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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정치인들이 취임 기념 혹은 취임 몇 일 기념으로 쓰레거 수거 봉사활동을 한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 12월 15일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아 서울 용산구 원효로 일대에서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정치인들이 취임 기념 혹은 취임 몇 일 기념으로 쓰레거 수거 봉사활동을 한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 12월 15일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취임 100일을 맞아 서울 용산구 원효로 일대에서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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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에 세 번, 도시 골목마다 쓰레기봉투가 쌓인다.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봉투들이 쌓이면, 골목을 가득 채우는 악취 때문에 그날이 '쓰레기 배출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서둘러 잊고 있던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온다. 그렇게 내놓은 봉투는 이튿날 아침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모두 잠든 심야, 청소차 소음과 함께 움직이는 '도시의 유령' 쓰레기 수거 청소 노동자들 덕분이다. 힘들고 냄새 나고 항상 사고 위험이 따르는 일임에도 이들의 삶은 '우리'의 관심 밖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똥도 튀고 염산도 뒤집어쓰고

정아무개(45)씨는 청소 용역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유명대학을 중퇴했고 사업체를 꾸린 적도 있으며, 청소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청소 일을 하던 도중 염산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휴직 중이다. 뭐든지 녹여버린다는 그 염산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염산을 뒤집어쓰게 됐을까?

지난 여름, 정씨는 평소처럼 쓰레기차에 쓰레기봉투를 던져 넣었다. 차량의 압축기가 빙글빙글 돌며 쓰레기봉투를 납작하게 눌러나갔다. 그 와중에 봉투가 터지며 뜨거운 것이 튀어나왔다. 워낙에 식당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일반 봉투에 섞어 버리는 일도 많고, 애기 똥기저귀가 압축기에 눌리며 똥이 튀어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일도 있다 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염산일 거란 생각은 못했다.

"처음엔 뜨거운 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옷이 타들어가는 거예요."

정씨는 염산을 머리부터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드러나 있던 맨살이 타들어가고 옷도 녹아내렸다. 안경도 녹았다.

"마침 안경 쓰고 있어서 눈은 안 다쳤어요. 안경도 녹았죠. (병원에서 본) 어떤 사람은 똑같이 질산을 뒤집어 썼는데 실명했어요. 안경 안 써서."

정씨의 몸에는 팔다리를 비롯해 어깨, 가슴 등 여기저기 화상 흉터가 선명하다. 허벅지에는 화상 자리에 이식 수술을 하느라 피부를 벗겨낸 흔적도 남아 있다. 머리카락을 들추고 보면 정수리에서 이마에 걸친 부분에도 화상 흉터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얼굴은 레이저 치료를 해서 언뜻 보기에는 다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술을 마시면 빨갛게 변한다고.

화상, 돈 때문에 치료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 많더라

염산으로 인한 화상 자리. 온몸에 가득하다.
▲ 화상 염산으로 인한 화상 자리. 온몸에 가득하다.
ⓒ 윤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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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산재를 인정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1000만 원이 넘는 수술비는 회사에서 대줬다. 앞으로 2~3번 더 수술을 해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운이 좋다. 정씨는 병원에 누워 여러 화상 환자들을 지켜봤다. 심각한 화상을 입어 실려 왔다가도 억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그냥 돌아가는 걸 보면 가슴이 아팠다 한다.

"화상은 비급여가 많아요. 붙이고 바르는 약품은 보험 적용이 하나도 안 돼요. 수술 약품도 그렇죠. 많게는 60~70%까지 비급여예요. 회사 오너가 해주겠다 안 하면 치료 못하죠. 치료 못 받고 가는 사람 많더라고요. 인공피부 써서 수술하면 10억 가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정씨는 '10억이 필요한 환자일 경우 산재로 4억을 받는다 치면 나머지 6억은 비급여'라며, 회사에서 돈을 안 내줘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집 팔고 해도 안 되는데 어쩌겠어요. 그냥 병신으로 사는 거지."

전기에 감전되면 더 끔찍하다. 고압선을 다루다 보니 수십년 근속을 하다가도 한순간에 사망 아니면 중상이라고.

"화상은 100% 산재돼야 해요. 다리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전기 화상 입고 수술비 몇 억, 이거 집 팔아도 안 돼요. 그러니 포기하고 앉은뱅이 되는 거죠."

사고 빈발하고 목숨 위험하지만 급여는 차별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봉투를 담아 버리는 일은 부지기수. 가끔은 애기 똥귀저귀가 튀어나와 똥을 먹기도 한다. 사진은 한 쓰레기 수거 노동자의 모습.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봉투를 담아 버리는 일은 부지기수. 가끔은 애기 똥귀저귀가 튀어나와 똥을 먹기도 한다. 사진은 한 쓰레기 수거 노동자의 모습.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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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수거 청소 노동자들은 애매한 신분이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니다. 무기계약직이다. 민간 청소 업체가 구청에서 위탁을 받아 일하므로, 구청과 업체 사이에 계약 갱신이 이루어지 않으면 신분 보장이 안 된다. 일하는 환경도 나쁘고 사고 위험도 높지만 급여는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과 10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위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을 시작하는 건 보통 저녁 7시 이후이다. 각자 맡은 구역에 가서 청소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골목길에서 쓰레기봉투를 모아다가 찻길 옆에 내놓는다. 밤 11시부터 청소차가 지나가며 이것들을 싣는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묶지 않아서 쏟아지거나 구더기가 끓는다. 여름이면 팔에 달라붙은 걸 털어내도 한두 마리가 남아서 물기도 한다.

