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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한글 2.0과 2.1 정품 박스. 박스에는 10장이 넘는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와 사용설명서가 들어있었다.
 아래한글 2.0과 2.1 정품 박스. 박스에는 10장이 넘는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와 사용설명서가 들어있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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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월말로 기억한다. 세뱃돈을 받아 주머니가 두둑했던 동생을 꼬드겼다. 재밌는 게임이 있는데 같이 돈 모아서 사자고. 동생에게 10만 원을 투자(?)받아 그길로 컴퓨터 가게로 달려갔다. 20만 원 가까운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은 게임이 아니라 아래한글2.0이었다.

난 두꺼운 매뉴얼과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들어있는 짙은 파란 박스를 들고 환호했다. 형이 '사기'를 친 사실을 안 동생은 다시 돈을 '물어내라' 했지만 다른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조건으로 무마했다. 드디어 오매불망 손에 넣길 원했던 아래한글 정품을 구입하다니.

중학교 졸업하던 때 삼보컴퓨터에서 나온 XT 컴퓨터를 15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구입해선 게임에만 열중했었다. 좀더 빠르고 쾌적하게 컴퓨터를 즐기기 위해 용돈이 생기는 대로 업그레이드에 올인했고 고등학교를 마칠 즈음 내 컴퓨터는 AT를 거쳐 386으로 진화했다. 게임기의 대체물이었던 컴퓨터가 유익하게 쓰인 건 단 하나 아래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이찬진씨가 발표한 아래한글1.0이 버전업을 거쳐 한창 컴퓨터에 빠져있을 무렵 1.5버전이 출시됐다. 한글과컴퓨터에서 1.0을 출시했을 때 가격은 4만7천 원이었지만 정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컴퓨터가 있는 곳에 아래한글이 있다고 할 정도로 나오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만 불법복제해 사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컴퓨터 가게들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곳은 가장 많은 불법복제 프로그램과 게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최신 게임이 출시되면 발빠르게 용산에서 지방으로 불법복제된 게임이 유통됐다. 단골 컴퓨터 가게에는 업데이트된 불법복제 게임 리스트가 놓여있었고, "OO번 주세요"라고 하면 뒷방 서랍에서 플로피디스크를 꺼내 바로 '구워' 판매했다. 486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하드디스크는 가격이 워낙 비싸 쉽게 구해서 쓰기 힘든 물건이었다.

불법복제 리스트에서 건진 아래한글1.5

아래한글2.1 정품 디스켓. 320Kb 용량의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13장의 '엄청난 양'이다. 디스크를 넣었다 뺐다하며 설치할 때는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래한글2.1 정품 디스켓. 320Kb 용량의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13장의 '엄청난 양'이다. 디스크를 넣었다 뺐다하며 설치할 때는 항상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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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밤샘하며 즐겼던 루카스필름 게임스(스타워즈와 인디아나존스의 제작자 조지 루카스가 만든 바로 그 회사가 맞다) 명작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¹도 6장짜리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에 담겨있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다른 디스크를 넣으라는 메시지가 떴다. 뺐다 끼웠다를 반복하다보면 디스크가 망가지는 것은 당연지사. 다시 '굽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컴퓨터 가게로 향해야 했다.

3일 이내에 복제한 게임에 문제가 생긴 경우엔 플로피디스크 값만 받았는데, 여기에도 3M이냐 SK냐 옵션이 존재했다. 당연 안정성이 뛰어난 3M 플로피디스크는 값이 훨씬 비쌌고, SK 제품은 저렴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헛걸음을 줄이고 더 오랫동안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군것질이나 다른 씀씀이를 줄이더라도 3M을 써야만 했다. 당시 가장 큰 목표는 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MB 하드디스크드라이브의 가격은 30만 원이 넘었었다. 아래 글은 <매일경제> 1995년 10월 15일자.

"지난 91년만 해도 20MB-40MB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가 주종을 이뤘으며 당시 대용량이라고 해야 360MB 또는 400MB 정도였다. 이보다 앞서 PC가 처음 선보였을 때는 5-10MB 하드디스크드라이브도 대용량으로 불렸다."

XT 시절만 해도 플로피디스크의 용량은 640KB에 불과했고, AT 컴퓨터가 대중화된 1990년대 초반에서야 비로소 1.2MB 플로피디스크가 보급됐다. 20년 사이에 컴퓨터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플로피디스크는 퇴출된 지 오래고 이제 1TB급 하드디스크도 10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단골 컴퓨터 가게에서 게임 대신 구해왔던 아래한글1.5로 수많은 문서 작업을 했다. 좋아하는 책 구절을 옮겨 적는 일은 기본이고, 열심히 활동하던 불교학생회의 회칙과 절에서 사용하던 철필이나 타자기로 만들었던 수많은 서식들을 아래한글로 옮겨 '디지털화'했다. 완성된 문서를 "찡~찡~" 엄청난 소음을 내며 도트 프린트²로 출력하는 재미는 밤샘하며 게임의 최후 보스를 쓰러트리는 일보다 짜릿했다.

공부는 뒷전이요, 영양가 없는 문서 작업에 올인했던 시절이었다. 아래한글1.5에 꽂힌 후 버전업이 될 때마다 불법복제해 사용하길 거듭했고, 완벽하게 성능이 버전업된 아래한글2.0이 나왔을 때는 그동안 공짜로 사용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정품을 사리라 마음을 먹었던 터였다.

