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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7. 17.)~다섯째날(7. 19.) 

떠난 이유.
몸과 마음이 아팠다.
몸이 아픈 건 사고였고, 마음이 아픈 건 몸이 아파 생긴 결과였다.
몸도 마음도 어느 하나 아플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으니, 준비하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하긴, 사는 일이란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의 반복 아니겠느냐.
그럼에도 나의 잘못이란 나뭇잎 하나를 흔드는 바람 조각만큼도 없었으니, 억울함은 폭풍 같았다.

일몰 금능해수욕장에서 본 해지는 풍경
▲ 일몰 금능해수욕장에서 본 해지는 풍경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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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잠들거나 깨는 일을 반복했고,
아내와 싸우거나 역시 잘못없는 아내가 딱해 보듬기를 거듭했다.
여기서 저쪽 세상으로 나가는 일이란 달걀 껍질보다 얇은 벽을 깨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이 되었다.
한동안은 모두가 나의 심정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응원과 지지만을 바랐건만, 세상은 남의 일에 뜨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금방이었다.
그늘진 방에만 머물러 있기를 반복했다.
가방 하나 둘러메고 외출하는 일조차 흥미를 잃었었다.

해지는 풍경 금능리해수욕장
▲ 해지는 풍경 금능리해수욕장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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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세상이 흑백으로 보였다.
천연색이 아닌, 검은색과 회색으로만 세상이 보였다.
그렇게 보이는 세상도 문제없이 잘만 굴러가더라.
길 가는 이를 붙잡고,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 것 같아요! 하소연하고 싶어도 결국 나만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건 내가 서 있는 여기는 천연색이었다. 빨강과 파랑, 보라색과, 노랑 등 온갖 색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게 더욱 이상하고 공포스러웠다.
내게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근데, 세상은 문제 없이 굴러가다니.
두 종류의 색이 존재하는 거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기를 반복했다.
회식하러 가는 직장인 무리,
데이트를 하는 연인,
집을 가는 학생들,
모두 흑백으로 보이는 그들을 응시하며 서럽게 외로웠다.
그만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주책스런 짓 하기 싫어 서둘러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일몰 금능리해수욕장
▲ 일몰 금능리해수욕장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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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의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억울했다.
화나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껍질을 깨고 싶어 바둥거렸다.
요리를 배우고,
약속이 없어도 책 한 권 들고 카페를 찾고,
또는 일부러 약속을 만들고,
혼자 산에 가고,
관심도 없었던 고추 모종을 사와 화분에 심고,
고구마도 심어 키워보고,
새벽엔 수영도 다니고,
혼자 영화도 보고,
집안 청소를 하고,
사업구상을 해보고,
블로그를 새로 꾸미고.

아침 바다 아침에 바다에 나가보니 바다 색깔이 또 달라졌다. 이쁘기만하다.
▲ 아침 바다 아침에 바다에 나가보니 바다 색깔이 또 달라졌다. 이쁘기만하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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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떠나온 여행이다.
불현듯 떠오른 여행이다.
떠나기 이틀 전에 비행기 티켓을 끊고,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떠나온 여행이다.

무엇보다 걷고 싶었다.
운동은 질색인 내겐 매우 예외적인 경우다.
아내와 떠났던 두 달 동안의 걷기 여행 때도 매일매일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만 했던 나다.
오랜 시간은 아니기에 아주 많이 걷지는 못했다.
그중 이틀은 쉬엄쉬엄 걷고,
삼일은 대견하게 걸었다.

한림항 제주도 한림항. 여기서 점심을 먹었어야했는데 그냥 지나친 게 실수였다.
▲ 한림항 제주도 한림항. 여기서 점심을 먹었어야했는데 그냥 지나친 게 실수였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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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니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파란색이고, 바다는 시간마다 색을 달리한다.
나무는 초록색이고, 돌은 검은색이다.
사람은 사람색이고, 햇빛은 쨍하다.
시간은 나를 외롭게 하지 않고,
길에서 만난 이들은 내게 무관심하지 않다.

한림항 바다에 만들어 둔 솟대
▲ 한림항 바다에 만들어 둔 솟대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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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여행이란 매우 힘든 일이다.
날씨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아야하고,
먼 길을 오로지 한 발, 한 발로 움직여 이동해야 한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당연히 속도는 느리고, 체력은 금세 바닥난다.
여행중 필요한 짐은 모두 어깨에 짋어져야하고,
길을 잃지 않을까 항상 주의해야한다.
여행의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여행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걸어서 이동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전거나 스쿠터,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자도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고, 말이나 소를 타고 여행하는 이도 있다.
길위에 절을 하면서 여행하는 자들도 있다.
경운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본 적도 있다.
어떻게 이동하는 게 옳은지 다투는 건 의미없는 일이다.
자기가 만족스런 방법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여행을 떠난다면 걸으려한다.
걸을 때 잡념이 사라진다.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당장 아픈 다리게 제일 고민이고, 흐르는 땀방울이 귀찮기만하다.
그러다 가끔 시골길에서 만난 어르신들깨 인사하는 일도 행복하다.
대부분, 이 더운날 뭔 고생이랴 하는 표정이다.
그럼에도 찬물이라도 부탁하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보리차 한 통을 건넨다.
마을 어귀에 있는 500년쯤된 나무 그늘에 쉬는 것도 걷는 여행의 특권이다.
골목에서 만난 동네 똥개와의 눈싸움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등대 귀덕리 등대
▲ 등대 귀덕리 등대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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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허락해줘 제주도에 하루 더 머물고 있다.
내일 서울로 향한다.
서울에 내렸을 때는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걸어온 길 저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왔다. 주로 해안도로를 걸었다. 바다를 보며 걸으니 심심하진 않았다. 너무 더워서 뛰어들고 싶었다!
▲ 걸어온 길 저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왔다. 주로 해안도로를 걸었다. 바다를 보며 걸으니 심심하진 않았다. 너무 더워서 뛰어들고 싶었다!
ⓒ 이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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