일반 쓰레기봉투에서 멸치액젓이 튀어나와 뒤집어쓰는 바람에 얼굴이 붓기도 한다. 애기 똥이 튀어나와 입에 들어간다. 이쑤시개, 게 딱지에 손이 찔리고 함부로 버린 유리 조각에 찍혀서 다치고, 압축기에 손이 절단된 사람도 있다. 재활용봉투에서 고양이 시체가 나와 깜짝 놀라기도 한다. 밤새도록 도시가 배출한 오물을 치우고 나면 새벽 5~6시. 씻을 곳이 없어 그냥 집으로 간다. 냄새가 떨어지질 않는다.

재활용품 수거 일도 결코 편하지 않다. 짐칸에 높이 쌓인 재활용품 위에 올라가 발로 밟다 보면 발을 다치는 경우도 많고, 전깃줄에 걸려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다 한다. 차량 뒤에 매달려 가다 보면 턱에 걸려 덜컹거릴 때 붕 떴다가 떨어질 위험도 아주 크다.

정씨가 어느 날 추위 속에서 재활용품을 발로 꾹꾹 다진 뒤, 집에 가서 신발을 벗으려 하니 안 벗겨지더란다. 억지로 벗겨내고 보니 엄지발가락에 유리 조각이 꽂혀 있었다. 신발 안에 피가 고인 채 굳어서 발이 안 빠졌던 것인데, 추위 탓에 감각이 없어서 다친 줄도 몰랐다는 것. 그렇게 한 달을 일하고 손에 쥐는 건 170만 원 남짓.

"청소 노동자들 월급 올라야 돼요. 저는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으니 하지, 가정 있으면 못해요. 다들 맞벌이하면서 힘들게 살아요."

갈비뼈가 부러져도 일을 쉴 수는 없었다. 눈이 내려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는 언덕길에서 리어카를 끌고 내려오던 정씨는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피하려고 벽에 부딪치면서 핸들에 가슴이 격돌해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졌다. 그래도 진통제 먹으며 일을 했다. 한 사람이 빠지면 일에 차질이 크기 때문이다.

"우린 그나마 나아요. 다른 데는 사람이 적어서 더 힘들어요. 회사가 이윤을 위해 인건비 줄이려고 적은 인원으로 가는 거죠."

명절이 되면 이들 청소 노동자들은 고역이다. 밤새 일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낮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3~4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일을 하러 나선다. 연장근로 개념이 없으니 휴일 수당 정도가 '특별 수입'의 전부다.

"평소에 (쓰레기 양이) 4차 정도라면 추석 같은 때는 1주일 전부터 6차로 늘어나요. 직전에는 10차쯤 되지요."

선물이 많이 오가는 시기라 배출되는 쓰레기 양도 상상을 초월한다. 명절이라고 남들 다 쉴 때, '민원'을 막기 위해 이들의 노동은 평소보다 고되다.

유리 조각은 신문에 싸서 버려주세요

주민에게 당부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구청에 할 말이 있단다.

"분리수거는 구청에서 협조해야 해요. 청소과에서 일주일만 돌아다니며 딱지 붙이면 좋아지거든요. 주민들과 많이 싸워요. 차에 싣고 있으면 와서 왜 안 싣고 가냐. 일반봉투에 음식물 버려서 안 가져간다. 그러면 몰랐다, 이번만 가져가라. 일반봉투에 음식물 1/3정도 넣는 건 당연하게 생각해요."

모든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이 담긴 말이다. 내친 김에 분리수거에 대한 설명까지 해줬다.

"우산천은 재활용이 안 되니 분리해서 버려야 하고, 카세트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도 재활용 아니에요. 유아용 플라스틱 자동차도 아니고, CD도 아니에요. 형광등 많이 나오는데 안 가져 가거든요. 주민들 몰라요. 구청이 홍보해야 해요. 변기시트도 플라스틱 아닌 스폰지 붙어 있어서 안 돼요. 그거 안 붙어 있으면 괜찮아요. 이불도 안 되고. 이불은 고엽제전우회에서 수거해요. 깨진 유리도 재활용 아니에요. 신문지에 싸서 쓰레기봉투에 넣어야 해요. 구청 역할이 크죠."

아뿔싸!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려고 잔뜩 쌓아둔 CD가 생각났다. 플라스틱이라고 다 플라스틱이 아닌가 보다. 참 많이 배웠다. 주민 여러분, 쓰레기 버릴 때 치우는 사람 잠시만 생각해 주시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소, #노동자, #염산, #서울시, #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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