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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대식

모두가 환영하는 'FTA'가 있다.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고, 한국 소비자들은 친환경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FTA를 더욱 진전시키기 위해 7000명이 한 달 만에 1억6500만 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필리핀에 공장을 만들었고, 현지 농민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가동을 시작했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두를 위한 공정무역(Fair Trade for All)' 얘기다. 자유무역이 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고 농민을 포함한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데 반해, 공정무역은 공정한 가격을 통해 농민들의 삶을 개선시킨다. 또한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농민들끼리 힘을 뭉쳐 자립할 수 있게 만든다.

자유무역의 거대한 파고 앞에서도 공정무역을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숨 가쁘다. 지난 6~10일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은 필리핀 파나이 섬으로 향했다. 이들이 모금한 돈으로 지어진 마스코바도(설탕) 공정무역공장 가동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FTA로 경고방송이 난무한 서울 도심 일대와는 달리, 파나이 섬엔 축제용 음악이 흘렀다.

가난에서 희망으로 바뀐 마스코바도...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

8일 오후 파나이 섬 안티케 지역의 벨리손 시 외곽지역. 이곳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하얀 벽면과 빨간 지붕의 공장이 서있다. 안티케 공정무역센터 마스코바도 공장이다. 우뚝 솟은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130㎡ 규모의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달콤한 냄새와 함께 열기가 느껴졌다.

사탕수수를 짓이겨 얻은 즙을 7개의 큰 솥에 옮겨 담아 끓이고 있었던 탓이다. 오전 7시부터 5시간 동안 즙을 가열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 끝에 마지막 솥에서는 조청 같은 걸쭉한 액체가 남았다. 직원들이 대형 국자로 다른 곳에 퍼담은 뒤 30분간 뒤적이며 식히니 '마스코바도'가 눈 앞에 나타났다.

백설탕은 첨가물을 넣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화학적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이 제거된다. 하지만 마스코바도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설탕이기 때문에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마스코바도를 맛본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은 "달짝지근하고 백설탕보다 깊은 맛이 있다"고 말했다.

8일 오후 필리핀 파나이 섬 안티케 지역의 벨리손 시 외곽에 건립된 안티케 공정무역센터 마스코바도 공장에서 마스코바도 생산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8일 오후 필리핀 파나이 섬 안티케 지역의 벨리손 시 외곽에 건립된 안티케 공정무역센터 마스코바도 공장에서 마스코바도 생산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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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마스코바도가 생산된 이날 공장 주변에서는 마을 축제가 벌어졌다. 조합원 56가구뿐 아니라, 정치인들까지 모습을 보였다. 공장이 지어짐에 따라 더 질 좋고 더 많은 마스코바도가 생산된다. 더욱이 현재 50kg당 1200페소(3만1000원)인 마스코바도는 2000페소(5만2000원)의 공정가격으로 책정돼, 농민들의 수입은 크게 늘어날 터다.

사탕수수 소작농인 자넷 에스코티(30)씨는 공장을 보면 흐뭇해진다. 삶의 변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탕수수밭 농사로는 다섯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사탕수수 수확철인 12~4월에만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만질 수 있다. 숲에 있는 그의 대나무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가스 랜턴 하나로 밤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남편이 올해 여름 공장 건설에 참여해 일당을 받았다. 이 돈으로 6살인 첫째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에스코티씨는 "앞으로 조합원으로서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면,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좋은 기구들을 집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둘째와 셋째도 꼭 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마스코바도는 필리핀에서 가난을 상징한다. 마스코바도는 스페인어로 '알통'이라는 뜻이다. 밭을 자주 갈아야 하는 사탕수수 농사와 마스코바도를 만드는 과정이 고단한 탓이다. 또한 백설탕을 살 돈이 없는 서민들이 마스코바도를 주로 먹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설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제 공정무역으로 마스코바도는 희망이 됐다.

공정무역으로 나아진 삶... "자유무역으로 인한 위기 넘어설 것"

안티케 공정무역센터 공장은 파나이 공정무역센터의 5번째 마스코바도 공장이다. 파나이 공정무역센터 실무 책임자인 앙헬 팡아니만씨는 "1991년 설립된 파나이 공정무역센터는 이탈리아의 소비자협동조합인 CTM의 도움을 받아 1997년 첫 공장인 카마다 마스코바도 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생산량이 꾸준히 늘었다"고 밝혔다.

2010년 말~2012년 초 수확기에는 614톤의 마스코바도가 생산됐고, 2011년 말~2012년 초 수확기에는 생산량이 700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안티케 공장 설립을 통해 3년 동안 200톤의 추가 생산이 기대된다. 이 물량은 전량 아이쿱생협으로 수출된다.

현재 파나이 공정무역센터의 조합원은 모두 350가구다. 조합원들은 트랙터 등 농기구를 이용해 수확하고 현대화된 공장에서 품질 좋은 마스코바도를 생산할 수 있다. 이자 없이 돈을 빌릴 수도 있다. 마스코바도를 공정가격에 수출하면서 벌어들인 돈은 공정무역센터와 조합원들에게 일정 비율로 배분된다. 공정무역센터는 수익을 시설에 재투자한다.

7일 오후 필리핀 파나이 섬 안티케 지역의 벨리손 시 외곽에 건립된 안티케 공정무역센터 마스코바도 공장 조합원인 자넷 에스코티씨의 모습. 에스코티 씨는 "공정무역 공장에서 마스코바도를 생산하게 돼, 향후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7일 오후 필리핀 파나이 섬 안티케 지역의 벨리손 시 외곽에 건립된 안티케 공정무역센터 마스코바도 공장 조합원인 자넷 에스코티씨의 모습. 에스코티 씨는 "공정무역 공장에서 마스코바도를 생산하게 돼, 향후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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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이 공정무역센터 산하 카마다 농민협동조합원인 프리셀라 피사스코(58)씨는 공정무역의 혜택으로 삶이 크게 바뀌었다. 그는 "1991년 첫 가입 때는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지 못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자녀 6명을 모두 대학에 보냈고, 콘크리트로 지은 집에 텔레비전과 DVD 플레이어까지 있다"고 말했다.

파사스코는 "1ha의 사탕수수 밭에서 연 4만 페소(105만 원)를 번다, 다른 농민들보다 훨씬 많은 수익"이라고 밝혔다. 파나이 섬이 필리핀에서 2번째로 나쁜 61.8%의 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벌이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 섬에는 자녀를 초등학교에도 보내지 못하는 농민들이 수두룩하다.

파나이 공중무역센터 초대 실무 책임자인 시그프레드 데도르씨는 "자유무역의 흐름이 커지면 대기업이나 중간업자들이 수익을 독점했을 텐데, 공정무역을 통해 농민들의 삶이 나아졌고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며 "공정무역은 자유무역을 통해 만들어진 경제위기를 넘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마스코바도 공장은 한국과 필리핀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쿱생협 조합원 김말다(38)씨는 "이곳 공정무역센터 공장 직원들과 농민들이 깨끗하고 품질 좋은 마스코바도를 만들어주고,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은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마스코바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며 "생산자와 소비자 공생할 수 있는 이러한 공정무역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태그:#아이쿱 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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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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