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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아침은 일찍 시작되었다. 성인봉 산행을 할 지 아니면 죽도에 들어갈지 기다려야 했다. 죽도로 가는 배가 손님들이 부족해 결항이 잦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전화를 하니 9시 30분 이후에 다시 확인 전화를 하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식사를 대충하고 부둣가를 서성거렸다. 9시 30분. 선착장에 갔다. 역시나 손님이 없어 결항이었다. 오후에 들어가는 배도 그때가 되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성인봉에 간다면 오늘 하루가 꼬박 소용될 터, 미련 없이 버스를 탔다.

마을버스에는 기사 아저씨와 여행자 단 둘이었다.
 마을버스에는 기사 아저씨와 여행자 단 둘이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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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도동항 출발. 손님은 나 혼자, 기사아저씨는 구불구불한 고개를 넘기 시작하였다. 평균 경사가 25도 정도인 울릉도의 도로는 가파르다. 버스는 8자 모양의 고갯길을 힘겹게 오르더니 급경사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흑비둘기 서식지가 있는 사동마을부터는 바다를 끼고 가는 평탄한 길이었다. 모래가 많다고 사동마을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옥같은 모래가 바다에 누워 있다는 뜻으로 '와옥사(臥玉沙)'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뒷산 모양이 사슴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 '와록사(臥鹿沙)'라고도 하였다. 후에 모래 사(沙)만 써서 사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사동 일대는 울릉 신항 건설로 활기찼다.

아주머니 한 분이 탔다. 버스 안은 여행자와 아주머니, 기사 아저씨 모두 셋이 되었다.

"울릉도에 몇 번 다녀가셨나 봐요?"

기사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예?"

다소 놀라는 눈치다.

"왜 그러시죠."
"처음인데, 마을버스를 타셨네요. 보기 드문 일이지요. 보통 울릉도에 처음 오면 관광버스나 택시관광을 주로 하고 두세 번 온 분들이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기러 마을버스를 이용하거든요."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라 섬에서는 대개 걷거나 마을버스를 이용합니다."

그제야 기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구미의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위). 울릉도의 남통터널과 남양터널의 신호등(아래). 도로가 좁은 일방통행이여서 신호에 따라 차량이 이동할 수 있다.
 통구미의 거북바위와 향나무 자생지(위). 울릉도의 남통터널과 남양터널의 신호등(아래). 도로가 좁은 일방통행이여서 신호에 따라 차량이 이동할 수 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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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가두봉을 지나 통구미에 이르렀다. 홈통 같은 마을로 바다거북이가 기어들어가는 형상의 바위가 있어 통구미라 불리는 곳이다. 거북바위에는 바위 위로 올라가는 모양의 거북이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6~9마리 정도가 보인다. 거북바위 맞은편은 천연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된 향나무 자생지다.

터널이다. 울릉도의 가파른 지형으로 인해 곳곳에 터널이 만들어졌다. 특히 가두봉에서 태하까지는 11여 개의 터널이 밀집되어 있다. 남통터널과 남양터널에는 신호등이 있다. 육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풍경이다. 산 자체가 암벽이라 길을 넓게 포장할 수 없었다. 일방통행이라 터널의 신호에 따라 차량이 통과할 수 있다.

10시 25분 남양 도착.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남쪽 마을 남양. 마을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 예사롭지 않다. 제주의 주상절리를 닮은 국수산(비파산)은 산 한쪽 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혹은 비파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버스는 우산국의 전설이 서려 있는 투구봉을 지나 구암마을, 만물상이 있는 작은 황토구미인 학포를 지나더니 다시 그렁그렁 소리를 내며 산비탈을 힘겹게 올랐다. 하늘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심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태하마을의 어느 민가
 태하마을의 어느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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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40분 태하 도착. 태하는 한국 10대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도동항이 들어서기 전 울릉도의 중심이었다. 이곳에는 아홉 가지의 맛이 난다는 황토구미와 애잔한 전설이 있는 성하신당이 있다.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렸다. 버스 안에는 다시 기사 아저씨와 여행자 단 둘이 남았다. 서울에서 온 아저씨는 물가가 조금 비싼 것만 빼면 울릉도가 너무 좋다고 하였다. 둘은 자연스레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여행을 많이 하셨는데,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있다면 어떤 곳일까요?"

