선택 진료비 등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병원에서 검사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선택 진료'가 선택인지, 어쩔 수 없는 동의인지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선택 진료라는 이름이지만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직접 의료 행위나 1, 2인실을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경우에는 이를 국민의료보험에서 책임져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의료보험은 사회안전망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사람들이 이 안전망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이 수요가 자꾸 몰리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심화될수록 국민의료보험은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속에서 접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1만1000원의 기적' 범국민 운동은 반갑기만 하다. 이들의 주장은 1인당 월평균 1만1000원 정도의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의료 혜택을 받자는 것이다.

국민1인당 1만1000원만 더내고 국민건강보험에서 모든 의료비 지원받을 수 있다면 마다할 국민들이 별로 없을 듯하다. 우리집만 하더라도 한달에 25만원 정도의 민간의료보험비를 다섯식구 5만원 정도 더 내고 국민의료보험에서 모든 걸 해결 할 수 있게 된다면 아주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 백혈병이나 많은 약값을 써야하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회안전망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제도 개혁은 정부와 보험 가입자인 국민이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자칫 국민의 부담만 늘린다는 비난이 생겨날 수도 있다. 국민도 1만1000원의 부담보다도 그 부담을 감당하게 되면 어떤 점이 달라질 것인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정책이야 말로 진정한 소통과 대화, 이해가 바탕이 돼야한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이런 제안에 많은 사람이 힘을 보탠다면 그리 쉽지는 않지만 실현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당 정책이 정부와 사회적 합의로 하루빨리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그:#건강보험하나로 운동, #1만1000원, #민간의료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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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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