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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학생1명에 교사 1명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학생1명에 교사 1명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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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을 보세요? 바닷가 절벽 밑에 검은 굴들이 보이지요?"

한 사람의 손이 가리킨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송악산이었다. 이름이 산이지 그냥 밋밋한 모습이 평지나 다름없는 산. 그러나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깎아지른 절벽이 아슬아슬하게 병풍처럼 솟아있는 산이다.

"일제말기에 일본군부가 제주도를 최후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바닷가에 저렇게 굴을 파놓고, 작은 배들을 숨겨놓고 있다가 기습공격을 하려고 했다 합니다."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근처의 작은 선착장에서 기다리다가 잠깐 송악산 바닷가 동굴을 살펴보았다. 굴은 20여 개나 되었다. 잠시 후 마라도로 가는 배가 도착했다. 여행객들이 모두 승선하자 배는 곧 출항했다. 바다는 잔잔했다.

송악산 바닷가 굴과 가파도, 마라도의 이름 유래

육지에선 보기 힘든 마라도 식물들
 육지에선 보기 힘든 마라도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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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은 오가는 배들이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뱃고동도 울리지 않고 거침없이 달린다. 저만큼 송악산과 모슬봉, 그리고 단산이 가물가물 사라질 때쯤 오른편으로 기다랗게 누워있는 섬 하나가 나타난다.

"여러분 저 섬이 영화 <마파도>로 유명한 바로 그 섬 가파도입니다. 그런데 저 섬 이름이 왜 가파도인지 아세요?"

누군가 가파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자 그가 스스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옛날 이곳 섬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장을 보러 모슬포에 왔더랍니다. 그런데 풍랑이 거세 섬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며칠 묵다보니 돈이 떨어진 겁니다. 그래서 모슬포 시장 상인에게 돈을 꿔 물건을 사가지고 돌아갔답니다. 물론 다음 장날 갚기로 약속을 했지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는지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또 다시 풍랑이 일어 다음 장날 그 아주머니는 모슬포에 나올 수 없게 되었지요. 그렇게 몇 번의 장날을 지나치다보니 한 달이 번쩍 지나간 다음에야 바다가 잔잔하여 배를 타고 나올 수 있었답니다. 빌려준 돈을 포기하고 있다가 되돌려 받은 시장상인이 말하길 바다 가운데 작은 섬(가파도, 마라도)에 사는 사람들은 꾼 돈을 '갚아도 되고 말아도 된다'고 했답니다. 이때부터 섬 이름이 가파도(갚아도)와 마라도(말아도)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아하~ 그런 유래가 있었군요?"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제주도에서도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외딴섬 가파도와 마라도다운 섬 이름의 유래였다. 마라도는 상주인구 30여 명, 면적이 마라도보다 3배쯤 크고 넓은 가파도는 160여 가구에 300여명이 산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이 가파도는 가물가물 사라지고, 곧 저 앞으로 작은 섬 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마라도였다.

마라도 선착장주변은 절벽지대여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했다. 계단 위로 올라서자 작은 차량들이 호객을 한다. 여행객들을 태우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전동카트들이었다. 나이든 일부 노인들과 젊은 연인들이 카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히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어서 카트를 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걷기로 했다. 오른편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주인구 30명에 학교와 절, 성당, 교회가 1개씩…그리고 자장면 집이 다섯 개

마라도 자장면 집 5개 중의 한 곳 짜장면 시키신 분
 마라도 자장면 집 5개 중의 한 곳 짜장면 시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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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걷자 눈앞에 나타난 것은 짜장면 집이었다. 어느 개그맨이 광고에 등장하는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바로 그 앞에는 '환상의 수타 짜장'이라는 또 다른 짜장면 집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쪽에도 '철가방을 든 해녀'라는 짜장면 집이 또 있었다.

"우와~ 상주인구 30명인 작은 섬에 짜장면 집이 3개나 되네."
"세 개뿐이 아닙니다. 더 가시면 두 개나 더 있는 걸요. 이 섬에는 짜장면 집에 다섯 개나 있습니다."

우리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먼저 섬에 올라 자장면을 맛 보았다는 다른 여행객이 우리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뒤쪽에서 '원조 마라도 해물짜장면' 집과 '마라원 짜장'이라는 두 개의 자장면 집을 또 만날 수 있었다.

마라도 바닷가 길 풍경
 마라도 바닷가 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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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자 오른편에 돌담에 둘러싸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가 나타난다. 정문은 장대 세 개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주인이 없다는 표시이고, 옆에는 어른주먹보다도 더 큰 수국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마라분교는 학생 1명과 교사 1명이 전부라고 한다.

서쪽을 향하여 걷는 길가에 무더기로 자란 선인장 담장 너머로 절집이 나타난다. 그 뒤로는 성당이 바라보이고, 저 멀리 교회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섬에는 불교사찰과 천주교 성당, 그리고 기독교 교회가 한 개씩 세워져 있었다.

