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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박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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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이 부딪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우석훈 박사(경제학, <88만원 세대> 저자)는 서울시의 '가락시영 종상향 결정'을 둘러싼 논쟁을 이렇게 표현했다. '생태주의'와 '개발주의'(특히 아파트 공급론)가 충돌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날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우 박사는 "서울시가 결정한 '가락시영 종상향'은 생태적이지도 않고 경제적으로도 정의롭지 않다"며 "가락시영의 사업자가 삼성과 현대라는 점에서 결국 종상향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결정"이라고 거듭 날을 세웠다.

"가락시영 종상향, 대기업에 특혜 주는 것"

우 박사는 이미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글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가락시영 종상향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해왔다. 지난해 12월 21일자에서는 "가락시영 종상향으로 반은 토건족에게 먹혔다"고, 지난 3일자에서는 "부동산 뻥튀기는 박 시장이 갈 길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 박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박 시장을 토건시장이라고 표현한 적은 없다"며 "박 시장은 마을공동체나 생태공동체를 깊이 고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꿈꾸는 세상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박 시장을 향해 신뢰를 내보이면서도 가락시영 종상향 결정에는 핏대를 세웠다. 그는 "종상향은 토지지분을 가지고 용적률을 높여 일반분양을 늘리는 것"이라며 "자기 돈으로 집을 고쳐야 하는데 그 비용을 남한테 물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종상향은 아파트 뻥튀기다. 일반분양을 할 수 있는 아파트를 더 늘리는 것이다. 지구단위 계획이 바뀌어 업무지구로 지정된 것도 아닌데 종상향을 시켰다. 하지만 지금 가락시영을 종상향시켜줄 이유가 없다. 생태도시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재건축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가락시영이 2종 주거지역으로 지정돼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 법과 절차, 규정을 지키라는 것이다."

우 박사는 "가락시영 사업자가 삼성과 현대라는 점에서 종상향 결정은 이들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중소기업에서 하는 곳은 (종상향을) 안 해주고 대기업이 하는 곳은 종상향을 시켜주느냐?"고 지적했다.

"고밀도가 아니고, 에너지를 적게 쓰고, 교통도 혼잡하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한다. 높이 지으면서 (주택문제를) 해결할 거냐 높이지 않고 (정부가 아파트를) 매입해서 해결할 거냐의 문제다. 아파트 공급론자들은 고밀도를 주장한다. 난개발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밀도도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35층 고층이 올라가면 창문도 못 열어 전기값이 100만 원 가까이 든다. 종상향은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정의롭지도 않고 이렇게 생태적으로도 맞지 않다."

이어 우 박사는 "박 시장이 도시계획위원회에 어떤 신호(의견)를 안 줬는데 가락시영 종상향을 결정했다면 공무원들이 박 시장에게 허위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있고, 박 시장이 (종상향을 하라고) 신호를 줬다면 그것은 사회적 논쟁을 벌여야 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지난 2011년 12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앞에서 '서울시 재건축 종 상향 허용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지난 2011년 12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앞에서 '서울시 재건축 종 상향 허용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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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자신이 취임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검토해온 것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독립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검토해왔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반대하니까 그동안 통과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도 못 푼 것을 박 시장이 전격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그런 점들 때문에) 허위보고가 있었다고 본다. 그 허위보고를 박 시장이 믿은 것이다."

우 박사는 "박 시장이 그렇게 믿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뒤, "주위에 박 시장에게 조언해줄 만한 사람이 없으면서 박 시장이 고립된 것 같다"며 "시장 취임 초기에 (공무원 등이) 장난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취임 초기 (체제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 중요한 것들을 통과시키는 게 공무원들의 수법이다. 정신차리고 나면 만만치 않으니까 그냥 통과시켜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정책자문단을 보니까 (가락시영 종상향과 관련) 다른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또 박 시장은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 공동체, 인권 등은 잘 아는데 이 부분(도시개발문제)은 전문영역이 아니어서 숙지가 덜 됐다. 그 약한 고리를 공무원들이 파고들어간 것이다. 결국 박 시장이 (공무원 등에게) 먹힌 것 같다. 심지어 공무원들 사이에서 '박원순 시장 별거 아니더라'는 얘기가 나왔다."

"박원순 시장, 집주인 위한 정치 할 것인가?"

