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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뭐, 그냥 생긴대로 사는 게 좋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손으로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어 올린다. 지난 12월 26일 기자와 오랜만에 마주앉은 장 교수는 '헤어스타일을 바꿔보는 것은 어떠냐'는 질문에 웃으면서도, 금세 정색하고 만다.

 

장 교수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질문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를 통해 한 시민이 보내온 것이었다. 이번 인터뷰에 앞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장 교수에게 묻고 싶은 것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더니, 장 교수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 독자들이 선생님의 일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다.

"어휴, 일상은 무슨…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장 교수는 자신의 일상이 평범한 40대 가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다소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고 보니, 기자가 장 교수와 지난 2003년 5월 첫 인터뷰 이후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의 일상이나 개인 관심사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2003년 5월 인터뷰 "총체적 방향성 상실에 정책 진공상태"). 당시 헤어스타일이나 8년여 지난 지금도 거의 그대로다.

 

- 그동안 많은 책들을 내셨는데, 글은 주로 어디서 쓰시나.

"대개 밤에, 집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좀 야행성(인간)이라서…(웃음) 밤에 집중이 잘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꼭 밤에만 쓰는 것도 아니다."

 

- 주로 밤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대체로 그렇지만… 어떤 때는 학교 연구실에서 쓰기도 하고, 비행기 타고 어디로 움직일 때도 쓰기도 하고… 전천후로 쓰는 것 같다."

 

장 교수는 거의 대부분 책을 영어로 내놨다. 국내에서 발간된 그의 책 10여종 가운데 한글로 낸 책은 <개혁의 덫>과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 2권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영어로 쓰거나 우리나라 말로 쓰거나 속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또 20년 넘은 영국 유학과 연구생활에 영어 글쓰기가 더 편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대학 쪽에서 연구 성과를 평가할때 한국어 논문의 경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의 영어 사교육 시장 등 비이성적인(?) 교육 현실과 제도에 매우 비판적이다. 너도나도 영어와 대학 진학에 목매는 교육 현실이 너무 비효율적이며, 국가 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주장해 온 말이다.

 

장 교수의 아이들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

 

- 일부에선 '유복한 가정에서 영국 유학을 마친 그가 과연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옳냐'는 의견도 있다.

"(웃으면서) '너 역시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 공부 많이 하고 출세해놓고 밑에서 올라오면 안되니까….' 한마디로 내가 쓴 책 <사다리 걷어차기>와 똑같은 논리 아니냐는 건데 그건 아니구요."

 

그는 옛 소련의 후르시초프와 중국의 주은래가 만나 나눴던 대화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장 교수의 말이다.

 

"그때 후르시초프가 주은래한테 '너는 나랑 너무 다르다. 너는 유복한 집에 태어나 공부도 많이 하고 귀족적으로 컸지만, 나는 농민의 자식'이라며 비판했어요. 주은래가 듣다가 '우리가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출신 계급에 대한 배신자'라고….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환경이 어떻다고 해서, 그것이 제약이 돼서 그 계급의 대변자로 활동하면 (지식인으로서) 의미가 없지요."

 

다시 그의 말이 이어진다.

 

"제가 고등교육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고등) 교육 받으면 좋은 것이 있긴 하죠. 하지만 대학을 많이 간다고 해서 경제가 잘 될것이다?. 그런 증거가 없어요. 한때 스위스 대학 진학률이 OECD 국가들의 3분의 1 수준이었으면서도, 지금 제일 잘 사는 나라예요."

 

장 교수는 또 핀란드의 예를 들어가면서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국제 시험에서 핀란드와 1, 2위를 다툰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핀란드 아이들보다 공부시간이 2배 많다고 하더라"면서 "얼마나 비효율적이며 낭비적인가.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아이가 둘 있다. 베스트셀러였던 <나쁜사마리안들>에도 언급됐던 이들이다. 이번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도 잠깐 등장한다. 탈산업화 이야기를 쓰면서. 장 교수의 9살짜리 아들이 묻는다. "중국에서 만들지 않는 물건이 있어요?"라고.

 

- 이번 책에도 아이들이 또 나오던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을 쓰는데) 영감을 얻는 경우가 있다. 또 어른들은 못 보는 것을 보기도 한다. 옛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우리는 그냥 권위 있는 사람이 말하면 '맞겠지'라며 넘어가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정곡을 찔러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아무래도 일상적인 생활의 예시를 들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영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으니까, 마치 자신들과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면서 "아이를 키우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브라질 사람 등도 같이 경험하는 것이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 혹시 술이나 담배는.

"(고개를 흔들며) 술은 잘 못하는데…."

 

"페이스북 가입은 했지만 거의 못 들어가"

 

- 아무래도 학자시니까 책을 많이 읽을 텐데. 경제서적 빼고는.

"내 홈페이지에 몇몇 작가들을 써놓긴 했는데… 취미로 자주 읽는 책은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 같은 것들이다."

 

- 무슨 이유라도.

"재밌기도 하지만, 그런 소설들을 보면 대체로 그 나라, 시기의 계급이나 사회상이 그려져 있다."

 

장 교수는 요즘 스웨덴 출신 작가인 '헤닝 만켈'과 노르웨이 작가인 '요 네스고'의 작품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경제학자인 장 교수가 존경하는 학자는 누굴까. 그는 "왼쪽의 마르크스부터 오른쪽의 하이에크까지 두루 읽고 배웠기 때문에 누가 제일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자신의 연구에 영향을 많이 끼친 고 허버트 사이먼 교수를 꼽았다.

 

-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분 같은데.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저의 논문에 많이 인용된 분이면서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 정치학과 행정학뿐 아니라 경제학, 마지막엔 인공지능을 연구하다 돌아가셨는데, 참 특이하신 분이다."

 

인터뷰 말미에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현재 영문으로 돼 있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23가지>의 내용 가운데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부분과 연관 있을까. 장 교수의 답이다.

 

"아니에요. 우리 같은 사람은 인터넷의 발달로 엄청나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요. 페이스북은 처음에 가입은 했는데, 거기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서…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솔직히 제가 그것을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안 하는 거예요."

 

그는 "블로그도 안 하는데, 기왕 (소셜네트워크를) 하려면 성실하게 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고, 부실하게 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장 교수는 일부 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나, 다소 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도 특유의 말솜씨로 솔직하게 답했다. 자신과 관련이 없을 법한 분야에 대해서도 최대한 성의껏 답하려는 진지한 모습은 여전했다. 2003년 이후 그와의 10여 차례 넘는 인터뷰 때마다 느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태그:#장하준, #그들이말하지않는23가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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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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