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팀 해체를 선언한 신세계 쿨캣 농구단 ⓒ 한국여자농구연맹 갈무리
여자농구계가 잇단 악재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 13일 신세계의 갑작스러운 여자농구단 해체로 농구계가 발칵 뒤집힌데 이어 최근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잡음까지, 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WKBL 출범 때부터 무려 15년 동안 여자농구단을 운영해왔던 신세계는 갑작스러운 해체 결정을 선언하는 짧은 보도자료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농구계와 등을 돌렸다. WKBL 수장이라는 김원길 총재조차도 사전 상의없이 공식 발표 1시간 전에 해체 통보를 받았을 정도로 여론 수렴과는 동떨어진 '일방통행'이었다.
신세계의 갑작스러운 해체는 현재 여자농구의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돼있다는 지적이다. 신세계는 해체의 변을 설명하는 보도자료에서 "금융권 위주의 여자농구 운영에 한계를 느꼈다"고 밝혔다. 신세계와 타 구단들 사이가 좋지않았다는 것은 여자농구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 신세계는 지난 2009년 일부 금융 구단들과 "선수들에게 연봉 외 승리 수당을 준 구단들이 팀 연봉 상한제인 샐러리캡을 위반했다"고 폭로하며 연맹에 제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세계의 제재 요구를 연맹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신세계는 드래프트 불참 등의 강경 대응을 해, 연맹 및 다른 구단들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신세계로서는 홍보 효과도 성적이 떨어지는 여자농구단 운영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선수나 팬들 입장에서는 결국 핑계일 뿐이다. 대기업이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 것에 대한 화풀이를 애꿏은 선수들에게 돌린 꼴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WKBL의 행정 공백도 신세계 사태에 대처할 수 없었던 원인이다. 김원길 총재 임기 말년을 맞이하고 있는 연맹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구단들에 대한 발언권이나 중재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90년대 후반 IMF 사태 당시 여당 실세 출신으로 정치권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기업구단들과의 막후 협상을 통해 여자농구계 재건을 주도했던 김원길 총재는 2004년 정계 은퇴 이후 영향력이 차츰 약화된데다 올해 4월을 끝으로 총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었다. 신세계 해체 선언 이후 1주일이 지났지만 연맹은 아직 구체적인 해법을 찾지못하고 있다.
'농구 여제' 정선민의 은퇴
▲ 지난 18일 은퇴를 선언한 정선민 선수 ⓒ KB스타즈 누리집 갈무리
신세계 사태의 충격이 아직 가시기도 전에 여자농구계에서는 또 한 번 팬들을 안타깝게 하는 소식들이 전해졌다. 지난 18일 여자농구계의 한 시대를 풍미한 '농구 여제' 정선민(KB)이 전격적인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 바로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에 출전하는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의 선임문제를 두고 불거진 농구계 갈등이 알려졌다.
정선민은 90년대 실업농구 시절부터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온 간판스타였다. 여자농구에서는 서장훈과 허재를 합친 것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슈퍼스타의 은퇴소식은 여자농구계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시점이라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신한은행에서 KB로 이적한 지 한 시즌밖에 되지 않은데다 올시즌 아쉽게 준우승에 그쳐 다음 시즌 재도전을 기약할 만도 했기 때문이다. 불혹을 앞둔 나이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정선민이 은퇴를 선언한 다음 날(19일), 대한농구협회에서는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싼 갈등이 터져나왔다.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있는 대한농구협회는 이호근 삼성생명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2009년 이후 줄곧 대표팀은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이 이끌어왔다. 덕장으로 꼽히는 이호근감독도 풍부한 지도자 경험과 대표팀 코치 경력 등을 바탕으로 사령탑 자격이 충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임과정에서의 명분이 납득하기 어렵다. 전임 감독제가 없는 농구대표팀에서는 프로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밥그릇 싸움' 논란... 여자 농구계 이미지 악화 우려돼
▲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 ⓒ 신한은행 에스버드 누리집 갈무리
임달식 감독은 올시즌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를 이끌며 여자농구계 최고의 명장으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2010 세계선수권 8강, 2009~2011 아시아선수권 준우승,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지도력을 입증받았다. 비록 아시아에서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매번 준우승에 그쳤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종료직전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다 잡은 금메달을 놓쳤고, 빈약한 선수층 속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루며 한국 여자농구의 위상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현재 대표팀 주축들이 대부분 챔피언팀인 신한은행 소속이라는 것도 조직력이나 전술적인 측면에서 연속성을 이어가기 유리한 부분이다.
하지만 최종 예선을 몇 개월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의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는 그 어떤 명분도 없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자농구는 과거에도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두고 잡음이 일어났던 경우가 많았다. 2007 인천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이끌며 베이징올림픽 티켓을 따냈던 당시 유수종 감독은 정작 올림픽 본선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 정덕화 현 KB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줘야 했다. 유수종 감독은 당시 대한농구협회의 명분 없는 대표팀 감독 인사를 강하게 성토하기도 했다.
대한농구협회의 일관성 없는 일처리는 올해도 유효하다. 남자농구는 이미 대표팀 경험이 전무한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을 프로 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대표팀 사령탑에 추대했다. 심지어 이상범 감독 본인이 경험부족을 이유로 대표팀 사령탑직을 고사한 것도 거부한 대한농구협회다. 그러면서도 여자농구대표팀 감독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내세워 임달식 감독을 내몰았다. 이호근 감독이 이끌었던 삼성생명의 성적은 올해 정규시즌 4위에 그쳤다. 누가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감독 선임이다.
일부에서는 농구계의 파벌싸움으로 인해 임달식 감독의 희생양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감독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농구협회 인사들 중 과거 인사 청탁 등의 문제로 임달식 감독에게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있는 몇몇 농구계 인사들이 감독교체를 주도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만일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여자농구계가 안팎으로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 같은 중요한 국제대회는 여자농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일치단결해 여자농구계의 중흥을 위하여 힘을 쏟아도 모자랄 시점에 집안에서 쓸모없는 '밥그릇 싸움'으로 여자농구계의 이미지만 악화시키고 있는 꼴이다.