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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잡지가 대개는 그러하듯이 오토바이의 메커니즘과 성능만을, 또는 튜닝을 많이 다루고 기사화해서 본의 아니게 실력과 분수에 맞지 않는 업그레이드를 마니아들에게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 전 어떤 인연으로 나에게 오토바이잡지 몇 권이 배달되어 왔다. 책의 내용은 라이더의 일상다반사나 에피소드가 반 이상을 차지했다.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잡지사의 기자분이 나를 찾았다.

어찌하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내 글을 읽어본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특별히 기사화할 얘기는 없는데? 그렇지, 라이더들의 주변 얘기를 더 소중히 여기는 잡지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해가 됐다. 오토바이 잡지사 기자답게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서로 얼굴이 마주치자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웃음부터 빼문다. 라이더와 오토바이 문화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라이더(오토바이)에 대한 정의를 내려 달란다. 글쎄 가끔은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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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에 실린 내 모습.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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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오토바이클럽 모임에서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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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평소의 생각대로 말했다. 멋이다. 멋에다가 하나를 보태자면 낭만이라고 했다. 소싯적에 소설책을 읽다가 비 오는 날 소설가와 철학가의 고뇌를 느껴본다고 우산도 없이 공원을 싸돌아 댕기던 그런 낭만이 아니겠냐고 했다. 또 새벽 물안개 피는 양수리를 투덜투덜 달리다가 오토바이 세워놓고 황진이의 사랑의 시 한수 흥얼 거려보는 멋이 아니겠냐고 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 라이더는 누구 할 것 없이 멋쟁이이자 낭만을 아는 로맨티스트라고 했다.

20~30대 무리지어 하는 라이딩도 너무나 재미있다. 즐겁다. 그러나 그 오토바이 대열로 인해서 사륜차들이 불편을 느낀다면 잘못 된 것이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으며 나의 즐거움으로 인해서 타인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방종이다. 위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오토바이를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누가 뭐랄 일도 아니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고인물이 썩듯이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는 과시용이 아니다. 지금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외제 오토바이 탄다고 목을 빳빳이 세우고 다닌단 말인가? 가소로운 일이다. 배기량 크다고 과시할 일도 아니요, 배기량 적다고 보상심리로 대형오토바이를 기어코 추월하려 할 일도 아니다. 그저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가끔은 넘어져서 무르팍도 까져가면서 그냥 그렇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적은 것은 적은 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강원도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오토바이는 항상 들르는 휴게소이다. 오토바이 매니아들이 없으면 양평휴게소의 매출이 반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 양평휴게소에서 강원도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오토바이는 항상 들르는 휴게소이다. 오토바이 매니아들이 없으면 양평휴게소의 매출이 반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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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한계령으로 아내와 함께 떠났는데 길이 막혀 꼼짝을 못한다. 바쁠게 무엇있겠는가? 내려서 아내 사진도 찍어주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도 한 잔 하고...
▲ 한계령에서 지난 가을 한계령으로 아내와 함께 떠났는데 길이 막혀 꼼짝을 못한다. 바쁠게 무엇있겠는가? 내려서 아내 사진도 찍어주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도 한 잔 하고...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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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라는 게, 낭만이라는 게 무엇인가? 나는 오토바이를 탈 때 최대한 멋을 부리며 탄다.  머리에 두건도 쓰고 부츠도 신고 싸구려지만 가죽옷도 입는다. 레이벤 선글라스는 필수 아이템이다. 군대 가기 전 청량리시장에서는 한겨울에도 공판장 샤워실에서 찬물로만 샤워를 했다. 하루를 안 거르고 보란 듯이 했다. 그것은 나만의 멋이자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었다.

내가 멋을 부리는 것은 결코 남에게 보이기 위한 멋이 아니다. 오로지 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 멋 부림이요 내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다. 오토바이를 타든 글을 쓰든 우선은 내가 먼저 감동하고 즐긴 다음 남에게 멋스러움을 보여주자는 게 나의 철학이다. 나는 남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하여 불편한 멋을 부릴만한 아량도 없거니와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조차 해본 일도 없다.

내가 겪어본 인생의 하수들은 '무엇을'이라는 욕망에 주목을 하고 인생의 고수들은 '어떻게'라는 방법에 주목을 한다. 만년필 한 자루를 사더라도 하수들은 무슨 만년필을 살까 고민을 하고 고수들은 만년필로 어떤 글을 쓸까 고민을 한다. 나는 오토바이를 즐겨 타지만 무슨 기종을 타느냐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분수에 맞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다만 어떻게 즐길 것이냐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았다. 여기서 '무엇'이라는 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요, '어떻게'라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아내와 함께.
▲ 한계령 정상에서 아내와 함께.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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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저께 두물머리 바람이나 쐬고 온다고 로시난테를 타고 구의사거리를 지날 때였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20여 대가 굉음을 울리며 워커힐 쪽으로 좌회전을 받았는데 여섯 대 정도가 지나고 나니 신호가 바뀌었다. 갑자기 사이렌이 다급히 울리며 양 옆으로 오토바이 두 대가 튀어나가 신호대로 진입하려는 차량을 막아선다. 가로막힌 차들이 빵빵거리며 팔뚝질을 해대도 당당한 모습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차들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어느 누구보다도 오토바이를 사랑하고 즐기지만 눈뜨고 볼 수가 없어 나의 애마 로시난테(175CC 스쿠터)를 세우고 112에 신고를 했다. 결국 강북삼거리 지나서 BMW경찰 오토바이가 와서 그들을 막아선다. 티코가 와서 살짝만 스쳐도 황천길은 따 놓은 당상인 그들이 뭔 이유로 오토바이 타는 것을 무슨 큰 벼슬이나 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며 대로변에서 행패를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자기만족도 좋지만 질서를 무시하며 다수의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기만족은 그야말로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사회악으로 분류하기를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네가 없으면 나 역시 존재의 의미가 없다. 또한 네가 있어야 나도 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혼자서 저 잘났다고 떠들어본들 다수의 사람이 인정을 안 하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남이라는 객체가 있어야 나라는 주체도 존재가치가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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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양간댐을 다녀오며 .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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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머리에 쓴 두건 바람에 날리며
오토바이 앞바퀴 따라서 가다보니
저 멀리 무덤가에 목련꽃 절로 피어있네

실바람 한 점 없는데 목련꽃은 어찌 흩날리는가?
무덤 속 주인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가르쳐 주련만

어서 오라 손짓하는 곳은 없어도 갈 길이 바쁘구나
소나무 가지에 걸린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야 가자

소양강댐을 다녀오며 쓰다.


태그:#오토바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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