사실 여행자는 이 질문이 매번 곤욕스럽다. 은근슬쩍 대화를 돌렸다.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딱히 한 장소만을 택하기는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제일 곤란한 질문이라서."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전해지는 현포마을의 목교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전해지는 현포마을의 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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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55분 현포 도착. 태하에서 현포 가는 길은 굽이굽이 12구비의 길이다. 흑산도 상라봉 고갯길만큼 구불구불한 길이다. 현포는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부터 느릿하고 한가한 울릉도의 진면목이 시작된다. 도동항의 번잡함은 간 데 없고 조용한 어촌마을이 이어진다.

천부항과 송곳봉. 송곳봉은 높이가 430m에 달한다.
 천부항과 송곳봉. 송곳봉은 높이가 430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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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05분 천부 도착. 목교를 지나면 북면 해안의 으뜸으로 꼽히는 코끼리바위 공암과 하늘을 찌를 듯한 송곳봉의 절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호수 같은 바다를 품고 소담하게 자리 잡은 천부는 버스 종점이다. 나리분지와 석포(섬목)에 가려면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나리분지나 석포를 가려면 천부에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나리분지나 석포를 가려면 천부에서 미니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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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20분 천부 출발. 나리분지를 가기 위해 작은 미니버스로 갈아탔다. 아이구나. 무슨 이런 길이 있나. 이때까지의 급경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숱하게 산속의 깊은 암자를 다녔어도 이처럼 모진 길을 본 적은 드물었다. 그야말로 '고갯길이 가팔라서 올라갈 때는 거의 이마가 닿고 내려올 때는 뒷머리가 닿았다'는 옛 기록이 정확했다.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 전경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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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50분 나리분지 도착.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에는 전통가옥인 투막집과 너와집이 있다. 산채정식과 동동주로 요기를 한 후 느긋하게 산책을 했다.

13시 15분 나리분지 출발. 홍살문이 있는 홍문동 마을까지 걸어갔다가 버스를 세워 탔다. 버스의 손잡이를 꼭 붙잡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버스는 천부로 다시 내려와 죽암마을을 지났다.

일선암(위)과 이선암, 삼선암(아래). 삼선암 중 일선암만 떨어져 있다. 일선암은 바위 끝의 벌어진 모양이 가위를 닮아 '가위바위'라고도 불린다.
 일선암(위)과 이선암, 삼선암(아래). 삼선암 중 일선암만 떨어져 있다. 일선암은 바위 끝의 벌어진 모양이 가위를 닮아 '가위바위'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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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바위와 삼선암이 보였다. 울릉도의 3대 해안 절경으로 꼽히는 명소이다. 선녀 세 명이 내려왔다가 울릉도의 빼어난 경치에 반해 하늘로 올라갈 시간을 놓쳐 버렸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세 선녀가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 세 개 중 두 개는 붙어있고 하나는 조금 떨어져 있는데 바위의 끝이 가위처럼 갈라져 있어 '가위바위'라고 불린다. 세 선녀 중 막내라고 한다.

다시 오르막이다. 옛날부터 깍새가 많이 살아 깍새섬이라 불리는 관음도가 불쑥 솟아있다. 해적이 살았다는 '관음쌍굴'이라는 두 개의 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섬목에서 관음도를 잇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깍새가 많이 살아 깍새섬으로도 불린 관음도(위). 석포전망대에서 본 죽도(아래). 단 한 명이 살고 있는 섬이다.
 깍새가 많이 살아 깍새섬으로도 불린 관음도(위). 석포전망대에서 본 죽도(아래). 단 한 명이 살고 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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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50분 석포전망대 도착. 석포전망대는 두 곳이 있는데, 석포 내수전 옛길을 트래킹 하기 위해 여행자는 바닷가 쪽 전망대에 내렸다. 이곳부터 내수전까지는 도로가 없다. 산길을 걸어야만 한다.

15시 30분 내수전 쉼터 도착. 옛 숲길 트래킹을 마치고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 죽도와 석포 일대, 북저바위, 저동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16시 내수전 쉼터 출발. 이곳에서 내수전 마을까지는 도보로 20여분 이동해야 한다.

