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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이다. 계절에 따라 '공포'를 앞세운 소설들이 서점가에 등장하고 있다. 공포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호러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들 사이에서 한 권의 책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김종일의 <삼악도>다. 작가의 이름 때문이나 표지 때문에 눈에 띄는 건 아니다. 한국 작품이기 때문이다.

<삼악도> 표지
 <삼악도> 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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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이 무슨 대수로운 일일까 싶지만, 특별한 일이 맞다. 해마다 장르소설이 쏟아져 나오지만, 한국 작품은 드물다. 그중에서 SF소설과 공포소설은 더하다. '가뭄에 콩 난다'는 비유가 과장이 아니다. 아쉬운 일이다. 추리소설이나 SF소설에 비하면 공포소설은 한국적인 것을 바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기에 기대해 볼 만한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삼악도>가 갈증을 달래줄 수 있을까.

<삼악도>의 주인공 '오현정'은 학원 강사를 하던 중 장르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녀는 곧 전업 작가로 돌아선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야심이었지만, 그녀는 순진했다.

그녀가 겨우 출간한 첫 책은 서점의 구석에서라도 찾으면 다행일 정도로 흥행에 실패했다. 직업도 없고 청탁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학원을 그만둔 것이 실수였을까. 애초에 장르 문학을 쓰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회생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녀의 인생에 희망이 생긴 건, 어느 영화사의 연락이었다. 공포 영화를 만들어오던 영화사는 그녀에게 주목받는 신인감독의 데뷔작 각색을 맡아달라고 한다. 계약금은 1000만 원. 오현정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악마에게 영혼이라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수락했다. 그런데,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그 계약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계약 후, 감독은 오현정에게 섬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그곳에서 각색 작업을 마칠 때까지 나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감독은 오현정과 여자 스태프 한명만을 데리고 '삼악도'라 불리는 섬에 간다. 섬이라고 하면 좀 근사할 법도 한데, 삼악도는 뭔가 좀 이상했다. 어디선가 피 냄새가 불어오는,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분위기 때문일까. 침대 아래에서 여자의 머리카락들이 보이는가 하면 화장실 앞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서성인다. 초현실적인 '무엇'이다. 이상한 건 그런 것들을 오현정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현정을 닦달할 뿐이다. 글을 쓰라고, 좋은 글을 쓰라고 재촉할 뿐이다. 그런 곳에서 오현정은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느 순간, 그녀는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오기 전, 몇 명의 작가들이 이곳에서 글을 썼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들 중 누구도,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삼악도>가 공포소설의 면모를 갖추는 지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한국인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은밀한 공포다. 억울하게 죽은 여자 귀신이나 화장실 근처에서 보이는 그림자, 닭의 피 등 <삼악도>에 등장하는 것들은 '처녀귀신'이나 '홍콩할매귀신'처럼 익숙한 것들이라 거부감 없이 있는 받아들일 수 있다. 때문에 소설을 읽다보면 소름이 돋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일 게다. 흡혈귀나 늑대인간 등의 외래 귀신을 볼 때에는 느낄 수 없는 그것이 분명이 있는 셈이다.

소설을 만드는 서사의 힘도 돋보인다. '공포'적인 장면들이 아무 이유 없이 마구잡이로 출현했다면, 이건 '공포특급'같은 작품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삼악도>는 가난한 신인 작가를 시작으로 예술에 미친 영화감독을 중심으로 폐쇄된 섬마을을 배경으로 한국적 공포에 충실한데 그것들이 소설의 하나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한국 공포소설로서 눈여겨볼 지점이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예컨대, 소설의 후반부가 급하게 마무리된 감이 있다. 조금 서두른 느낌이랄까. 소설의 첫 부분부터, 빠르게 몰아치면서도 세밀함을 놓치지 않던 터라 그 부분이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작품의 전체적인 공포스러움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 작품으로는 드물게 나온 공포소설 <삼악도>는 '공포'소설 다운 면모를 마음껏 보여줬다. 이 정도 역량이라면 해외의 것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시시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 소설만큼, '공감'하게 만드는 공포소설도 드물 테니 말이다.


삼악도 - 三惡島

김종일 지음, 황금가지(2011)


태그:#김종일, #공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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