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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방송된 KBS 드라마 스페셜 <달팽이 고시원>은 일본소설 <와세다 1.5평 청춘기>와 약간의 유사한 지점 때문에 표절 시비도 있었지만 이는 '텍스트'에 관한 것일 뿐, '컨텍스트'(맥락)의 측면에서 본다면 논의할 점이 많은 작품이다.

언젠가는 꿈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 고시원 총무

대양고시원. 대양(大洋)이라는 뜻처럼 고시에 꿈을 꾼 청춘이 있을 듯 같지만 실제 투숙(?)객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루저들. 드라마 엑스트라, 별다른 이유없이 휴학을 하고 종일 게임기나 만지작거리는 학생, 그리고 본인의 이름보다 '11호'가 더 익숙해진 365일 체육복 아저씨.

이에 비해 고시원 총무 방준성(32세)은 방송국 PD 준비를 5년째 묵묵히 하는 나름 진지한 고시생이다. 3차 전형까지 합격하고 고지가 눈앞이다. 지금은 비록 고시원에 있지만 꿈을 위해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방총무는 달팽이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한다. 원래 바다에서 살았다는 달팽이는 비가 오면 본능적으로 꿈틀거린단다. 자기가 원래 살던 바다를 찾아서 가는 거란다. 비록 느릿느릿이지만 꿈을 향해 간단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고난을 극복하는 성공스토리 정도다.

재미있는 건 하나도 몰라도 '면접에 안 나오니' 괜찮다는 달팽이

달팽이처럼 바다를 향해간다고 믿는 방총무의 고시원에 미루라는 젊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전혀 달팽이처럼 살지 않는다. 전형적인 프리터족이다. 나래이션 알바, 전단지 알바, 프리허그 알바까지. 

중요한 것은 미루의 눈에 보이는 방총무의 달팽이 같은 삶이 정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입으로는 꿈을 위해서 간다고는 하는데, 그녀의 눈에 보이는 방총무의 삶은 도달 가능하지 못할 곳을 목표로 설정하고 (재미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재미없는 것만 많이 아는 인생일 뿐이다.

비빔면과 상추를 함께 먹으면 맛있는 것도 모르고, 요구르트는 뒤집어서 이빨로 끝을 물어뜯고 마시면 맛있다는 것도, 과자는 마지막에 부스러기를 통째로 입에 훌훌 털어야지 제 맛이라는 것도, 소주는 빨대로 마시면 빨리 취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방총무는 단호하다. "괜찮아. 그런 건 면접에 안 나오니까".

 KBS 드라마스페셜 <달팽이고시원> - 홈페이지에서 캡처
 KBS 드라마스페셜 <달팽이고시원> - 홈페이지에서 캡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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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미루가 말한다. "너 그러면 죽어서 사람들이 너 가슴 딱 열면 뭐 있는 줄 알아? 줄무늬 빤스 들어있어. 네 장에 만원하는 그런 빤스. 멋도 없고 재미도 없는..."

미루는 고시원 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전구를 언제나 켜 놓는다. 트리도 없지만, 번쩍번쩍도 아니지만, 그녀는 이 소소한 '반짝반짝'이 좋단다. 행복? 그런 것은 오줌이 마려울 때, 1분만 참았다가 가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란다.

방총무는 그런 미루가 좋아진다. 그러나 방총무는 고백을 못한다. 그는 미루가 방송국 PD가 될 자신과는 어떤지 어울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좋아는 하는데', 매순간 망설여진다. 자신 역시, 서로 좋아했지만 먼저 방송국에 아나운서로 합격해 재벌과 결혼하는 후배로부터 같은 아픔을 당했으면서 말이다. 그는 그 아픔을 '그렇게' 학습해서 활용한다. 이처럼 방총무는 사람의 껍데기를 보고 '사랑'이라는 가장 순수한 감정도 수위조절을 한다.

그렇게 바다를 향해 묵묵히 나아간다고 온갖 행복예찬론을 펼치면서도 방송국 면접에서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멘트를 하기에 급급하다. 그것도 '외워서'. 멋도 없고 재미도 없는 네 장에 만원하는 줄무늬 빤스 인생.

달팽이처럼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현재의 많은 20대들이 크리스마스가 오리라 믿는다. 그 날 번쩍번쩍 거릴 트리를 상상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도 "달팽이처럼 묵직하게 나아가자!"는 리뷰가 꽤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크리스마스가 '약속대로' 오면 좋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드라마의 삽입된 노래 옥상달빛의 <하드코어 인생아>가 이를 대변한다. "뭐가 의미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불쌍하지만 이 잘못된 사회 구조 안에서 달팽이는 백날 기어봤자 거기서 거기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그만큼 더 힘든 거다. 그래서 달팽이로 평생을 살아가는 거다. '언젠가 도달'하리라는 희망으로 온갖 '재미없는 인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최소한 좋은 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아니겠는가? 지금의 청춘은 이를 '포기'했지만, 그 어떤 결과물도 없다는 매우 독특한 세상에 살고있다. 비극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주에 발행된 <동덕여대 학보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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