17시 20분 봉래폭포 도착. 18시 35분 봉래폭포 출발하여 19시 경에 도동항에 도착했다.

여행자가 이날 쓴 돈은 도동에서 천부까지 1500원, 천부에서 나리분지까지 1000원, 나리분지에서 석포까지 2000원, 봉래폭포에서 도동항까지 1500원으로 총 6000원의 버스비용이 들었다.

이에 비해 관광버스는 도동 ↔ 사동 ↔ 통구미 ↔ 남양 ↔ 사자바위 ↔ 투구봉 ↔ 곰바위 ↔ 태하성하신당 ↔ 현포령 ↔ 현포고분 ↔ 송곳봉 ↔ 천부 ↔ 나리분지 등을 3~4시간 돌며 1만8000원의 비용이 든다. 택시관광은 한 대당 평균 12만원 정도이고 4~5시간이 소요되며 코스에 따라 10만원에서 20만원 선으로 합의요금제다.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와 죽도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와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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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팁 울릉도에서 가장 싼 값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을버스를 타는 것이다.

1. 택시나 버스로 하는 단체 관광보다는 훨씬 낫다.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버스여행은 한가하다. 비용도 싸거니와 내리고 싶으면 내리고 걷다가 지치면 다시 마을버스를 타면 그만이다.
2. 울릉도가 처음이라면 지도만으로 거리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마을버스로 해안을 한 바퀴 돈 후 도보여행 지점과 사진 촬영지를 선택하면 된다. 사전 답사의 의미다.
3. 앞자리나 바닷가 쪽으로 앉으면 경치도 좋거니와 울릉도의 지리를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

4. 마을버스는 울릉도 구석구석까지 다닌다. 택시나 관광버스가 가는 코스는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오히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다. 성인봉 산행 입구와 봉래폭포, 나리분지도 버스로 갈 수 있다.
5. 잔돈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6. 운행구간은 다음과 같다. 울릉도 전 지역이 해당된다.  내수전에서 천부까지 1,500원, 천부에서 석포까지가 1,000원이다. 내수전에서 천부를 거쳐 석포까지가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막다른 길이다. 해안길은 2,500원이면 다 도는 셈이다. 여기에 나리분지와 봉래폭포를 추가하면 길을 따라 울릉도를 다 돌아보는 셈이다. 나리분지는 천부에서 다시 갈아타야 한다(1,000원). 봉래폭포는 도동항이나 저동항 버스정류장에서 타면 된다(1,500원).

* 내수전 발 - 저동(2.1㎞) - 도동(4.7㎞) - 사동(10.3㎞) - 통구미(13.4㎞) - 남양(15.6㎞) - 구암(18.7㎞) - 학포(23.6㎞) - 태하(26.6㎞)- 현포(29.5㎞) - 평리(33.7㎞) - 추산(35.1㎞) - 천부(37.1㎞)-죽암-석포(포장도로 끝)-옛길(도보 산행)-다시 내수전
* 도동 발 - 저동(2.3㎞) - 봉래폭포(4.4㎞)
* 천부 발 - 죽암, 선창, 섬목(5.7㎞), 천부 발 - 나리분지(4.0㎞)
(도동에서 천부까지 왕복18회, 나리분지는 9회)

7. 운행요금 (도동 출발 기준)
       구분           일반    중고생   초등생
(읍면 내 이동)   1,000원,  600원     500원
(읍면 간 이동)   1,500원,  600원     500원
※ 단, 봉래폭포 구간은 1,500원
※ 버스회사 연락처 우산버스 : ☎(054)791-7910, 8000

도동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는 별도의 버스시간표 인쇄물이 없었습니다. 안내소와 군청에 버스시간표 인쇄물을 요청했으나 울릉도에서 나오는 날에도 여전히 비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대신 울릉군 홈페이지에는 게시되어 있으니 울릉도에 가실 분은 버스시간표를 이곳에서 미리 출력해 가시길 바랍니다. 

울릉마을버스시간표(http://www.ulleung.go.kr/tour/guide/guide4.htm?&mnu_uid=400)

덧붙이는 글 | 2010.9.18 여행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울릉도, #울릉도마을버스, #울릉도해안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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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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