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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타다가 그만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져버렸다가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려 놓았다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최근 나온 이상옥 시인의 새 시집 <그리운 외뿔>(문학세계사 간)에 실려 있는 시 "간디" 전문이다. 간디는 소유의 집착에 빠지기 쉬운 순간에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하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가를 보여준다. 간디의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비움과 봉사의 철학을 알 수 있다. '간디' 대신에 누구나 독자의 이름을 올려놓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상옥 창신대학 교수가 새 시집 <그리운 외뿔>을 펴냈다.
 이상옥 창신대학 교수가 새 시집 <그리운 외뿔>을 펴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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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적 깨달음 속에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시들이다. 시 "어떤 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긍정적 세계관의 소중함을 노래해 놓았다. '며칠치 식수'에도 감사하는 '손톤 만한 생'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오지항아리에 작은 물고기 대여섯 마리 / 사오 리터 정도 되는 물 속에서 물칸나와 / 작은 고동 몇 마리와 어울려 살아간다 / … / 며칠치 식수에 불과한 물을 우주로 삼고 / 불평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손톱 만한 생 / 문득 문득 눈부시다"(시 "어떤 생"의 일부).

'지천명'에 들어선 시인은 끊임없이 '반추'(反芻)한다. 오랫동안 타고 다닌 승용차인 '구형 프린스'한테 감사하며 "오늘 아침에는 몸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침대는 제단이고 나는 제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컴퓨터 자판 글씨도 / 보이지 않고 / 신문 읽는 것도 그렇다 / 먼 데 것만 / 뚜렷하다 // 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다"(시 "시안(詩眼) 전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교 최초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 무소는 다름 아닌 인도코뿔소다 / 아프리카코뿔소는 뿔이 두 개지만 / 인도코뿔소는 정신의 뿔을 베어버리고 / 육체의 뿔 달랑 하나다 / 무리 짓지 않고 / 혼자서 길 가는 외뿔이다 // 아, 나는 너무 관념주의자다"(시 "그리운 외뿔" 전문).

시인은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갈등하는 관념주의자로서의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다. 시인의 정신은 인간사의 번뇌와 한계를 넘어 만유(萬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로 열려 있고, 어느 한 생각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계를 지향한다.

홍용희 문학평론가는 시집해설에서 "이번 시집은 그의 내면 풍경을 반사시킨 언어의 사진첩인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그의 시적 삶의 근원과 생리를 좀더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며 "그가 추구하는 시적 삶은 느리고 부드럽고 포용적인 현자의 예지에 대한 터득이 중심을 이룬다. 그는 직선적인 무한 경쟁과 투쟁의 현실 속에서 곡선의 겸허와 포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침의 동네 목욕탕은 적막하다 / 뜨거운 물을 끼얹으며 아랫도리를 씻는다 / 긴 세월을 용케 버텨왔다 / 쌩쌩거리는 대로를 건너 / 도심으로 밤에는 다시 / 산중으로 / 아마 한국전쟁도 거쳐 왔음직하다 / 눈빛이 교활하다 / 배에 길게 그어진 주름 / 옆구리살도 죽죽 늘어지다 // 밭끝을 조심스럽게 열탕에 담가보는 / 늙은 원숭이 한 마리"(시 "브리짓 바르도" 전문).

창신대 교수인 이상옥 시인은 순간적으로 영감이 떠오르는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시를 쓰는 '디카시(dica-poem)'를 2004년경부터 주창해 관심을 모았다. '디카시'는 지금은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디카시'가 아닌 일반 시를 담아놓았다. 이상옥 시인은 시에서 '풍경'을 강조한다.

"시란 말하는 회화이고 회화는 말하지 않는 시라고 했던가. 디카시는 말하는 회화와 말하지 않는 시가 서로 만나 부르는 이중창이다. 일종의 현대판 문인화인 것이다. 이번 시집은 '사물 속에 언뜻 드러나는 시적 형상'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디카시의 작업으로부터 '사람이나 사물, 혹은 에피소드 속에 언뜻 드러나는 시적 형상을 문자로 고스란히 옮기는' 작업에 치중했다. 전자가 외양의 열린 찰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내면의 닫힌 풍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경남 고성 출신인 이상옥 시인은 시집 <하얀 감꽃이 피던 날> <유리그릇> <환승역에서> <꿈꾸는 애벌레만 나비의 눈을 달았다>, 디카시집 <고성가도> 등을 펴냈다.


그리운 외뿔

이상옥 지음, 문학세계사(2011)


태그:#이상옥 시인, #시집 <그리운 외뿔>,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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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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