1998년 최대 위기, 아래한글 살리기 운동으로 이어져

한컴오피스97 사용자 설명서와 사용권 증서. 한컴오피스97이 나온 후 한글과컴퓨터는 자금난에 시달렸다. 불법복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한컴오피스97 사용자 설명서와 사용권 증서. 한컴오피스97이 나온 후 한글과컴퓨터는 자금난에 시달렸다. 불법복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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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한글은 유일한 경쟁자였던 MS워드보다 훨씬 강력한 기능을 보여주었고 '국민 워드프로세스'로 자리잡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아래한글이 개발되기 이전에 나왔던 삼보컴퓨터의 '보석글'과 금성(현재 LG)에서 만들었던 '하나워드'는 아래한글이나 MS워드에 비해 사용하기가 불편했고, 주로 관공서에서 사용했다. 아래한글의 성공에 자극받은 삼성이 1992년 '훈민정음'을 발표하기도 했었지만 아래한글과 MS워드에 밀려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래한글2.0은 출시되자마자 두 달만에 3만개가 팔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글문화원 건물 4평 남짓한 방에 세들어 후배들과 함께 한글과컴퓨터를 세운 지 4년, 이찬진은 아래한글2.0의 성공으로 1993년 매출 100억 원의 신화를 세운다. 이찬진은 V3를 개발한 안철수와 더불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디딤돌의 놓았지만 아래한글의 성공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불법복제 때문이었다. 정품을 구입했던 사람들도 이후 아래한글2.0 버전 이후 출시된 정품을 구입하는 데는 인색했다. 반짝 성공을 거뒀던 아래한글은 이후 계속 위기를 겪었다.

가장 큰 위기는 1998년 찾아왔다. 당시 한글과컴퓨터는 100억 원이 넘는 단기부채에 시달렸고, 이찬진 대표는 자금난에 굴복하고 아래한글 포기 선언을 한다. 불법복제와 MS의 파상공세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1998년 6월 15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MS 코리아와 한글과컴퓨터 공동 기자회견의 내용은 한글과컴퓨터가 아래한글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 MS 코리아는 한글과컴퓨터에 2천만 달러를 투자하는 것이었다.

IMF 체제에서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은 사랑받던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 한글과컴퓨터가 글로벌 공룡기업 MS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공동기자회견 이후 한글과컴퓨터를 살리기 위한 '국민운동'이 벌어졌다. 아래한글 정품 구입 붐이 다시 일었고 한글학회 등 15개 사회단체가 앞장선 국민주 모금 운동까지 호응을 얻었다³.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투자로 상처를 입은 한글과컴퓨터는 쉽게 홀로서기를 할 수 없었다. 2000년 이후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외국계 회사에 최대 지분이 넘어가기도 하고, '한글'을 몇 마디밖에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 CEO를 맡기도 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한글과컴퓨터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2010년 12월 16일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가 밝힌 상장사 중 횡령배임액이 가장 많은 회사 1위가 한글과컴퓨터였다는 사실에서 바로 드러난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시대, 기로에 선 스무 살 아래한글

한글과컴퓨터 홈페이지.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한컴 오피스 2010을 출시했다.
 한글과컴퓨터 홈페이지.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한컴 오피스 2010을 출시했다.
ⓒ 한글과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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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같은 날 한림공학원이 '지난 60년간 300배 경제성장 이끌어온 100대 기술'로 아래한글을 선정했는데, 이는 한글과컴퓨터 뿐 아니라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아래한글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디딤돌을 놓았으나 소프트웨어 기업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은 양심불량 자본가들에게 휘둘려 휘청거렸다. 한글과컴퓨터, 아래한글의 미래는 현재로선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아래한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글 조차 이제 아래한글을 실행시키지 않고 인터넷으로 바로 작업이 가능한 클라우드 워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글쓰기를 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엔 정품이란 개념조차 모호하다. 이미 국내에만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포털 사이트나 거대 통신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찾아서 이용하면 된다. 정품이든 불법복제든 국민 대부분이 아래한글을 쓰는 시대가 계속 될 순 없다.

내가 가진 아래한글 5.25인치 정품 디스크와 박스는 이제 책장 구석 영화롭던 플로피디스크 시절을 추억하는 수집물로 남아있을 뿐이다. 세상에 나온 지 20년, 이제 아래한글도 새롭게 변화해야 할 때가 왔다.

1. 원제 <Secret of Monkey Island>. 1990년 출시된 이후 계속 버전업 되었으며 XBOX용까지 나올 정도로 오랜 세월 마니아들에게 사랑받은 명작 게임이다.
2. 당시 제일정밀에서 만들었던 JP3300을 사용했다. 도트프린트는 값싼 잉크젯 프린트가 보급되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순식간에 '퇴물'로 전락했다.
3. <한겨레21> 2009년 4월 17일자 '한글 잔혹사 20년' 참조.
4. 한글과컴퓨터와 관련된 횡령배임액은 316억원에 달한다.


태그:#한글과컴퓨터, #아래한글, #플로피디스크, #한컴오피스, #이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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