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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식당에서 신문을 보다가 지방대학 교수가 110억 원 유산을 서울대학에 기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1997년부터 부산에 있는 모대학에 근무하던 대학 교수가 암투병을 하다가 향년 53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하였다고 합니다.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른 삶을 마감한 이 대학교수는 1978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고, 학사와 석사를 마쳤습니다. 서울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그분은 곧이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6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듬해인 1997년부터 부산에 있는 모대학에서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듬해에 국내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었으니 실력도 있었고 운도 따랐던 모양입니다.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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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까지 이 대학에 근무하다가 건강문제로 교수직을 퇴직하였으며, 2009년에 구강암 판정을 받은 뒤 모교인 서울대를 찾아가 전 재산 '유산 기증'을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사후에 학교 발전과 후배들 교육을 위해 유산을 써달라'는 부탁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기부한 재산은 부모에게 물려 받은 부동산 등을 포함하여 모두 11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아마 결혼을 하지 않았고 직계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전 재산을 모교인 서울대에 맡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고인의장례는 서울대가 맡아서 치렀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한 일간 신문에 소개된 기사입니다.

기사의 내용만 놓고 보면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모교 발전과 후배 교육을 위해 110억 원이나 되는 적지 않은 유산을 기부하고 떠났으니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왜 하필 110억 원의 재산을 서울대학교에 기부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서울대학에서 공부한 것은 불과 6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한 것과 비슷한 기간을 부산에 있는 모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자신이 재직하였던 부산 소재 대학에 유산을 기부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하필 서울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하였을까요?

어쩌면 자신이 재직하였던 부산 소재 대학은 처음으로 그의 학문적 성과와 가능성을 인정해준 곳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국내 대학에 교수가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자신을 대학교수로 인정해 준 대학, 그리고 매월 꼬박 꼬박 급여를 지불해 준 대학, 뿐만 아니로 수년 동안 근무하면서 적지 않은 제자를 길러 낸 대학 대신에 서울대학에 전 재산을 남기고 갔을까요?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서울대학 학생들을 지원하여야 더 뜻있는 일이 된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아니면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공부한 서울대학 학생들이 지방대학 학생들 보다 더 큰 사회적 기여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신문기사만 읽어봐서는 이 분이 굳이 서울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하여야 할 만한 특별한 사연을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그런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면 분면히 기사로 소개되었겠지요. 그렇지 않은 것으로보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부모에게 상속 받은 재산을 포함한 전 재산을 후학을 양성하는데 기부한 그 뜻을 폄훼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서울대학을 못 나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 역시 학벌주의의 결과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 전 재산을 지방대학에 기부한 것 보다 서울대학에 기부하는 것이 뭔가 더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 된 것은 아닐까요? 

자신이 교수로, 스승으로 몸 담았던 대학, 자신이 제자들을 길러 낸 대학 대신에 자신이 공부하였던 서울대학과 후배들을 위해 전 재산을 남긴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주의 탓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대, #유산, #기부, #교수, #지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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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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