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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이야기

토요일 오후 모처럼 고등학교 동문들끼리 기분 좋게 술 한잔했다. 오랜만에 만난 것은 좋았지만 반가움에 술이 과해지자 감정도 격해진 것이 문제였다. 별일 아닌 것으로 논쟁이 벌어지자 학창시절부터 말보다 주먹이 먼저 앞서던 A는 결국 또 폭력을 사용했고 주먹에 턱을 맞은 나는 이가 잘 안 물려서 응급실에 갔다. 그곳에서 턱이 부러졌다는 말을 들었다. 놀란 와중에 술이 깬 A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 치료비고 위자료고 다 줄 테니까 친구끼리 좋게 해결하잔다. 다른 친구들 이목도 있고 친구끼리 싸운 거 가지고 경찰 부르기도 좋지 않을 듯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상해로 처리하면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기에 그냥 넘어져서 그런 거라고 의사한테 얘기하고 건강 보험 처리하기로 했다. 수술하고 위턱이랑 아래턱을 한 달간 묶어놔서 죽만 먹느라 죽을 고생했지만 그래도 후유증은 안 남는다니 정말 다행이다.

자 이제 병원비랑 위자료 정산할 시간인데... 이 놈 보게? 언제는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치료비에 고생한 위자료 다 주겠다던 놈이 내놓는 돈이 딱 40만 원? 수술비·입원비·통원 치료비도 안 되는 돈이다. 돈도 돈이지만 이 놈 하는 수작 보니까 너무 괘씸해서 못 넘어가겠다.

늦었지만 경찰서 찾아가서 사건 접수했더니 상해진단서 끊어 오란다. 병원에 찾아가서 상해진단서 끊어달라니까 이미 건강보험 처리가 된 건이라서 상해 진단서는 못 끊어주겠단다. 일반 진단서 가지고 가봐야 어차피 큰 효력도 없을 것 같고 보험 공단 속인 것 들통나면 나도 켕기는 구석이 있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해서 결국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보험에 대한 기본적 지식부터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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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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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합법적이고 가장 오래된 도박은 무엇일까? 경마? 주식? 정답은 보험이다. 일정 기간 안에 사람이 사고를 당할지 당하지 않을지에 거는 도박. 케이블 TV만 틀면 온갖 사보험 광고가 홍수를 이루는 요즘이지만 보험에 가입해도 막상 일이 생겼을 때 기대한 만큼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사고 없이 무사히 매일을 사는 것이 최고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당했다면 당연히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법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보험회사 역시 자기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 소비자를 위해 찾아와서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는 건강 보험을 비롯한 질병과 관련된 보험에 대해 알아보겠다. 질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비를 보상해 주는 보험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국민건강보험

단순한 보험이라기보다는 국가에 의한 복지 시책으로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는 국민건강보험과 직간접적으로 통제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질환에 보험 공단이 일정 부분을 부담해서 환자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공단과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2:1 정도이다.

건강 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의료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는데 먼저 치과 보철, 미용 목적의 성형 수술 같이 술식에 따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 하나는 질병의 원인에 따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 해당하는게 산업재해, 교통 사고, 상해 등이 있다. 앞으로 '비보험 진료'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 텐데 이것 역시 건강 보험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진료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2. 산업재해 보험, 자동차 보험

가입자가 선택해서 가입하는 특징을 제외하고는 보험 진료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과 여러가지가 유사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본인 부담금+보험사 부담금을 전부 환자에게 내도록하고 보험사에 청구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단 자동차 보험은 비보험 진료를 보장하는 방식이 기타 사보험과 유사하다.

3. 기타 사 보험

케이블TV에 나오는 광고들이 대부분 여기 해당한다. 특정 금액을 매월 납부하면 의료를 받을 때 '보험 약관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국민건강보험에서 취급하지 않는 비보험 진료를 대상으로 한다.

이 정도면 보험 관련 용어는 대략 이해했으니라 보고 다시 환자 이야기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친구끼리 술 한잔 하다가 싸우는 일은 흔한데 한쪽이 꽤 큰 부상을 입은 경우 해결이 좀 난감해진다.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명확한 정보가 없기에 당사자들끼리 해결하기도 쉽지 않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무작정 경찰을 불러서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닌 듯하고.

'어떻게 다쳤느냐'가 중요하다

이가 완전히 빠진 상황 빠진 치아를 주워서 가능한 빨리 응급실로 가야한다.
아래 사진과 같이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으면 치아를 살릴 가능성이 올라간다.
▲ 이가 완전히 빠진 상황 이가 빠진 치아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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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 몇 주가 나오면 구속이라더라", "나는 어느 정도 다쳤으니까 몇 주가 나올 것이다"하는 식의 형법적인 상식은 있더라도 다쳤을 때 가해자에 대한 보복보다 급한 것은 피해자의 진료다.