우 박사는 지난해 12월 21일자 <경향신문> 연재글에서 "박 시장이 김상곤의 길이 아니라 노무현의 길에 가깝게 가 있다"며 "이대로 가면 박원순도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관료집단에 학습당한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한미FTA를 추진했듯이 박 시장도 '시청 토건족'과 손을 잡고 '가락시영 종상향'과 같은 '토건주의 도시개발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우 박사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지방자치단체가 몇 군데 있는데 제일 성공한 사람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라며 "김상곤 교육감은 취임 초기에 어떤 결정도 안 하고 논의를 많이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민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을 호명하며 박 시장과 대비시켰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토건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버티고 있다. 재정 부족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무원들에게 먹히지 않고 적절히 견제하면서 의외로 잘하고 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공무원들의 마음을 샀다. 정책 측면에서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공무원이 김 지사를 좋아할 정도로 공무원과의 친밀도가 높다. 그런 점에서 김 지사만의 독특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토건정치인인 이광재 전 지사의 그늘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어 우 박사는 "그런 식으로 유형 분석을 해보면 박 시장은 노무현 스타일에 제일 가깝다"며 "이런 상태로 1년 가면 완전히 실패할 수 있어서 거친 방법이지만 (<경향신문> 연재글을 통해) 한번 제동을 걸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우 박사는 "서울시정사를 쓰게 된다면 현재까지 고건 시장이 제일 잘했다고 기록할 것 같다"며 "고건 시장이 담을 허물고 꽃길을 만들고, 주차장을 정비하는 사업 등을 펼치면서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나는 박 시장이 재선에 성공해서 연임하길 바란다. 박 시장이 두 번 하니까 살기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고건 시장보다 더 좋은 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기대가 없었으면 (비판)글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도시계획위원회에 권한을 위임했고, 그 권한이 잘 행사되고 있는지 살필 위치에 있다. 종상향 같은 중요한 일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급한 일이 아니다. 사업자가 급하지 시장이 급한 게 아니다."

우 박사는 "문제가 생겼으면 수습을 해야 하는데 그런 수습과정이 없는 게 안타깝다"며 "어쩔 수 없었다고 얘기하지만 (가락시영 종상향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거듭 공론화를 강조했다.

"그렇게 사회적 논의를 하는 것이 시민의 정부다. 여러 명이 고민하면 늦고 귀찮더라도 오류가 줄어든다. 그런데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길에 중요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제 시민의 정부를 만들자는 얘기를 어떻게 하나? 작은 문제 같지만 이것을 해결하고 갈 거냐, 아니면 시장이 밀실에서 공무원들에게 둘러싸여 결정하는 방향으로 계속 갈 거냐? 시장, 일부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결정해 버리면 우리가 왜 정권을 바꾸냐?" 

특히 한미FTA나 가락시영 종상향이 모두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치명적 사안'이라는 것이 우 박사의 생각이다. 이는 '노무현의 길'이라는 그의 지적과도 통한다. 

"가락시영의 30%가 집주인이고, 나머지 70%가 세입자다. 30% 집주인은 한나라당을 찍는 사람들이고, 박 시장에게 표를 준 사람은 70%의 세입자들이다. 가락시영 종상향은 30% 집주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시장도 정치인인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인가? 자기를 찍어준 사람들에게 (혜택을) 더 주려고 해야 하는데 박 시장은 오히려 자신을 안 찍어준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조치를 취했다. 공사(재건축)을 하더라도 나가야 하는 사람(세입자)과 관련된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 임대주택이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공사가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우 박사는 "박 시장은 가난한 사람과 집없는 서울시민이 뽑았기 때문에 그들과 얘기를 많이 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며 "설사 이들의 얘기가 결국 반영되지 않더라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성공한 시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문제를 쉽게 설명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우석훈 박사(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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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도시계획위원회의 독립적 결정"이라며 가락시영 종상향 재검토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우 박사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결정했더라도 박 시장이 재검토를 지시할 수 있다"며 "시장이 도시계획위원회에 권한을 일시적으로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정도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계획위원회가 무슨 헌법기관이냐? '도시계획위원회의 독립적 결정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도시계획위원회는 개혁대상이다. 도시계획위원회에는 세입자의 의견이 반영될 공간이 없다. 업자와 관료, 전문가라는 이름의 학자들만 있어서 집주인 의견만 반영된다. 집없는 사람들이 (선거 과정에서) 표를 행사했는데 막상 중요한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의견이 들어갈 수 없다. 시장이 정치적 행위를 통해 이들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

우 박사는 "서울시의회가 시장에게 '가락시영 종상향을 재검토하는 게 좋겠다'는 권고안을 보내고 박 시장이 이를 수용하면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논의를 시작하면 틈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우 박사는 "복잡한 문제를 쉽게 설명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아랫사람들이 바쁜 시스템을 만들라"고 박 시장에게 고언했다.

"복잡한 문제를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을 물리치면 감언이설만 하는 사람만 남는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인의 장막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길이다. 또 좋은 시장은 바쁠 필요가 없다. 시장이 자기 일을 위임해서 밑에 있는 사람이 바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이 만나자고 하는데 시장이 바쁘다고 못 만나면 안 된다."


태그:#우석훈, #박원순, #가락시영 종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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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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