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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항에서 출발한 마을버스는 종점인 천부에서 멈췄다. 석포로 가기 위해서는 천부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일출과 일몰 전망대로 유명한 석포전망대는 두 곳이 있다. 예전부터 망루 역할을 하던 곳으로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 군함을 관측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했던 망루의 전망대가 그 하나이고, 죽도가 바로 코앞에 있고 맑은 날에는 독도가 보인다는 전망대가 나머지 하나다.

울릉 숲길인 내수전 석포 옛길은 그 옛날 폭풍우로 배가 출항을 할 수 없을 때 이용하던 산길이다.
 울릉 숲길인 내수전 석포 옛길은 그 옛날 폭풍우로 배가 출항을 할 수 없을 때 이용하던 산길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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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전 석포 옛길을 가기 위해 섬목도선장 인근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렸다. 이곳에 서면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다. 울릉도 3대 비경 중의 하나인 관음도와 죽도 일대의 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수전 석포 옛길은 4.4km의 흙길로 숲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길이다.
 내수전 석포 옛길은 4.4km의 흙길로 숲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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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숲길인 내수전 석포 옛길은 그 옛날 폭풍우로 배가 출항을 할 수 없을 때 이용하던 산길이다. 완만한 숲길인 이곳은 4.4km의 흙길로 숲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길이다. '울릉鬱陵'이라는 말은 '숲이 우거진 언덕'이라는 말이다. 그 빽빽한 숲의 진면목을 느끼려면 성인봉 산행과 더불어 이 옛길 만한 곳이 없다.

대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죽암마을 할머니
 대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죽암마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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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포장도로를 얼마간 걸어갔을까. 기대하던 숲길은 나오지 않고 밋밋한 시멘트길이 계속된다. 마침 할머니 한 분이 있어 내수전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할머니는 대나무를 부지런히 손질하고 있었다.

무얼 하시냐고 여쭈어보니 우데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우데기는 옛날 울릉도 전통 가옥의 외벽으로 종종 쓰였다. 요즈음은 대나무를 손질하여 집의 울타리를 만들거나 오징어를 말리는 건조대로 쓴다고 하였다. 간혹 오래된 집을 수리할 때 지붕 아래 서까래를 엮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할머니가 가리킨 대로 가니 이내 숲길이다. 언제 그랬냐 싶게 우거진 숲은 금세 하늘을 가려 어둑어둑하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옛길이다. 언뜻언뜻 죽도가 보이고 원시림으로 가득 찬 숲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언뜻언뜻 죽도가 보이고 원시림으로 가득 찬 숲길은 지루할 틈이 없다.
 언뜻언뜻 죽도가 보이고 원시림으로 가득 찬 숲길은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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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에서 함께 내린 다른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길을 걸었다. 숲길 중간 중간 물을 마실 수 있는 샘과 계곡이 있어 다리쉼을 하기에 좋다. 예로부터 울릉도는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다 하여 3무無 5다多의 섬으로 불렸다. 뱀이 없으니 산행의 위험도 없고 물이 많으니 목을 축이기에도 좋다.

울릉도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다 서서히 내보내는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물이 풍부하다.
 울릉도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다 서서히 내보내는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물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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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물이 많은 이유는 특유의 암질 때문이다. 물이 바로 빠지는 제주의 현무암과는 달리 울릉도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다 서서히 내보내는 화산암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수량이 풍부한 이 숲길의 계곡은 바다에 이르러 폭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염소가 있어 염소폭포 혹은 염막폭포라 불리는 한솔폭포가 그것이다.

‘울릉鬱陵’이라는 말은 ‘숲이 우거진 언덕’이라는 말이다.
 ‘울릉鬱陵’이라는 말은 ‘숲이 우거진 언덕’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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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다 조금 지칠 만하면 쉼터가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쉼터는 내수전과 석포의 중간쯤에 있는 정매화곡 쉼터이다. 정매화곡은 옛날 정매화라는 사람이 살던 외딴집이 있었던 골짜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울릉도에는 옛 주민의 이름이 지명이 된 곳이 몇 군데 있다. 내수전 또한 19세기 말 개척 당시 김내수라는 사람이 밭을 일구며 살은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정매화곡은 1962년 9월 이효영씨 부부가 삼남매와 함께 정착하여 1981년 이곳을 떠나기까지 19년 동안 거주한 곳이다. 부부는 이곳에 살면서 폭우나 폭설로 조난을 당한 300여명의 인명을 구조하고 허기진 이들에게 식량을 지원하였다. 그들의 미담을 기려 울릉군은 개척 100주년을 맞은 1982년에 이효영씨 부부를 선행 군민으로 표창하였다. 정매화골 쉼터는 그들 부부의 미담이 깃든 곳이다.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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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는 다양한 식생들을 만날 수 있다. 폭우로 쓸려간 흙 대신 남은 바위를 뿌리로 꼭 감싸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너도밤나무, 주민들에게 돼지풀이라 불리며 한때 사료로 사용되었다는 섬바디, 꽃이 여우 꼬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여우꼬리사초, 잎의 앞뒤가 헷갈리는 양면고사리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바위를 뿌리로 꼭 감싸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너도밤나무
 바위를 뿌리로 꼭 감싸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너도밤나무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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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매화곡 쉼터에서 흐르는 계곡은 와달리로 이어진다. 아쉽게도 와달리 가는 산길은 폭우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산죽 길을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짙은 상록수림이다. 동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 초록의 잎과 회색빛의 줄기, 황톳빛의 산길이 묘한 색채의 조합을 일으킨다.

동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
 동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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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이라 붉은 동백은 볼 수 없지만 열매는 더러 보인다. 동백열매를 까면 까만 씨앗을 볼 수 있는데 이것으로 흔히 말하는 '아주까리' 동백기름을 만든다. 울릉도에서는 이 동백기름으로 70년대까지만 해도 등잔불을 켰다고 한다.

숲 사이로 죽도가 가까이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앞이 훤해진다. 긴 숲의 터널이 끝나고 내수전 전망대가 나왔다. 일출로 유명한 내수전 전망대를 오른 후 저동항으로 향했다.

관음도와 죽도
 관음도와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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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팁 내수전 석포 옛길은 총 4.4km 정도의 숲길이다. 석포전망대에서 내수전 쉼터까지는 1시간 30분~2시간 정도 소요된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어린이도 무난히 걸을 수 있는 산길이다. 다만 산행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석포에서 출발하여 내수전으로 가는 길을 택하는 게 좋다. 내수전에서 석포로 가는 길은 긴 오르막이 있어 초행자가 걷기에는 약간 힘든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내수전옛길, #울릉 숲길, #내수전석포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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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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