섬의 북쪽과 남쪽지역 해안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서쪽지역 해안은 검은 바위가 깔린 완만한 경사면이었다. 도로가에는 이 지역 특유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 뭍에서 찾아 온 여행객들에게 예쁜 미소를 보내준다.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작고 아담한 초콜릿 가게도 예쁜 모습이어서 마라도의 명소로 통한다.

그 바닷가 안쪽에 있는 바위틈에 이끼처럼 작은 노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그런데 그 옆에 눈에 익은 꽃송이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다가가 살펴보니 이게 웬 일, 넝쿨 찔레꽃들이 아닌가. 그런데 육지의 그것과는 달리 찔레 넝쿨과 꽃이 아예 바닥에 맞닿아 있는 것이 여간 신비로운 모습이 아니다. 이 섬 특유의 거센 바람에 적응하느라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것이다.

서남쪽 바닷가에 우뚝 서있는 장군바위
 서남쪽 바닷가에 우뚝 서있는 장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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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거세어 바위사이 흙에 납작 엎드린 찔레넝클과 꽃
 바람이 거세어 바위사이 흙에 납작 엎드린 찔레넝클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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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이 거센 마라도의 특별한 생태환경

마라도엔 거의 날마다 거센 바람이 불어 나무들도 억새의 키 정도밖에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대한민국 최남단'이라 쓴 표지석이 나타난다. 바닷가에 장군바위가 험악한 얼굴로 바다를 지켜보고 서있는 모습이 마라도를 지키는 장수처럼 우람하다.

남쪽 바닷가 길로 가니 해수면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그런지 절벽 아래가 아슬아슬해 보인다. 바닷가에 통나무로 세운 울타리 풍경이 이국적이다. 안쪽 높은 곳에는 등대가 서 있고 평지엔 키 작은 풀들과 예쁜 꽃들이 즐비하다.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 동쪽 해안으로 내려서니 절벽지대가 끝나고 검은 바위가 깔린 완만한 해안선이 나타난다.

우리국토의 최님단 표지석
 우리국토의 최님단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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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해안을 돌아보고 다시 북쪽 해안에 있는 선착장으로 가는 비스듬한 언덕평지에는 돌담에 싸인 두 기의 무덤이 북쪽 제주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덤이 남향이 아니고 북향인 것은 북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지형과 제주 본섬이 북쪽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덤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작지만 둥그렇고 예쁜 웅덩이에 물이 가득 고여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마라도엔 바닷물을 정수하여 식수로 먹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서 생활용수는 충분히 공급된다고 한다.

선착장 가까이 이르자 일행들 몇이 서성이다가 인사를 한다. 이곳에선 섬 전체를 거의 조망할 수 있었다. 남서쪽의 가장 높은 지대에서부터 가장 낮은 동쪽 지역까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지형이 평탄하여 마치 펼친 손바닥 같은 모습이었다.

섬 안 돌담에 둘러싸인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무덤
 섬 안 돌담에 둘러싸인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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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잡수셨나요? 이곳 자장면은 조금 특별한 것인데..."
"어, 그런가요? 그럼 한번 맛봐야 겠네요."

근처에 마주보이는 자장면 집으로 향했다. 자장면 집은 사람들로 와글와글했다. 값은 육지와 비슷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려니 두 딸과 함께 자장면을 먹다 귀여운 딸들이 자장면 먹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네, 아주 맛있어요, 대구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자장면 맛이 어떠냐고 묻자 아주 맛있다는 딸들의 말과는 달리 엄마는 그냥 그렇다고 한다. 어린 딸들이야 머나먼 남쪽 바다 작은 섬에서 먹는 자장면 맛이 특별하겠지만 어른들에겐 그저 자장면 맛 그대로인 것이 사실일 것이다. 이들 모녀는 대구광역시 심산동에서 온 엄마 이은정씨와 오해민(12) 유민(11) 자매였다.

자장면 먹는 딸들을 사진에 담는 엄마와 자매
 자장면 먹는 딸들을 사진에 담는 엄마와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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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마라도 선착장 풍경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마라도 선착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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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장면 시키시면 안 되겠는데요. 다음 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답니다."

대구에서 온 세 모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일행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와 알려주었다. 다른 일행들은 마라도의 그 유명한 자장면 맛을 보았지만 사진 찍기에 바빠 자장면을 맛볼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일행들과 함께 선착장에 이르자 저 멀리서 연락선 두 척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슬포 1호와 2호였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선착장이 사람들로 와글와글하다. 두 척의 배에 나눠 타고 모슬포와 송악산 선착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었다.

섬 구경을 하고 내려오는 동안 파도는 높아져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에 연락선이 울렁거린다. 부우웅~~~ 사람들이 모두 승선하자 뱃고동이 울린다. 배가 출항하는 것이다. 올 때보다 훨씬 높아진 파도를 가르며 연락선은 제주 본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잘 있거라, 참 아름다운 섬 마라도여, 언제 다시 너를 보러 올 수 있으려나~~"

나이 들어 보이는 여행객 한 사람이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마라도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태그:#마라도, #가파도, #짜장면, #이승철, #송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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