외상을 입은 환자가 오면 의사가 제일 먼저 묻는 것 중에 '어디를 다쳤냐'도 있겠지만 '어떻게 하다가 다쳤느냐'도 있다. 어떻게 하다 다쳤느냐에 따라 환자가 낼 비용의 차이가 생기고 향후 받을 수 있는 보험혜택도 큰 차이가 있다.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한 장 찍으면 대개 5000원 정도 내는데 이때 공단에서 1만 원 정도 부담해서 병원에 내는 돈이 약 1만 5000원 정도다. 이건 대한민국 어느 병원에서나 마찬가지다. 비싸게 받아도 싸게 받아도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1차, 2차, 3차에 따른 수가 차이는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그런데 비보험(상해)으로 처리할 경우 엑스레이 한 장은 2만~3만 원으로 비용이 올라간다. 비보험 진료에 비해 건강 보험 진료가 저렴한 것은 실질적인 진료 수가보다 낮은 수가를 받도록 강제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켈링을 꼽을 수 있다. 스켈링은 현재 예방이 아닌 치료를 위한 경우에만 건강 보험이 적용되는데 비보험으로는 6만~8만 원 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보험이 적용되면 환자 부담금 1만 원과 공단 보조금 2만 원 정도로 수가가 떨어진다.

건강보험을 적용 받을 때와 받지 못할 때 개인 부담금의 액수만 비교한다면 5000원과 3만원이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이 정도인데 수백만 원 하는 수술이라면 그 차이 역시 어마 어마해진다.

여기서 가해한 친구가 상해로 하면 비싸니까 넘어져서 다쳤다고 하라고 간청한 첫번째 이유를 눈여겨 보자. 건강 보험의 혜택을 받은 진료와 그렇지 못한 진료의 비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산업 재해나 자동차 사고 보험은 강제 수가가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총진료비는 건강 보험과 큰 차이가 없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100% 부담하라고 하지만 어차피 보험사에게 청구 가능한 금액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생각하면 되겠다.
결국 강제 수가를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는 상해만 남는 것이다.

병원에서는 흉기에 의한 외상이 아니라면 환자가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면 대부분 그대로 인정한다. 다친 사람을 놓고 사고 원인을 수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해자는 어떻게든 상해가 아닌 사고로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닌고 저렇게까지 사과하는데 들어주면 어떠냐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에 두 번째 함정이 있다.

상해를 사고로 속일 경우, 피해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일단 건강 보험 가능 환자로 접수가 되고 진료 차트에 기입되면 해당 건에 대해서는 상해 진단서가 나갈 수 없다. 상해진단서는 말 그대로 상해시에만 발급되는 진단서로 독자 여러분들이 잘 아는 '전치 몇 주' 개념이 들어가는 유일한 진단서다.

상해시를 제외한 경우는 일반진단서가 발부되는데 사실 법적으로 진단서의 효용은 양쪽 다 똑같다. 하지만 건강 보험으로 진료 받은 환자의 초진 차트에는 '넘어져서'라는 말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환자가 발부 받을 진단서에도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넘어져서'라는 말이 포함된 진단서라고 해서 폭행이나 상해죄를 증명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식으로 발부받은 상해진단서에 비해 여러 가지로 번거롭고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다른 병원 가서 발부 받으려 해도 타병원에서 초진을 받은 환자가 진단서 발부를 요구하면 해당 의사는 초진 기록을 복사해 오라고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 건강보험 보장을 위해 상해 사실을 숨겼으나 나중에 가해자가 약속했던 보상을 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보상을 강제하기 어렵다. 상해를 사고로 속이고 진료를 받을 경우, 그 이익은 가해자에게 돌아간다. 대신 피해자는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해든 교통사고든 외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초진하는 의사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일단 차트에 기입한 내용은 후에 환자가 아무리 요구하더라도 의사는 좀처럼 고쳐주지 않는다. 더욱이 진단서는 한쪽에는 이익을 다른 한쪽에는 손해를 입히는 일이기에 의사 역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허위 진단서임이 판명날 경우 최악의 경우 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

당장 가해자와 상대가 어색해질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사보험의 보장과 관련된 부분을 사례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다.

덧붙이는 글 | 해당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중복게재입니다.

http://blog.naver.com/blues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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